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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선거판으로 컴백한 이광재 …머리는 "전국", 몸은 어디로

2시간 46분.
 
지난달 30일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만찬 시간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30일 사면ㆍ복권으로 피선거권을 회복한 이 전 지사가 처음 만난 민주당 사람이다. 첫 만남치곤 형식이 이례적이었다. 민주당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사전에 공개하고 “브리핑도 한다”고 안내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 전 지사로부터) 총선 출마와 전체 선거에 기여하겠다는 답을 받기 위해 만든 그림”이라고 말했다. 만찬 시작 40여 분 만에 먼저 나온 이재정 대변인은 이 전 지사의 공동선대위장직 수락 사실을 알렸다. 이 대변인은 “이 전 지사가 강원지역 선거를 이끌면서 전체 선거에 지혜를 보탤 수 있다고 생각해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 앞에서 먼저 도착한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마중했다.[연합뉴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 앞에서 먼저 도착한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마중했다.[연합뉴스]

강원도와 민주당  

 
현재 8개 선거구가 있는 강원도는 보수진영의 절대 우위였다. 1987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중도 또는 진보 진영이 강원도 전체에서 우위를 점한 적은 없었다. 1988년 총선에선 노태우 총재가 이끌던 민정당이, 1992년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이 14석 중 8석을 차지했다. 이후로도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꿔 온 보수정당의 강세였다.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152석)을 차지했던 2004년 17대 총선 때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당선된 후보는 이광재와 조일현 둘뿐이었다. 
 
2010년 6월 이광재 전 의원은 민주당 소속으로 처음 강원지사에 당선됐다. 2011년 이 전 지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유죄 판결로 하차한 뒤 최문순 지사가 보궐선거부터 3연속 당선됐지만, 총선 성적표는 바뀌지 않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9석 모두를 석권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된 건 송기헌 의원(원주을) 한 명이었다.
  
그러나 강원도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에겐 승부처다. 준연동형 비례제로 비례 의석이 10석 가까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선거구 획정도 민주당 강세인 수도권에서 손실이 불가피하다. 조국 사태로 추락한 영남권 민심은 회복 기미가 없고, 최근 우한 교민 수용 논란 등을 거치며 “충청권도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호남을 제외하고는 현재 의석에서 늘릴 구석이 없다. 강원도 선거판을 바꿔야 한다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이런 발상도 이광재가 없었으면 생각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4·13총선 강원 지역 결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2016년 4·13총선 강원 지역 결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꽃 가마 탈 생각 없다"

 
이 전 지사는 30일 만찬 직후 강원도 출마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이 대표의 각별한 말이 있었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생각하겠다”고 한 게 전부였다. 이 전 지사가 어디에 출마하느냐는 지난해 연말 사면 직후부터 민주당의 주요 변수였다. 한때는 서울 종로 출마설도 나왔다. 정세균 총리가 총리 지명 전에 이 전 지사와 가까운 심기준 의원을 통해 "이광재라면 지역구를 양보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사실 이 전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한 1998년부터 종로에 살아왔다. 그러나 이 전 지사는 주변에 "당에 부담을 줬던 사람인데 꽃가마 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강원도 어디에 출마하느냐다. 면적 대비 인구가 적은 강원도 특성상 어느 지역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 전 지사의 가용 동선과 파급력이 달라진다. 의원시절 지역구인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을 다시 택하기는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역은 총 면적 4114.72㎢로 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4154.61㎢)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넓은 지역구다. 평창 최북단에서 태백 최남단까지 직선거리로만 약 88㎞다.
 
일단은 강릉이 거론된다. 87년 이후 민주당 계열 당선자가 한번도 없었던 험지 중의 험지여서 당선의 상징적 의미도 크다. 대신 “이 전 지사가 강릉에 출마한다면 '올인'해야 하는 탓에 타 지역 지원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대체지는 원주갑 또는 춘천이다. 춘천 현역의원인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31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이광재, 고민하지 말고 춘천에 출마하기 바란다”며 “나와 동갑이지만 정치 선배이니 한 수 배우고 싶다”고 적었다. 
 
원주갑은 가능성이 더 높다. 원주고 출신인 이 전 지사로선 연고가 확실한 데다, 지역위원장인 심기준 의원(비례)의 불출마 선언으로 입성에 따른 마찰 우려가 없다. 원주을 현역인 송기헌 의원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원주는 접경 지역인 경기도와 충북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몸보다 머리

 
2003년 4월21일 이광재(오른쪽) 국정상황실장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정만호 정책상황비서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2003년 4월21일 이광재(오른쪽) 국정상황실장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정만호 정책상황비서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30일 회동 당시 이재정 대변인은 백브리핑에서 "전체 선거에서의 지혜"라는 말을 했다. 이 전 지사는 최근까지 싱크탱크 여시재를 이끌며 세계 각국의 자원ㆍ산업ㆍ정치ㆍ역사 등을 섭렵해왔다. ‘좌희정 우광재’ 시절에도 이 전 지사의 주요 역할은 정책기획과 인재풀 형성이었다. 
 
이날 만찬 직후 기자들과 짧게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질문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정책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최근 방문한 네덜란드 바헤닝언 푸드밸리 이야기를 꺼낸 뒤 “인구 3만6000명밖에 안 되는 도시의 식품 클러스터에 매출이 70조 넘는 회사도 있다”며 “교육개혁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낼 미래지식을 어떻게 갖느냐에 미래가 달렸다”고 말했다. "포퓰리즘 정책만 내놓는다"라는 비판에 휩싸인 민주당으로선 '정치인 이광재의 머리'가 새삼 중요할 시기다. 
 
이 전 지사 측근은 “이해찬 대표가 이 전 지사의 아이디어를 높게 산 건 오래전부터다. 두 사람의 케미는 좋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함께 ‘노동위 3인방’으로 불렸던 1988년, 이 전 지사는 노무현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1996년 3월 노점에서 음식을 시식하며 상인의 이야기를 듣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오른쪽)와 이광재 비서(왼쪽) [노무현 사료관]

1996년 3월 노점에서 음식을 시식하며 상인의 이야기를 듣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오른쪽)와 이광재 비서(왼쪽) [노무현 사료관]

 
임장혁ㆍ정희윤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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