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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 돼서 슬프다"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 103세로 별세

할리우드 황금기를 주름잡은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2월 5일(미국 현지시간) 작고했다. 사진은 1962년 전성기 때 모습이다. [AP=연합뉴스]

할리우드 황금기를 주름잡은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2월 5일(미국 현지시간) 작고했다. 사진은 1962년 전성기 때 모습이다. [AP=연합뉴스]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 자택에서 운명했다. 향년 103세. 고인의 아들이자 할리우드 스타 마이클 더글러스(76)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부친의 죽음을 알렸다.  
 

할리우드 전설 커크 더글러스
5일 향년 103세로 자택서 별세
2차대전·헬기추락·뇌졸중 극복
70년간 90편 출연…통큰 자선가

영화인 집안…아들 마이클 더글러스,
며느리 캐서린 제타 존스

1916년생인 고인은 1996년 심각한 뇌졸중으로 언어장애를 겪으며 오랫동안 투병해왔다. 앞서 91년엔 헬기 사고로 동승자 둘은 죽고 홀로 살아남아 척추수술을 받기도 했다. 98번째 생일을 맞은 2014년엔 미국 잡지 ‘피플’이 그의 부고를 실수로 냈다가 서둘러 삭제하는 소동도 있었다.  
 

반세기 할리우드 전설…'대통령 자유 메달' 받아

1994년 커크 더글러스(왼쪽 두 번째)가 (오른쪽부터)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영부인 힐러리와 함께 케네디 센터 영예상 수상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왼쪽 두 번째)가 (오른쪽부터)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영부인 힐러리와 함께 케네디 센터 영예상 수상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반세기 넘는 세월 할리우드의 전설이었다. 약 70년간 출연한 영화가 90편에 육박한다. ‘영광의 길’ ‘해저 2만리’ 등 주로 전쟁·모험·서부극에서 운명을 정면 돌파하는 선 굵은 인물을 연기했다. ‘대탈옥’ 등 코미디 감각도 뛰어났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는 주연·제작을 겸해 비평과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골든글로브상·미국영화연구소(AFI)·미국영화배우조합(SAG)·베를린영화제 등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가 시상자로 나서 아버지에게 직접 명예상을 바쳤다. 세계 분쟁지역에 학교와 공원 세우는 자선활동에도 힘써 1981년엔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최고의 영예 시민상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기도 했다.
2003년 커크 더글러스(왼쪽)가 아들이자 배우인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LA에서 열린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와 작품상 '시카고'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2003년 커크 더글러스(왼쪽)가 아들이자 배우인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LA에서 열린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와 작품상 '시카고'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민자 출신 '넝마주이의 아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1916년 미국 뉴욕주 빈민가에서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슈르 다니엘로비치 뎀스키. 부모는 러시아에서 온 문맹의 노동자였다. 1988년 펴낸 베스트셀러 자서전 제목처럼 『넝마주이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생계를 위해 분투했다. 신문배달, 노점상, 정원사 등을 전전하며 대학 학비를 벌었다. 레슬링 선수로도 활동했다. 연기의 재능을 발견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가선 피나는 훈련을 받았고,  1941년 졸업공연 ‘봄이여 다시’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1941년엔 미국 해군에 입대했다가 44년 부상으로 제대했다. 이후 라디오에 주로 출연하던 그를 할리우드로 이끈 게 당시 스타 로렌 바콜이다. 바콜의 추천으로 1946 출연한 영화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으로 스크린 데뷔, 이어 ‘챔피언’(1949)의 물불 가리지 않는 권투선수 역으론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다.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작 영화 '스파르타쿠스'에[AFP=연합뉴스]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작 영화 '스파르타쿠스'에[AFP=연합뉴스]

 

해군으로 2차 대전 참전…'블랙리스트'엔 맞서  

화가 반 고흐 역을 맡아 폴 고갱 역을 맡은 안소니 퀸과 호흡을 맞춘 영화 ‘열정의 랩소디’(1956)로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아카데미 연기상엔 세 차례 후보로 올랐지만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는 할리우드 매카시즘 광풍 때 공산주의 연루 의혹으로 배척된 ‘블랙리스트’ 영화인들의 복귀에 큰 역할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영광의 길’(1957)에 이어 재회한 대작 ‘스파르타쿠스’의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다. 큐브릭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트럼보의 이름을 크레디트에서 빼려고 하자 더글러스가 그에 반대하며 트럼보 복귀에 힘을 실었다고 전한다. 이런 내용은 전기영화 ‘트럼보’(2016)에도 나왔다.  
영화 '트럼보'에서 배우 딘 오고만이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오른쪽). 영화엔 제작자이자 배우인 그가 반공산주의 광풍이 불었던 시절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 달튼 트럼보를 새 영화에 기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트럼보'에서 배우 딘 오고만이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오른쪽). 영화엔 제작자이자 배우인 그가 반공산주의 광풍이 불었던 시절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 달튼 트럼보를 새 영화에 기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골수 공화당원 존 웨인과 자주 부딪혀

할리우드에서 화제를 몰고 다닌 콤비로는 버트 랭카스터가 있다. ‘OK 목장의 결투’(1957) 등 8편을 함께했다. 키가 175㎝로 할리우드 배우치고 작은 편이던 더글러스는 화면상 눈속임을 위해 키 높이용 받침을 썼는데 랭카스터가 이를 장난삼이 숨겨 화를 낸 적도 있단다. 오랜 민주당원으로 총기 규제를 지지해온 그는 서부극 ‘워 웨곤’(1966)을 함께한 골수 공화당원 배우 존 웨인과도 자주 부딪혔다. 
 
100세 생일 때 더글러스는 “100살까지 살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충격이다. 그리고 슬프다”면서 버트 랭커스터, 존 웨인을 두고 “우린 많이 싸웠지만 그립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영화인 집안, 며느리는 캐서린 제타 존스

2016년 커크 더글러스(아래 왼쪽)가 아내 앤과 장남 마이클 더글러스, 며느리 캐서린 제타 존스 등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AP=연합뉴스]

2016년 커크 더글러스(아래 왼쪽)가 아내 앤과 장남 마이클 더글러스, 며느리 캐서린 제타 존스 등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AP=연합뉴스]

그는 평생 두 번 결혼했다. 1943년 연기학교 동창인 배우 다이애나 딜과 결혼해 장남 마이클 더글러스 등 2남을 얻었다. 54년 재혼한 지금의 아내 앤 바이든스와도 2남을 얻어 아들들이 모두 배우‧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영화인 집안이 됐다.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맏며느리다. 
 
그가 영화화를 꿈꿨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장남 마이클이 대신 제작에 나서 1976년 배우 잭 니콜슨이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작품상‧감독상 등 5관왕에 올랐다. 아들 마이클 더글라스, 손자 캐머런 더글러스 3대가 함께 영화 ‘더글러스 패밀리’(2003)에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배우로 활동하던 막내 에릭은 약물 과다복용, 비행기 난동 등을 일으키다 2004년 아파트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뇌졸중 후 권총 자살하려 했지만…

커크 더글러스 자신도 부침이 많았다. 뇌졸중 후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배우로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권총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고 가족들 도움을 받으며 우울증 치료에 나섰다. 이런 투병기를 담은 자서전 『시련은 곧 희망입니다(My stroke of luck)』는 국내에도 출간됐다.  

커크 더글러스가 별세한 5일(현지시간)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그의 이름 위에 팬들이 바친 꽃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커크 더글러스가 별세한 5일(현지시간)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그의 이름 위에 팬들이 바친 꽃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1999년엔 영화 ‘다이아몬드’의 중풍을 앓는 권투선수 역으로 스크린 복귀하기도 했다. 95세이던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지팡이를 쥔 채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자선 사업에도 힘써, 불우 청소년 무료로 가르치는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그래나다 고교는 2000년 커크 더글러스 고교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미국 젊은이여, 엉망인 세상에 반란 일으켜라"

90세 생일 맞은 2006년 그는 “내게 90번째 생일은 기적이다. 2차 세계대전, 헬리콥터 추락, 뇌졸중 등에서 살아남았다. 나 자신 대신 세상을 위한 소원을 빌고 싶다”면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 세상은 엉망이고 당신들은 그걸 물려받았다. 빈곤‧지구온난화‧대량학살 및 자살 폭탄테러…. 이제 당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관심을 가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경대의 한 강의실에서 학생들 앞에서 제스처를 써가며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커크 더글러스. [중앙포토]

북경대의 한 강의실에서 학생들 앞에서 제스처를 써가며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커크 더글러스. [중앙포토]

 
마이클 더글러스는 아버지의 별세 당일 페이스북에서 “(아버지는) 영화의 황금기를 거치고 인생의 황금기까지 보낸 배우이자, 정의와 자신이 믿었던 대의에 헌신해 모두가 우러러볼 기준을 세운 박애주의자”라며 “커크는 좋은 인생을 살았고 영화계에 많은 후세대로 지속할 유산을 남겼으며 지구평화를 이룩하고 대중을 지원하려고 노력한 자선가로서의 역사도 남겼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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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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