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조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하원에서 진행한 연두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서다. 트럼프 대통령 연설 직후에 그 원고를 북북 찢어버린 게 대표적이었다.
하원의장은 관례상 미국 국민의 대표 자격으로 대통령 바로 뒤에 착석해 국정연설을 듣는다. 카메라를 의식해 일부러 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펠로시가 원고를 찢는 모습은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미국 경제에 대한 자화자찬성 발언과 자신의 이민정책을 옹호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은 데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펠로시는 지난해 2월 트럼프의 국정연설에선 트럼프에게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우쭈쭈’하는 표정으로 박수를 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은 박수조차 치지 않았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4일 국정연설 뒤에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공화당 의원들과 언쟁을 벌였다.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2/05/4d9bd578-2c34-4179-82af-274561c45ab8.jpg)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4일 국정연설 뒤에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공화당 의원들과 언쟁을 벌였다. [AP=연합뉴스]
펠로시 의장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주도한 인물이다. 트럼프와는 오랜 견원지간이다. 트럼프는 펠로시 의장을 트위터에서 ‘미친 낸시’라고 불러왔다. 탄핵안은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선 부결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적어도 현재 탄핵안이 심의 중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대접해주지 않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매년 초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에선 하원의 주인인 하원의장이 대통령을 소개하며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영광을 제가 누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게 관례다. 펠로시 의장은 그러나 이날 이런 인사도 모두 생략했다. 그가 이날 택한 의상도 민주당의 초선 여성 의원들이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며 입는 색상인 흰색으로 골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일 국정연설이 끝난 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박수를 치고 있으나 펠로시 의장은 원고를 찢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2/05/0cec3d2d-11de-45b6-96cd-8281a302c67a.jpg)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일 국정연설이 끝난 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박수를 치고 있으나 펠로시 의장은 원고를 찢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중 기립 박수를 수차례 보내는 것도 관례이지만 펠로시는 의도적으로 자리를 지키며 박수를 치지 않았다. 펠로시 의장이 박수를 보낸 건 국민대표로 초대된 이들의 사연이 소개됐을 때뿐이었다. 트럼프 역시 연단에 서면서 하원의장에게 악수를 하는 게 관례이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연설 원고만 전달했다. 연설 원고를 넘기며 기가 차다는 표정까지 지은 펠로시는 연설이 끝나자마자 결국 원고를 찢어버린 것이다.
CNN은 이날 “펠로시 의장이 처음부터 원고를 찢으려던 건 아니었다고 취재가 됐다”며 “연설 내용을 보고 순수하게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예의 충직한 표정과 미소로 트럼프의 연설을 경청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그 옆에 나란히 앉은 펠로시 의장은 같은 연설을 듣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고 평했다. 폭스뉴스 등 친 트럼프 기조의 매체들은 펠로시 의장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