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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헬기 추락, 뇌졸중 이긴 ‘OK목장’ 총잡이…103세에 하늘로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커크 더글러스. [AP=연합뉴스]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커크 더글러스. [AP=연합뉴스]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별세했다. 103세. 고인의 아들인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76)는 이날 페이스북으로 부친의 죽음을 알리며 “(아버지는) 영화의 황금기를 거치고 인생의 황금기까지 보낸 배우이자, 정의와 대의에 헌신해 모두가 우러러볼 기준을 세운 박애주의자”라고 애도했다.
 

커크 더글러스
70년간 90편 할리우드 황금세대
100세때 “존웨인·랭커스터 그립다”
장남 마이클, 맏며느리 제타 존스

고인이 70년간 출연한 영화는 ‘OK목장의 결투’(1957)를 비롯한 약 90편. ‘영광의 길’ ‘해저 2만리’ 등 주로 전쟁·서부극에서 선 굵은 인물을 연기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는 주연·제작을 겸해 비평과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2016년 100세 생일을 맞은 커크 더글러스(앞줄 왼쪽)와 아들 마이클 가족 모습. [AP=연합뉴스]

2016년 100세 생일을 맞은 커크 더글러스(앞줄 왼쪽)와 아들 마이클 가족 모습. [AP=연합뉴스]

골든글로브상·미국영화연구소·미국영화배우조합·베를린영화제 등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아들 마이클이 아버지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세계 분쟁지역에 학교와 공원을 세우는 자선활동에도 힘써 1981년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영예 시민상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1916년 뉴욕주 빈민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부친은 넝마주이 생활도 한 문맹의 노동자였다. 고인은 신문 배달, 노점상 등으로 대학 학비를 벌었고,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다.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 1941년 졸업공연 ‘봄이여 다시’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그의 자서전 『넝마주이의 아들』(1988)은 베스트셀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1년 해군에 입대했다가 3년 뒤 제대한 고인은 1946년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챔피언’(1949)에서 권투선수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화가 반 고흐 역으로 안소니 퀸(폴 고갱 역)과 호흡을 맞춘 ‘열정의 랩소디’(1956)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아카데미 연기상엔 세 차례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할리우드 매카시즘 광풍 땐 공산주의 연루 의혹으로 배척된 ‘블랙리스트’ 영화인들의 복귀에도 큰 역할을 했다.
 
‘OK목장의 결투’(左), ‘스파르타쿠스’(右)

‘OK목장의 결투’(左), ‘스파르타쿠스’(右)

고인은 두 차례 결혼에서 각각 아들 둘 씩을 뒀다. 장남 마이클 등 아들들이 배우·프로듀서로 활동한 영화인 집안이다.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맏며느리다.
 
그가 영화화를 꿈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마이클이 대신 제작해 197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작품상·감독상 등 5관왕에 올랐다. 아들(마이클)·손자(캐머런)와 3대가 영화 ‘더글러스 패밀리’(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한 막내아들 에릭은 약물 과다복용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다 2004년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1991년엔 헬기 사고(동승자 둘 사망)로 혼자 살아남아 척추 수술을 받았고, 5년 뒤엔 뇌졸중으로 극심한 언어장애를 겪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95세이던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지팡이를 쥔 채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2014년엔 미국 잡지 ‘피플’이 그의 부고를 실수로 냈다가 삭제하는 소동도 있었다. 100세 생일 때 그는 “100살까지 살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충격이다. 그리고 슬프다”며 할리우드 콤비이자 경쟁자였던 버트 랭커스터, 존 웨인을 두고 “우린 많이 싸웠지만 그립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고인이 2006년 “90번째 생일은 기적이다. 2차 세계대전, 헬리콥터 추락, 뇌졸중 등에서 살아남았다. 나 자신 대신 세상을 위한 소원을 빌고 싶다”면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 빈곤·지구온난화·대량학살…. 이제 당신들이 반란을 일으켜라”라고 한 말을 소개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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