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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기둥에 구구절절 … 주련 안 봤다면 사찰 껍데기만 본 셈

“저런 게 있었네요.”

사찰 건물의 좌우명 새겨진 문구
한자에 뜻 어려워 지나치기 일쑤
'패싱'하면 오래된 기와집만 본 것

지난달 27일 강화도 마니산의 정수사. 경기도 고양시에서 왔다는 50대 중반 부부는 사찰에 주련(柱聯)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단다. 새해가 밝자 수능을 보게 되는 막내딸을 데리고 와 치성을 드린 부모도, 병상에 누운 노모의 건강을 기원하는 60대 남성도 주련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련은 그곳에 있었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지난 1월 22일 북한산 진관사 나가원 옆으로 한 방문객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나가원의 마지막 8번째 기둥의 주련은 바로 앞 주련과 함께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처세약무호말선(處世若無毫末善) 사장하물답명후(死將何物答冥候)' 세상 살아감에 작은 일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장차 죽어서 염라대왕 물음에 무엇으로 대답하리. (『산사의 주련』 참고함)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22일 북한산 진관사 나가원 옆으로 한 방문객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나가원의 마지막 8번째 기둥의 주련은 바로 앞 주련과 함께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처세약무호말선(處世若無毫末善) 사장하물답명후(死將何物答冥候)' 세상 살아감에 작은 일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장차 죽어서 염라대왕 물음에 무엇으로 대답하리. (『산사의 주련』 참고함) 김홍준 기자

주련은 사찰과 궁궐, 고택 등의 기둥에 걸어놓은 연구(聯句)를 말한다. 고전 문헌에서 따오거나 스승·지인의 가르침을 받아 쓰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짓기도 했다. 널빤지에 새겨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며 이야기와 깨달음이 펼쳐진다.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주련은 건물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는 메시지”라며 “선인들이 일상에서 수양에 힘쓰고 운치를 누렸다는 문화의 발자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주련 관심 없으면 승려도 눈뜬장님”

정수사 대웅보전은 600여 년 전(1423년·세종5년) 만들어졌다. 통나무를 깎아 새긴 꽃병 문양  문창살 뒤 부처는 바다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툇마루도 있는데, 이런 형식의 법당은 안동 개목사 원통전을 포함해 전국에 두 곳뿐이다.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강화도 정수사 대웅보전. 툇마루가 있는 법당과 통나무를 깎아 만든 꽃병 문양 문창살이 독특하다. 이 대웅보전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本來非皂白)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산사의 주련』 참고함) 김홍준 기자

강화도 정수사 대웅보전. 툇마루가 있는 법당과 통나무를 깎아 만든 꽃병 문양 문창살이 독특하다. 이 대웅보전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本來非皂白)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산사의 주련』 참고함) 김홍준 기자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本來非皂白)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양근모(58·필명 한민) 도서출판 청년정신 대표도 2000년대 초반 어느날 정수사를 찾아 이 주련을 봤다. 성공에 집착했다. 너와 내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느라 피폐해져 있었다. 주련을 찬찬히 뜯어봤다. 길다, 짧다, 검다, 희다는 것은 어리석은 나의 분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성공과 이익을 향한 욕망 대신 맑음과 자유를 찾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능가산 내소사 천왕문 주련. 탁명종락우죽비(鐸鳴鍾落又竹蓖) 봉비은산철벽외(鳳飛銀山鐵壁外) 약인문아희소식(若人問我喜消息) 회승당리만발공(會僧堂裡滿鉢供)-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 은산철벽 넘어나는 봉황. 누군가 내게 기쁜 소식 물어온다면 대중 방에 큰 공양 올리리라. (『산사의 주련』 참고함) 사진 양근모(필명 한민)

능가산 내소사 천왕문 주련. 탁명종락우죽비(鐸鳴鍾落又竹蓖) 봉비은산철벽외(鳳飛銀山鐵壁外) 약인문아희소식(若人問我喜消息) 회승당리만발공(會僧堂裡滿鉢供)-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 은산철벽 넘어나는 봉황. 누군가 내게 기쁜 소식 물어온다면 대중 방에 큰 공양 올리리라. (『산사의 주련』 참고함) 사진 양근모(필명 한민)

가야산 해인사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적광전. 6개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 여운충만일체토 (如雲充滿一切土)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 광상소조함환희(光相所照咸歡喜) 중생유고실제멸(衆生有苦悉除滅) - 부처님이 대광명을 두루 놓으시니 형과 색과 모양이 가없어 지극히 청정하시네. 구름이 모든 국토에 충만하듯이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네. 광명이 비치는 곳 넘치는 환희여 중생은 고통을 씻은 듯이 잊는구나. (『산사의 주련』 참고함)  사진 양근모(필명 한민)

가야산 해인사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적광전. 6개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 여운충만일체토 (如雲充滿一切土)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 광상소조함환희(光相所照咸歡喜) 중생유고실제멸(衆生有苦悉除滅) - 부처님이 대광명을 두루 놓으시니 형과 색과 모양이 가없어 지극히 청정하시네. 구름이 모든 국토에 충만하듯이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네. 광명이 비치는 곳 넘치는 환희여 중생은 고통을 씻은 듯이 잊는구나. (『산사의 주련』 참고함) 사진 양근모(필명 한민)

부산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의 주련은 정수사 대웅보전의 그것과 똑같다. 성철 스님(1912~1993)의 스승인 동산 스님(1890~1965)이 범어사에서 입적 1주일 전 “부귀영화가 무엇이란 말인가. 헛욕심들 버리시게”라며 법문을 설파했다. 주련은 사찰의 좌우명이다. 정수사도, 범어사도 질긴 탐욕의 불을 끄자고 말하는 것이다.
 
주련은 쉽지 않다. 눈에 띄지도 않는다. 산사를 찾은 이들에게는 그대로 지나치는(패싱)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수사 외에도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북한산 도선사, 도봉산 망월사를 찾은 20여 명에게 물어봤지만, 주련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이전에 주련을 봤어도 뜻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속리산 법주사 조실인 월서(84) 스님은 “20세에 출가 후 해인사를 들락거렸어도 주련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나도 눈뜬장님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 30여 곳의 사찰 주련에 관한 이야기를 묶어 『깨달음이 있는 산사』를 펴냈다. 월서 스님은 “해인사 법보전에 걸린 주련을 보고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깨달음이 있는 곳은 그 어디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이 자리다.
 
월서 스님은 “깨달음은 쉬운 곳,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의미”라며 “불자가 아니어도 관심을 갖고 천천히 곱씹는다면 누구든지 주련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한민 작가는 “그 전에 주련을 보았으되, 본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련을 살펴보고 음미하지 않으니 그동안 사찰에 가서도 오래된 기와집만 보고 온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민 작가는 이후 『산사의 주련』을 3권까지 냈다. 그는 “그저 절 한 바퀴 돌고 나온다면 아무런 감동이 없는 발품일 뿐”이라며 “사찰의 역사와 이야기를 알고 이해하면 주련에 다가서기 쉽다”고 귀띔했다.
 
# “역사·이야기와 버무려야 이해 쉬워”

사찰에 가는 것은 그 공간에 서려 있는 역사와 이야기와의 공감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강화 정족산 전등사에는 이야기 두 토막이 담겨 있다.
  
승려들이 산으로 쫓겨 올라간 조선 시대, 전등사는 열 가마도 안 나오는 은행을 공물로 스무 가마 바쳐야 했다. 도력 높은 추송 스님을 인근 백련사에서 데려와 사흘간 기도를 드렸다. 그 후로 전등사에는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공물을 낼 일도 없어졌다.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대웅보전 처마 밑의 나부상. 중앙포토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대웅보전 처마 밑의 나부상. 중앙포토

대웅보전 처마 밑의 나부상은 대웅보전(1622년·광해14년 준공) 건축을 맡은 도편수의 ‘치정 복수극 작품’이었다. 자신의 돈을 갖고 튄 주막 여인네는 영원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지붕을 떠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신보편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월인천강일체동(月印千江一切同).' 부처님은 온 세상에 천 개의 강에 달그림자 비치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 너도 나도 가능하다. 업보의 무게를 감당하며 벌서는 나부상도 따지고 보면 부처와 다름없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지난해 12월부터 공사 중이었다. 기와 교체 작업이라니, 이참에 나부상이 업보에서 벗어날리는 없을 듯 하다. 이어지는 대웅보전의 주련은 이렇다. ‘사지원명제성사(四智圓明諸聖士) 분림법회리군생(賁臨法會利群生).' 사지에 밝으신 모든 성스러운 분들 큰 법회에 오셔서 많은 중생 이롭게 하네.
 
마침 한 아이가 신발을 벗고 이 두 개의 주련 사이를 통해 대웅보전에 들어갔다. 깨달음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대웅보전의 주련은 ‘불신보편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월인천강일체동(月印千江一切同) . 사지원명제성사(四智圓明諸聖士) 분림법회리군생(賁臨法會利群生)’이다. '부처님은 온 세상에 계시니 천 개의 강에 달그림자 비치는 것과 같다. 사지에 밝으신 모든 성스러운 분들 큰 법회에 오셔서 많은 중생 이롭게 하네'라는 뜻이다(『산사의 주련』 참고함). 지난 1월 27일 한 아이가 대웅보전 주련 사이를 통해 법당에 들어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 대웅보전의 주련은 ‘불신보편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월인천강일체동(月印千江一切同) . 사지원명제성사(四智圓明諸聖士) 분림법회리군생(賁臨法會利群生)’이다. '부처님은 온 세상에 계시니 천 개의 강에 달그림자 비치는 것과 같다. 사지에 밝으신 모든 성스러운 분들 큰 법회에 오셔서 많은 중생 이롭게 하네'라는 뜻이다(『산사의 주련』 참고함). 지난 1월 27일 한 아이가 대웅보전 주련 사이를 통해 법당에 들어서고 있다. 김홍준 기자

한민 작가는 기자의 요청에 지역별로 6곳의 사찰을 추천했다.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통도사에서 강탈당한 진신사리를 되찾아 봉안했다는 금강산 건봉사(강원), 백범이 대웅전 주련을 보고 나무를 심었다는 태화산 마곡사(충청), 한때 수행을 위해 이불이 없었던 도봉산 망월사(서울), 매화 향 그득할 때 내려가니 만암 스님(1875~1957)의 ‘이뭣고’라는 화두가 머리에 쿵 박혔다는 백암산 백양사(전라), 주련과 불경을 한글로 만드는데 평생을 바친 운허 스님(1892~1980)이 기거한 운악산 봉선사(경기), 대웅전의 주련을 보면 문득 달을 쳐다보게 된다는 영축산 통도사(경상)다. 

 
하지만 한민 작가는 “절은 저마다의 운치와 의미가 있어 리스트라는 건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백암산 백양사에서 한 불자가 청운당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다. 울타리 너머 살짝 보이는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아여하설(敎我如何說) 오심사추월(吾心似秋月) 벽담청교힐(碧潭淸皎洁) 무물감비륜(無物堪比倫) 청광전갱다(淸光轉更多) 호리구병적(狐狸俱屛迹) 사자분전모(獅子奮全毛) 작각월중계(斫却月中桂)-가을 달 닮은 내 마음에 무슨 말을 시키는가. 맑고 맑은 푸른 못에는 견줄 것이 하나 없다. 푸른 눈빛 더욱 짙어 여우 이리 자취 없고 금털 세운 사자 위엄 계수나무 베어지네. (『산사의 주련』 참고함) 사진 양근모(필명 한민)

백암산 백양사에서 한 불자가 청운당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다. 울타리 너머 살짝 보이는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아여하설(敎我如何說) 오심사추월(吾心似秋月) 벽담청교힐(碧潭淸皎洁) 무물감비륜(無物堪比倫) 청광전갱다(淸光轉更多) 호리구병적(狐狸俱屛迹) 사자분전모(獅子奮全毛) 작각월중계(斫却月中桂)-가을 달 닮은 내 마음에 무슨 말을 시키는가. 맑고 맑은 푸른 못에는 견줄 것이 하나 없다. 푸른 눈빛 더욱 짙어 여우 이리 자취 없고 금털 세운 사자 위엄 계수나무 베어지네. (『산사의 주련』 참고함) 사진 양근모(필명 한민)

# “주련 입문 1단계는 스마트폰 이용”

어렵지만 주련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민 작가는 “절의 외형은 어디든 비슷한데, 주련은 각 사찰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는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주련을 곱씹으면 사찰은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덧붙였다. 월서 스님은 “주련 없이는 옷만 걸친 상태, 또는 껍데기만 본 채 사찰의 절반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사찰 주련 전문가는 “불교는 형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불교가 사회와 관계를 갖게 되면서 가람이라는 건물 배치의 형상이 필요했는데, 주련이 없다면 각 건물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찰들도 좀 더 쉬운 주련을 선보이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도봉산 망월사, 강화 정족산 전등사 등은 주련 밑에 해석을 달아줘 이해하기 쉽게 해주고 있다. 운악산 봉선사, 안성 서운산 석남사, 서울 삼청동 칠보사, 지리산 화엄사 등은 아예 한글로 주련을 만들어 걸기도 했다. 
 
주련이 수십, 수백 년 비바람에 맞다 보니 일부는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게 마모되거나 소실되기도 했다. 이광호 교수는 “민족 유산인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사찰 전문가는 “요즘 불자들이 한문을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불교가 더 멀게 느껴진다”며 “기존 문화재는 보존하되 한글 편액과 주련을 늘려 대중화에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월서 스님은 주련 입문 1단계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미소 지었다. “아, 스마트폰이 있잖아요~.” 깨달음은 쉬운 곳에 있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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