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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의 미래를 묻다] 어떻게 할까, 한 번 투약에 25억원 약값

정밀의학의 빛과 그늘

미래를 묻다

미래를 묻다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아니,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그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말이다. 현재 상황에서 100세 넘게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보다 암과 치매를 정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진전도 이뤄지고 있다.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밀의학은 개인의 유전체 정보, 병력, 생활 습관, 환경 등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개별화된 예방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 유전정보 등 활용한 정밀의학
효과 높고 ‘평생 1회 투약’ 장점
약값 엄청나 ‘재정 독성’ 부작용도
해법 찾는 길 지금부터 고민해야

정밀의학의 구현은 유전체 관련 지식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생물은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유전체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그러던 중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에서 원하는 특성을 얻는 ‘육종’을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간접적으로 진화에 개입해 유전체 수정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유전체를 마음대로 수정할 수는 없었고, 시간도 상당히 걸렸다.
 
획기적인 전환은 인슐린 생산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당뇨병 치료를 위한 인슐린을 도축한 돼지와 소의 췌장에서 채취했다. 당연히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 일부 환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해법은 분자 생물학자들이 찾았다. ‘제한 효소’란 것을 이용해 대장균의 유전체에 인간 인슐린 유전자를 삽입했다. 이로써 다른 동물의 인슐린이 아닌, 사람 인슐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인간이 대장균의 진화에 직접 개입했던 것이었다. 유전체라는 자연의 ‘소스 코드’를 읽고 편집하는 첫발을 뗀 셈이었다.
  
인간 자신의 유전체 수정 시대
 
나아가 인간은 인간 자신의 소스 코드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다. 1990년 시작해 13년이 걸려 끝났다. 한 명의 유전체를 읽는데 걸린 시간도 시간이지만, 비용도 무려 30억 달러(약 3조6000억원)가 들었다. 엄청난 작업이었지만 유전체를 이루는 약 30억 개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늘어서 있는지 간신히 읽기만 했을 뿐,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였다.
 
유전체 해석을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유전체를 읽어서 비교해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고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젠 3조6000억원의 비용은 100만원 선까지 떨어졌고 13년이나 걸렸던 시간도 불과 며칠로 짧아졌다.
 
분자생물학과 더불어 급속히 발전한 컴퓨터 과학에 힘입어 유전체의 해석도 상당히 진전했다. 유전체의 어떤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략 해독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은 ‘유전체를 원하는 대로 수정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이러스 벡터(virus vector) 등 유전자를 도입하거나 편집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생기면서 인간 자신의 유전체 수정을 시도하게 됐다.
 
이런 시도는 실험 수준을 넘어 질병 치료에까지 실용화됐다. 실명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성 망막질환에 대한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 (미국·2017년), 척수성 근육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 (미국·2019년) 등이 그 사례다. 최근 각광받는 ‘CAR-T’라는 종류의 항암제도 있다. 모두 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낸다. 럭스터나와 졸겐스마는 정상 유전자를 끼워 넣는 치료여서 평생 한 번만 투약하면 된다는 장점까지 있다.
 
하지만 효과와 편리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럭스터나는 한쪽 눈에 한 번 주사하는 비용이 85만 달러(10억원)다. 졸겐스마는 약값이 무려 210만 달러(약 25억원)에 달해 현재까지 가장 비싼 약으로 기록됐다. CAR-T 계열의 항암제 역시 만만찮다. ‘예스카타’는 37만3000달러(4억4000만원), ‘킴리아’는 47만5000달러(5억7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병원비까지 포함하면 치료에 드는 비용은 더 늘어난다. 효과는 뛰어나지만 새로운 부작용으로 ‘재정적 독성’을 갖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다.
  
차별 … 어두운 이면
 
정밀의학의 어두운 면이다. 개별화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는 비용은 대량 생산의 이점을 누리며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치료는 다르다. 환자의 특성에 따라 더 개별화·고도화되면서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도 있게 됐다.
 
이런 정밀의학에는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개별화를 위해 수집한 데이터에서 비롯되는 부분이다. 과거에는 알 수 없던 유전적 결함이 알려져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생산 비용이 떨어지며 데이터는 더 쉽게 얻게 되었다. 둘째는 데이터에서 얻어진 결과를 개별화하여 적용하는 부분이다. 유전적 결함을 알고 치료할 수단이 있지만, 치료비가 매우 비싼 경우 등이다.
 
이런 차별적 요소를 극단적으로 걱정한 영화도 있다. 영화 ‘가타카 (GATTACA)’에서는 질병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주인공이 우주 비행사가 되길 원하지만, 그 직업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이전에는 알 수 없던 유전 정보를 알게 되어 차별이 생긴 것이다.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큰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부호들만이 장기 이식 수술을 위한 복제 인간을 키우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간 상품화도 문제지만, 빈부 격차에 따라 개별화된 치료를 누릴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접근성’ 자체가 다른 경우다.
  
공짜는 없다
 
정밀의학은 우리에게 좋은 진단·치료 방법으로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공짜가 아니다. 비용이 높을 때, 개인뿐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도 치료 비용을 어디까지 감당할지 고민하게 된다. 사회에서 지원하자니 재정을 걱정해야 하고, 개인 비용으로 부담하자니 빈부에 따라 생명의 가치가 다르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의료를 책임지는 영국에서는 면역 항암제인 예스카타에 대해 지원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비싼 비용만큼 치료 효과가 충분히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비용-효과성 검토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목숨에 대해 국가 사회가 얼마나 비용을 지불할지 결정하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질병 외에도 극단적으로는 큰돈을 지불할 수 있는 소수가 좋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선택해 자녀를 낳을 수도 있다. 기능적으로 우월하고 병에 걸릴 가능성도 낮은 그 자녀들은 좋은 교육 기회와 직업을 독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신 치료도 독점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다수보다 더 긴 평균 수명을 누릴지도 모른다.
 
우월하고 오래 사는 소수의 지배층과 열등하고 오래 살지도 못하는 다수의 피지배층으로 나뉘는 것은 말 그대로 디스토피아다. 그렇다고 그런 걱정 때문에 암 정복이나 치매 예방과 같은, 정밀의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하는 것도 미리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다.
 
정밀의학이 발전하면서 사회적으로 효과와 비용을 저울질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 없던, 유전체 데이터에 따른 차별을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지, 최신 치료 지원을 어디까지 할 것인지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한 정답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오직 사회적 합의만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계속 발전할 정밀의학의 혜택을 함께 누리려면, 사회적인 합의를 위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키워드
바이러스 벡터

바이러스 벡터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
지금처럼 한 가지 약으로 모든 환자를 치료했던 것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환경 등 얻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형에 맞는 예방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성품’이 아니라 ‘주문 제작’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인다는 큰 장점 있지만, 비용이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바이러스 벡터(virus vector)
유전자 손상에서 비롯된 질병을 치료하려면 세포에 정상 유전자를 넣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체에는 여러 장벽이 있어서 유전자를 직접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이 인체를 감염시켜 유전자를 삽입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유전자를 전달하는 수단을 바이러스 벡터라고 부른다.
◆신중현
서울대에서 통계학을 전공, 경영학을 부전공한 뒤 펀드매니저로 일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현재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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