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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감염 확산하면 폭발적으로 정치화할 수 있어

신종 코로나의 정치학 

위험은 종종 고도로 정치화된다. 2008년 광우병 사태, 2015년 메르스 사태, 지금 신종 코로나 사태를 보자. 총선이 두 달여 남은 지금 일차적 관심사는 이 사태가 정치화되고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릴 것인가에 있다. 광우병 사태 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60%에서 최저 15%로 4분의 1토막 났다. 지지율보다 더 큰 일은 취임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새 대통령이 광화문 광장을 가로막은 컨테이너 벽처럼 ‘불통’ 이미지로 규정됐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전파력은 메르스의 두 배
한국~중국 유동 인구도 엄청나
임계치 도달하기 전 자원 집중하고
확산 과정도 정교하게 추적해야

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40%에서 20%대 후반으로 12%포인트 남짓 빠졌다. 돌이켜보면 탄핵으로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의 실패 과정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보여준 드라마틱한 무책임과 무능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40%대 초반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신종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위험 노출 정도 따라 반응에 차이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중앙포토]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중앙포토]

지나간 경험에서 위험을 정치화시킨 요인들이 무엇이었고, 현재 벌어지는 사태에 그런 요인들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를 보면 예측에 도움이 될 것이다. 광우병 사태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을 촛불집회로 끌어낸 대표적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 위험 지위에 따른 반응의 차이다. 전통적 산업사회에서 계층에 따른 지위의 차이가 중요하다면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른 위험 지위가 더 중요하다. 사회적 저위험군에 비해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은 광우병에 대한 걱정도 훨씬 많았고 촛불집회 참여도 많았다. 그 당시 급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군인이나 학생, 값싼 수입 고기를 먹을 가능성이 많은 저소득층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둘째, 위험과 시장의 충돌이다. 광우병, 신종 바이러스, 멜라민 같은 새로운 위험은 국경을 뛰어넘고 시간을 초월한다. 이런 종류의 위험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기 때문에 공공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하며 강한 친시장적 행보를 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이라는 위험이 시장에 의해 걸러질 것을 믿었다.  
 
그는 “위험하면 못 먹고 안 먹는 것인데, 수입업자들도 장사가 안되면 안 들여올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에 총력 대응 의지를 밝히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중앙포토]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에 총력 대응 의지를 밝히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 [중앙포토]

만약 위험이 순전히 과학의 문제라면 그의 말은 맞는 것일 수도 있었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동물 감염 18만4551건에 인간 감염 163건인데 비해 한국은 동물감염 0건, 인간감염 0건이었다. 그런데 설문조사를 해보면 광우병을 걱정한다는 영국인이 40.5%인데 비해 같은 걱정을 한다는 한국인은 68.8%에 이르렀다. 위험의 정치화 과정을 보지 못하고 과학으로만 파악한다면 이 대통령의 말은 맞는 말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위험은 정치화한다. 위험이 닥칠수록 국민은 국가가 공공 영역에 개입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명박 정부의 시장에 대한 믿음은 이러한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분노한 사람들을 촛불광장으로 끌어냈다.
 
이 두 가지 요인들을 놓고 보면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 비교적 유리한 입장에 있다. 광우병은 수입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과 값비싼 한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위험 지위를 나눠 놓았지만, 메르스나 신종 코로나 같은 호흡기 질환은 그렇지 않다.
 
위험사회 연구 권위자 고(故) 울리히 벡은 광우병 사태 때 한국 언론에 보낸 특별기고문에서 위험을 ‘민주적’이라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위험에서는 “부자들조차 돈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부자들이 피해갈 가능성이 높은 위험이지만 호흡기 질환은 부자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메르스 사태 때 전국적으로 186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는데, 서울에서는 52명이었다. 강남 3구에서만 27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부자들이 메르스에 더 많이 걸린 것이다.
 
지난 1일 신종 코로나 현장점검에 나선 정세균 국무총리. [연합뉴스]

지난 1일 신종 코로나 현장점검에 나선 정세균 국무총리. [연합뉴스]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감염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의사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 중 강남 3구 거주자가 많다는 점, 가장 많은 감염자를 배출한 삼성서울병원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부자들의 외국 여행이 더 많다는 점. 이유가 무엇이든 메르스는 계층을 차별하지 않는 ‘민주적인’ 위험이었다. 위험의 정치화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위험 지위를 차별하는 광우병이 민주적 위험인 호흡기 질환보다 훨씬 위험하다.
 
친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는 시스템적 위험인 광우병과 정면충돌했지만,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받아왔던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은 이번에는 오히려 완충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적어도 정부가 국민을 ‘위험의 시장’에서 각자도생하라고 방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 때 얻은 경험과 언제든 정권의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태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 등이 합쳐지면서 전반적인 행정 대응도 과거에 비해 개선된 것이 뚜렷하다. 이 평가에 동의하기 힘들다면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때나 메르스 사태 때나 일관되게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해보라. 위험 지위에 따른 차별과 시장 만능주의라는 두 개의 불쏘시개로부터 현재의 신종 코로나 사태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신종 코로나가 정치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만약 정치화한다면 그 이유는 광우병 사태를 악화시킨 차별이나 친시장주의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드라마틱한 무능과 비슷한 일이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두 달 전인 2014년 2월에 발표한 글에서 나는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무능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썼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일어난 참혹한 재난 상황에서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정부의 무능함에 소름 끼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그런 정도의 무능이 보여지려면 ‘아웃 브레이크’, 즉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기하급수적 환자 폭증이 가장 가능성 높다.
 
‘6단계의 분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6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뜻이다. 이른바 ‘작은 세상’이다. 1967년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미국 사회에 대해 밝혀낸 것이다.
  
한국은 4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
 
연세대 김용학 교수가 2004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이보다 훨씬 더 작은 세상에 산다. 한국인들은 평균 3.6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중앙일보 2004년 1월 9일자). 메르스 사태 때 4차 감염자가 등장했다고 해서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4차 감염자의 등장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한국인의 네트워크를 관통했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포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메르스 사태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전파력이 0.4~0.9로 한 명의 감염자가 한 명 미만의 사람에게 전파시킨다는 점, 대부분의 확진자가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내부에서 감염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대부분의 확산이 통제 가능한 물리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의 전파력은 1.4~2.5 사이로 추정돼 메르스보다 훨씬 높다. 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유동인구가 중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따라서 확산의 공간이 거의 통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대형 아웃 브레이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네트워크에서의 확산은 일단 임계치에 이르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으로 보여질 것이고 폭발적으로 정치화할 가능성이 크다.
 
신종 코로나가 정치화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엄청난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것은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와 상관없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는다면 임계치에 도달하기 이전에 최대한의 자원을 집중하고, 확산 과정을 더욱 면밀하고 정교하게 추적해야 한다.
 
키워드
위험사회(Risk society)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제시한 개념. 위험 여부가 모든 결정의 우선 순위에 놓이는 사회를 말한다. 과학과 기술이 성장을 낳고 그에 따라 재원이 사회 성원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는 과거의 믿음과 가치에 매달려 결정의 준거를 찾기보다 위험의 인식과 일상적 준비성 강화에 사회적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벡은 주창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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