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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스페인독감…바이러스의 습격, 과학으로 극복

[신종코로나 비상] 지구촌 확산 전염병 역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감염증인 우한(武漢) 폐렴은 통제될까, 아니면 전 세계로 확산해 인류를 위협할까. 세계보건기구(WHO)가 30일(현지시간) 이와 관련,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불안과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WHO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이날 “비상사태 선언의 이유는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사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이뤄지는 병의 확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교역과 이동 제한은 권고하지 않았다. 그는 “보건 체계가 취약한 나라로 병이 확산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WHO의 비상사태 선언은 2009년 H1N1 바이러스에 의한 신종플루, 2014년 소아마비,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2016년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2019년 콩코민주공화국(DRC)의 에볼라에 이어 6번째다.
 

1918년 스페인독감
한국서도 740만 감염, 14만명 사망
화가 클림트, 사회학자 베버도 숨져
예방접종, 의료진 보고 중요성 확인

14세기 흑사병
야생 쥐 잡아먹다 쥐벼룩에서 전파
감염자 60~90% 숨져 치사율 높아
예전 인구 회복하는 데 200년 걸려

전염병 원인·전파를 연구하는 역학(疫學)에선 전염병·감염병이 지역에서 퍼지는 걸 유행(Epidemic), 여러 대륙이나 전 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걸 범유행(Pandemic)이라 부른다. 현대사가 기록한 최대의 범유행은 1918~20년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스페인독감’이다. 약 5억 명이 감염돼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은 5000만~1억 명의 희생자를 냈으니 전쟁보다 무서운 질병이었다. 당시 전 세계 인구의 3~5%가 목숨을 잃었다. 1차대전에선 2050만~2200만 명의 군인과 1100만 명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흑사병, 중국서 실크로드 따라 확산
 
1918년 스페인독감 환자를 격리 수용한 미국 켄자스주의 임시병동 모습. 당시 스페인독감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해 74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앙포토]

1918년 스페인독감 환자를 격리 수용한 미국 켄자스주의 임시병동 모습. 당시 스페인독감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해 74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앙포토]

스페인독감은 1918년 3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일부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는데 6개월 뒤 미국 보스턴, 프랑스 서부 브레스트,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 등에서 맹독성 독감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남태평양의 절해고도와 북극권 주민도 무사하지 못할 정도였다. 한반도에서도 무오년인 1918년에 대대적으로 퍼져 ‘무오년 역병’으로 불렸다. 740만 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키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년)와 ‘소녀와 죽음’의 에곤 실레(1890~1918년)도 희생됐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고 노래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9년)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인 독일 경제학자·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년)도 포함됐다.
 
초기에 의료 종사자들이 많이 감염되면서 의료체계가 마비돼 희생자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계기로 예방접종의 중요성이 강조됐고 특히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최우선적·의무적으로 접종하게 됐다. 전염병에 대응하고 있는 의료기관·의료인의 처벌을 압박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미국에서 처음 인지한 질환을 스페인독감으로 표현한 이유는 1차대전 중이던 당시 각국이 전시 보도통제로 쉬쉬했고 중립국 스페인에서만 진실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전염병 대응이 확산을 불렀다는 교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통제에도 투명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14세기 벨기에 토리네이시의 흑사병 대유행을 그린 그림. [사진 디아스포라박물관]

14세기 벨기에 토리네이시의 흑사병 대유행을 그린 그림. [사진 디아스포라박물관]

인류가 겪은 최대의 범유행 전염병은 아무래도 14세기 흑사병이다. 감염자의 60~90%가 숨질 정도로 치사율이 높은데 유럽에선 1346년~1353년 절정기에 인구의 30~60%가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선 7500만~2억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범유행은 희생자가 너무 많아 추가로 감염될 사람이 별로 없을 지경이 돼서야 가라앉았다.  
 
4억7500만 명 정도였던 14세기 세계 인구는 흑사병이 지난 뒤 3억45000만~3억7500만 명으로 줄었는데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200년이 걸렸다고 한다. 흑사병은 그 뒤로도 1840년 마지막 유행까지 반복해서 유행하며 유럽을 괴롭혔다.
 
과거엔 서양 전염병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동서양 모두에서 발병한 글로벌 전염병으로 본다. 원인은 쥐벼룩에 붙어사는 페스트균이다.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이 원인이다. 쥐는 페스트균에 면역력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없어서 인간에 옮아온 페스트균이 재앙을 일으켰다.
 
이 병은 14세기 신흥세력인 몽골이 중국 북부 금나라(1115~1234)와 남부 남송(1127~1279)을 차례로 무너뜨린 전란과 살육의 시대에 처음 나타났다. 쥐벼룩에 기생하던 페스트균은 기근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주린 배를 채우려고 야생 쥐를 잡아먹으면서 인간 몸으로 옮아갔을 수 있다. 숲 속 야생 쥐들이 홍수·지진 등으로 서식 환경이 격변하자 먹이를 찾아 인간이 사는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야생 쥐는 페스트균이 우글거리던 쥐벼룩을 달고 왔으며 이는 기근으로 면역력이 바닥이 됐을 인간들을 덮쳤다. 페스트균은 원정과 교역에 나선 몽골군과 상인과 함께 초원길과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인도·유럽으로 번졌을 것이다.
  
미생물에 의해 감염성 질환 발생
 
흑사병이 유럽에 들어간 경로는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1347년 흑해 연안, 크림반도 동부의 카파(페오도시야) 항구에서 시작했다. 이탈리아 서북부 제노바 상인의 무역 거점이었다. 인근 킵차크 한국의 군주 자니베크 칸(재위 1342~57년)은 상인들과 분쟁이 생기자 4만 병력으로 도시를 포위했는데 갑자기 역병이 돌았다. 자니베크 칸은 투석기를 이용해 숨진 병사들의 시신들을 성 안에 던져 넣은 뒤 퇴각했다. 세균도 모르던 시절의 세균전이다.
 
난민이 된 카파 상인들은 감사 미사를 마치고 배를 타고 흑해와 지중해를 거쳐 2500㎞의 항해 끝에 제노바로 귀향했는데 여행에는 쥐·쥐벼룩·페스트균도 동행했다. 제노바 도착 이듬해인 1348년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대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인류는 이미 14세기에 글로벌 이동과 무역, 분쟁과 난민 이동, 세균전으로 전염병 확산을 경험했다. 안전한 글로벌화를 위해선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검역이 필수적임을 이미 670여 년 전에 확인했다. 인류가 미생물을 육안으로 보고, 감염병 원인임을 확인하기도 전의 일이다.
 
보이지 않은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 밝힌 것은 네덜란드 델프트의 무역업자·과학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과거 뢰벤후크로 표기·1632~1723년)이다. 그는 자신이 갈아 만든 렌즈로 현미경을 만들어 빗물 속의 미생물을 관찰해 존재를 확인했다.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년)는 미생물 배양법을 개발했으며 감염성 질환은 미생물이 몸에 들어와 증식하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 뒤 의료계·산업계는 수술실 소독, 우유 등 식품 멸균법, 백신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1843~1910년)는 감염병은 오로지 원인 미생물에 의해서만 발병한다는 ‘코흐의 공리’를 발표해 ‘세균학의 아버지’가 됐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1749~1823년)는 1800년 바이러스로 발병하는 천연두를 예방하는 종두법을 개발했다.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과다. WHO는 1979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인류가 과학으로 질병을 극복한 첫 사례다.
 
WHO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중국이 발생 보고, 원인 미생물 분리·동정(어떤 종류인지 확인하는 것), DNA 염기서열 확인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 의학·과학 수준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제 이 병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남은 일은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치밀한 검역 활동을 펼치는 일이다. WHO가 이동 제한 대신 검역 강화로 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
 
주목할 점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엔 치료법이 없고 증세를 완화하는 대증요법과 개인 면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영양부족이나 과로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저개발국이나 취약지역 주민에게 병이 번지면 사태가 커질 수 있다. 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검역 강화만큼 인도주의적인 국제연대도 절실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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