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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전쟁’ 중 슬그머니 나온 외교부의 트럼프 중동구상 논평...외교 셈법은?

지난 달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나라가 들썩할 무렵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대변인 명의의 논평 하나가 게재됐다. 지난 달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구상’에 대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중동평화 정착 노력을 평가하며,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문제가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에 기초하여 관련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우한 체류 국민의 전세기 운행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무렵이었다. ‘기습 발표’된 논평에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는 지금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해법이 있었다”며 “거기 기초해 당사자 간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야심작 ‘중동평화구상’

트럼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달 28일 발표된 중동평화구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야심작이다. 취임 초기부터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온 트럼프 대통령은 텔아비브의 미국 대사관을 2018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이ㆍ팔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 소식통은 “이번 중동평화구상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가장 공들인 정책 제안”이라며 “오바마 정부의 중동정책을 상징하는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159쪽이었다면, 트럼프 정부의 중동평화구상은 이를 뛰어넘겠다는 듯 181쪽을 썼다”고 평가했다.  
 
중동평화구상의 핵심은 영토 문제는 이스라엘 손을, 팔레스타인에는 경제적 당근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온전히 편입시키고, 국제법적으로 유엔이 불법으로 규정한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도 그대로 인정했다. 팔레스타인에는 ‘예루살렘의 동쪽’에 수도를 별도로 세우되 “향후 10년 간 500억 달러(58조원)의 지원으로 1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오바마ㆍ유엔과는 정반대 승부수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가디언 캡처]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만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가디언 캡처]

이는 미국 중동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전임 오바마 정부는 유엔 차원의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에 힘을 실어줬다. 유엔 안보리는 67년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점령한 지역에서 “즉각 철수”할 것을 결의(232호)한 이래로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인정하고 67년 이전 상태, 즉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을 실효 지배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했고, 팔레스타인의 무장봉기가 이어지며 지역 불안이 계속됐다. 국제사회에선 ‘두 국가 해법’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확히 이 지점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이번 중동평화구상에는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보좌관과 딸 이방카 백악관 고문 부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18년 5월 예루살렘의 새로운 미국 대사관 앞에 서 있는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 [EPA=연합뉴스]

2018년 5월 예루살렘의 새로운 미국 대사관 앞에 서 있는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 [EPA=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구상에 대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팔레스타인 민족은 미국의 구상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내겠다”며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유엔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 양자 합의에 의해 해결되기를 지지하며, 두 국가가 1967년 이전의 경계에 의해 평화와 안전 속에 공존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67년 이전의 경계’를 강조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한국 대응, 인·태 전략 참여보다 빨랐다

 국방부가 1월 21일 호르무즈해협 일대로 파견한 청해부대 왕건함 모습. 사진은 작년 12월 27일 부산해군작전사령부에서 왕건함이 출항하는 모습. [연합뉴스, 해군작전 사령부 제공]

국방부가 1월 21일 호르무즈해협 일대로 파견한 청해부대 왕건함 모습. 사진은 작년 12월 27일 부산해군작전사령부에서 왕건함이 출항하는 모습. [연합뉴스, 해군작전 사령부 제공]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 방안을 성공시키려면 국제사회 여론이 뒷받침 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시점에서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후 72시간도 안 돼 긍정적인 메시지를 낸 것은 미국으로선 반가운 일이다. 통상 중요한 정책 구상을 밝힐 때 ‘외교적 지지 요청(demarche)’을 하는 것이 관례인 만큼 이번 논평도 미국의 요청이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중동구상을 지지하는 각국 반응”을 소개하며 한국 외교부의 반응을 올렸다.
 
한국은 앞서 트럼프 정부의 대표적인 대외정책인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됐다. 미국은 한국의 인태 전략 참여를 2017년 부터 바랐지만 한국은 지난해에야 “신남방 정책과 접점을 찾을 것”이라며 화답했다. 미국이 이란과의 갈등 고조로 중동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참여를 요청했을 때도 이란과의 관계 때문에 정부의 고심이 깊었다. 일본은 반면 인태전략 참여는 물론 호르무즈 파병까지 속전속결로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명분 대신 실리?…“트럼프, 별개로 생각할 것”

유엔의 기존 취지에 반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구상에 한국이 선뜻 입장 표명을 한 건 명분 대신 실리를 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으로선 이달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의 담판을 앞두고 있고, 남북경협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중동정책에서 호르무즈 파병에 이어 중동평화구상까지 최대한 미국 편에 서자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반면 동맹 의식이 약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이슈 등에 이를 연계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별개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찬성인듯 찬성 아닌’ 한국의 논평 수위가 미국을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지지한다(support)’ 대신 ‘평가한다(appreciate)’는 적극 찬성도 아닌 표현인데 유엔 등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미국 쪽에선 찬성으로, 한국 쪽에선 중립으로 해석할 수 있는 회색 지대 논평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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