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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끝이 멀지 않았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완물상지(玩物喪志)’란 말을 흔히 한다. 주지하다시피 ‘물건에 지나치게 빠지면 본뜻을 잃는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각종 분야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애호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됐다. 비싼 오디오 기기에 집착하는 음악 애호가들처럼 완벽한 음질을 추구하다가 자칫 음악 아닌 음향만 좇는다는 비아냥을 듣는 까닭이다. 신제품만 나오면 무조건 지르고 보는 아마추어 골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빠지면 다움을 잃는다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않고
부하들도 부하답지 않으니
이런 정권은 오래갈 수 없다

완물상지에는 그보다 덜 쓰이지만 더욱 의미심장한 대구(對句)가 있다.  ‘완인상덕(玩人喪德)’이다. 말 그대로 ‘사람에 지나치게 빠지면 본 덕을 잃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덕이란 개인으로서의 덕성, 즉 ‘~다움’을 의미한다. 군주가 신하한테 빠지면 군주다움을 잃고, 신하가 군주에게 빠지면 신하다움을 잃는다는 얘기다.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 말을 한 사람은 고대 중국, 주나라 무왕의 동생이자 신하였던 소공(召公)이다. 참으로 깐깐한 인물이었나보다. 그깟 개 한 마리를 두고 그런 말을 했으니 말이다.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세상을 바로잡자 사방에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중 오늘날 티베트 일대에 있던 ‘여(旅)’나라에서 사자처럼 갈기가 있는 커다란 개를 선물로 보냈다. 요즘 애견인들이 ‘짱오’ 또는 ‘티베탄 마스티프’라 부르는 개의 일종일 터다.
 
무왕이 신기해하며 개하고 노는 시간이 길어지자 소공이 지적하며 한 말이 ‘완인상덕완물상지’다. 『서경(書經)』 ‘여오(旅獒 여나라의 개)’편에 나오는 얘기다. 개를 두고 말하면서도 소공은 ‘완물’보다 ‘완인’을 앞세웠다. 완인의 폐해가 완물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까닭이다. 사람에 빠지면 모든 걸 잃는다. 다움을 잃는데 뜻을 지킬 수 있겠나 말이다.
 
오늘날 이 나라 국민만큼 3000년 전 소공의 지혜를 뼈저리게 체감하는 사람들도 없을 듯하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은 “마음의 빚”을 진 부하에 빠져 대통령다움을 잃었다. 스스로 온 국민의 대통령이기를 거부하고 지지자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많은 국민이 그 잘난 부하로부터 받은 상처와 박탈감은 헤아리지 못하고 부하의 낙마만 가슴 아팠다.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국민에 진 빚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선데이 칼럼 2/1

선데이 칼럼 2/1

대통령은 또 ‘관운(?)’이 없었던 옛친구에 빠져 대통령다움을 다시 잃었다. 그 친구의 “시장 당선이 소원”이라고 공공연히 외쳤다. 그러자 그의 비서들도 상관에 빠져 부하다움을 잃었다. 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일심동체로 뛰었다. 당내 후보 경쟁자를 매수해 출마를 포기시키고, 전임 시장에 대해 경찰에 하명수사를 시켰으며, 선거 공약 수립까지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온갖 추악한 짓은 다 하고 다니다 구속된 인물을 자기편이라고 내부감찰을 막기까지 했다.
 
부하다움을 잃은 마름들은 주인 행세를 했다. 검찰의 출석 요구를 무시했고, 법원이 발부한 영장 집행도 거부했다. 대통령이 빚진 상사의 아들 입시에 도우미로 활약했다는 비서관은 자신이 기소되자 “쿠데타”를 운운하는 주제넘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는 사이 선거와 삼권분립에 기대서는 민주주의는 짓밟히고 구겨졌다.
 
선거 공작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옥죄어오자 대통령은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인사로 또다시 대통령다움을 잃었다. 신임 법무장관 역시 임명권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장관다움을 잃었다. 알고 보니 ‘우리 편’이 아니었던 검찰총장의 팔다리를 자르는 인사를 두 차례나 강행함으로써 후흑(厚黑)의 진면목을 보였다. 검찰이 행정부의 시녀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장관의 개별 사건 개입을 금지한 검찰청법은 안중에도 없었다.
 
잘려나간 자리에 새로 올라선 검사들도 임명권자에 빠져 검사다움을 잃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본연의 자리 대신 피의자를 변호하는 자리에 섰다. 후배 검사들의 기소 의견을 묵살했고 상관의 기소 지시를 거부했다. 후배들한테 “당신이 검사냐”는 소리를 듣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저 높은 곳 청와대만 향했다.
 
여당은 여당다웠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언급할 필요가 없고, “증거 보존을 위해 컴퓨터를 빼돌렸다”는 놀라운 정신세계를 보여준 인물도 이라크 파병이나 강정마을 문제 등에서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했던 사람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모두 사람에 빠진 결과다. 사람에 빠지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결국 저를 위해서다. 대의를 외치며 자신을 위해 행동하니 다움을 잃고 뜻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그렇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냐 너냐의 문제다. 이런 조직이, 이런 행정부가, 이런 정권이 오래갈 수 없다. 오래 가서도 안 된다.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소공은 ‘공휴일궤(功虧一簣)’, 즉 ‘큰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의 흙만 모자라도 허물어진다’고 했다. 지금은 위에서 아래까지 각자가 삼태기(그것도 술술 새는)를 메고 제 방향으로 뛰고 있으니 산이 될 리 만무하다. 그렇게 오래 뛸 수 없다. 끝이 보인다. 끝이 멀지 않았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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