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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⑥ 석류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석류
-조운 (1900~1960년대 말?)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 연간조선시집

 
현대시조의 교과서
 
절창이다. 잘 익어 스스로 빠개진 석류를 최상의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우툴두툴한 외모. 그러나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알알이 붉은 모습. 어느 시인은 석류의 이런 모습을 “홍보석 같은 그 맛을 알알이 맛보노니”로 묘사하기도 했다.
 
시인은 석류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킨다. 그러므로 이 시조는 열린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좋은 시의 한 전형이라고 하겠다. 윤곤강 시인은 “시도 여기까지 이르면 시신(詩神)도 감히 시 앞에 묵언(默言)의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1948. 시와진실)이라고 했다. 유재영 시인은 “조운 시조집은 책이 아니고 차라리 스승이었다”(2000. 작가)라고 썼다. 현대시조의 초창기에 이룬 이런 문학적 업적을 기려 그를 ‘현대시조의 교과서’라고 부른다.
 
전남 영광에서 7남매의 외아들로 태어난 조운은 3·1 운동 때 영광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했다가 연해주로 피신했다. 그때 소설가 서해 최학송을 만나 누이 분려와 결혼하도록 한다. 사립 영광중학원에서 교원 생활을 할 때 여교사 박경순에게 문예창작을 지도해 이광수의 추천을 받게 했으니 그가 소설가 박화성이다. 조운은 영광체육단 사건으로 일경에 투옥, 1년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48년, 그는 월북하였다. ‘석류’는 그의 좌익적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자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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