신종 코로나 유입될까 문 닫아건 북한
![지난해 말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새해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북한이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2/07/39fb518f-5ca5-4315-be5e-e1c7ad7a18bb.jpg)
지난해 말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새해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북한이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평양도 마스크 생산 라인 풀가동
“남조선 환자 발생” 꼼꼼히 보도
경제 살리기 ‘돌파전’ 차질 올 듯
민생 강조한 김정은 이번엔 침묵
세균이나 화학 물질을 활용한 은밀한 테러나 위해(危害)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은 북한 경호팀의 중요 체크포인트라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인 VX를 이용해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북한 당국으로선 누구보다 그 위험을 잘 알 수밖에 없다.
![백두산 지역이 영하 40도를 기록했다는 일기예보. [조선중앙TV 캡처]](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2/07/a38941cb-20d1-47e2-bc1c-2ce79f3219e3.jpg)
백두산 지역이 영하 40도를 기록했다는 일기예보. [조선중앙TV 캡처]
이처럼 감염병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온 북한으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큰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볼 때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해 퍼졌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12년 발병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감염병에 취약한 북한으로선 자칫 체제의 명운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감까지 감지된다. 윤효성 평양시 위생방역소장은 5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지금 코로나비루스 차단을 우리 국가의 안전과 인민의 생명과 관련된 중대한 사업으로 보고 전 국가적으로 힘있게 대책을 다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각 보건성과 농업성·상업성 등 중앙기관 책임일꾼(주로 장관급을 지칭)이 참여하는 노동당 중앙비상방역지휘부가 구성됐고, 의심환자 검진에 매일 3만여 명이 투입되고 있다. 평양피복공장과 사동옷공장 등에선 생산 라인을 풀 가동해 하루 수만 개의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이다.
북한이 유달리 사태의 심각성과 대응 장면을 관영 매체로 공개하는 것도 주목된다. 과거 감염병의 확산이나 재난·재해 발생 사실,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숨기는데 급급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6일에도 조선중앙TV는 오후 3시 30분 정규방송 시작 직후부터 7분 안팎의 ‘신종 코로나 비루스를 철저히 막자’는 내용의 캠페인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밤 11시 종료 때까지 3차례 반복했다. 오후 보도와 밤 종합보도, 마감뉴스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비중 있게 다뤘다.
![한국에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전한 5일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 캡처]](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2/07/0a174b76-cb85-4132-819d-9d6386745d05.jpg)
한국에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전한 5일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을 관영 매체들은 강조한다. 지난 2일 송인범 보건성 국장이 ‘감염자 없음’을 밝혔지만 외부에서 은폐 의혹이 이어지자, 6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신형 코로나비루스 감염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탕개(물건의 동인 줄을 팽팽하고 긴장감 있게 죄어주는 기구)를 늦춰선 안 된다”고 우회적인 주장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노동신문이 강원도 비상방역지휘부의 움직임을 전하면서 “격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원들을 고정시키고 보호복과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품을 원만히 보장해주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힌 대목을 들어 환자 발생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가뜩이나 팍팍한 북한 경제와 주민 살림살이에 주름을 더하고 있다. 지난 연말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연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대화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노동당 창당 75주년을 맞는 올해 이른바 자력갱생을 기치로 경제력 다지기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미처 본격적인 착수도 하기 전에 신종 코로나 먹구름이 북한에 밀려들었다.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간의 정상외교는 물론 북·중 국경을 통한 교역이나 밀무역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과 서방의 대북제재에도 든든한 뒷심이 됐던 중국 지도부와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비공식 거래가 모두 무너질 판이다. 노동신문이 6일 정면돌파전의 관철을 촉구하며 노동당 간부들에게 “시키는 일이나 하는 월급쟁이, 기회주의자로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 건 이런 내부 긴장감을 반영한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문을 연 평안남도 양덕 온천관광지구에 예약이 넘쳐나고 이미 2만5000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선전한다. 2013년 개장한 강원도 마식령스키장도 스키 관광으로 붐빈다는 게 평양방송의 보도다. 김정은이 주도해 건설한 시범 관광지를 부각 선전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완전히 끊긴 데다 북한 주민들도 잔뜩 위축된 상태라 실제 상황은 선전과 다르다고 한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지난 4일 페이스북을 통해 “호텔·상점 등에서 외국인 대상 영업이 중단됐고 신임 외교관의 부임도 중단됐다”고 전했다. 홍수 등 재난 때마다 구조와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민생 챙기기’ 이미지를 띄우던 김정은 위원장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때 자폭·사살 된 25명의 북한 무장공비를 ‘자폭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북한이 이들 시신이 묻힌 ‘조국해방전쟁 참전 열사릉’에 만든 부조 형태의 조형물. [조선중앙TV 캡처]](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2/07/6d07760a-14a7-4105-abc9-496f3db77a2c.jpg)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때 자폭·사살 된 25명의 북한 무장공비를 ‘자폭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북한이 이들 시신이 묻힌 ‘조국해방전쟁 참전 열사릉’에 만든 부조 형태의 조형물. [조선중앙TV 캡처]
중앙TV는 이들이 잠수함을 타고 침투한 뒤 문제가 발생하자 “장수봉 앞이다,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전원 자폭을 각오한다”는 전문을 북으로 날린 뒤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쳤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송환받은 이들의 유해를 ‘조국해방전쟁 참전 열사릉’에 묻히도록 조치했다면서, 김정은이 “전쟁 참가자는 아니지만 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는 또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역으로 알려진 김격식(2015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을 김정은이 “충직한 전사”라고 격찬한 사실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이 “인민군 부대 방문 때 김격식 동무를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다”며 두터운 신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김격식은 2009년 2월 군 총참모장에서 황해도 지역을 관할하는 북한군 4군단장으로 옮겼고,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이 강릉 무장공비와 김격식에 대한 찬양 보도를 최근 되풀이하는 건 김정은의 대남 대립각 세우기 맥락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