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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본 유입 끊기자, 제주 땅·집값 10년 만에 미끄럼…대출 16조 어쩌나

부동산 거품 빠진 제주, 무슨 일이 

공사 중단으로 흉물이 된 제주도의 민자 유치 1호 사업인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서귀포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지만, 미숙한 행정처리 등으로 소송에 휘말리면서 5년 넘게 사업이 멈춰 서 있다. 황정일 기자

공사 중단으로 흉물이 된 제주도의 민자 유치 1호 사업인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서귀포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지만, 미숙한 행정처리 등으로 소송에 휘말리면서 5년 넘게 사업이 멈춰 서 있다. 황정일 기자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차를 타고 모슬포항 방향으로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입주자 모집 플래카드나 공사가 중단된 단독·연립주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안덕면 등 제주 남서쪽은 제주시나 서귀포시, 애월·중문 등 도심이나 인기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해 최근 주택 개발이 많았던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은 집 일부는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곳이 여기뿐만이 아니다. 제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여름 한 대형 건설사가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인근에서 분양한 아파트도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이 아파트 분양소장은 “1~2년 전만 해도 주택 수요가 많아 분양이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수요가 좀 뜸하다”며 “몇 달째 개점휴업 상태”라고 전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제주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700가구를 넘어섰다. 지금은 1000가구가 넘는다. 특히 이 중 상당 수가 ‘불꺼진 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811가구)이다.
 

투자진흥지구 등 외자유치 나섰지만
사드 이후 한·중 관계 악화 직격탄
준공 후 미분양 ‘불꺼진 집’ 811가구

예래주거단지·헬스케어타운 등
굵직한 사업 잇단 중단에 수요 뚝

서귀포 84㎡형 1년 새 1억 내려
 
폭주 기관차 같았던 제주 부동산시장에 변화가 감지된 건 지난해부터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제주 땅값은 전분기 대비 0.44% 올랐다. 하지만 2분기부터 고꾸라지기 시작하더니 연간 기준으로 1.77% 내렸다. 제주 땅값이 떨어진 건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집값도 10년 만에 마이너스(-0.24%)를 기록했다. 지난해 초 6억원에 실거래 신고된 서귀포 강정지구 중흥S클래스 전용면적 84㎡형은 현재 4억5000만~5억5000만원 선에서 매물이 나온다. 중문에서 11년째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사장은 “지난해부터 외지인 등 원정 투자자는 물론 중국인도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받아주는 수요가 없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주택 수요가 줄면서 매물이 쌓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런 분위기는 인구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이후 연간 1만3000명씩 늘던 제주 인구는 지난해 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폭이 가장 컸던 2016년(1만8000명)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으로 확 쪼그라든 것이다. 특히 12월에는 전입(8627명)보다 전출(8651명)이 많았다. 순유출을 기록한 건 2011년 12월(-12명)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지역 전문가들은 인구 증가 폭이 둔화한 요인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 중단을 꼽는다. 제주도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10년 전후로 투자진흥지구를 지정하고, 부동산투자이민제를 시행했다. 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를 중심으로 민간 자본 유치을 위한 각종 개발 사업을 펼쳤다. 그 결과 중국·말레이시아 등의 자본이 건너와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신화역사공권, 제주헬스케어타운 등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주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개발 사업 덕에 관광 자원이 늘면서 관광객도 덩달아 증가세를 보였다. 집값·땅값이 들썩이자 내국인 원정 투자자까지 가세하면서 제주 부동산 가격은 말 그대로 수직 상승했다. 정부의 신공항 개발 발표 직후인 2016년에는 땅값이 8% 이상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한·중 갈등을 부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JDC의 미숙한 행정처리 등으로 개발 사업은 줄줄이 무산되거나 중단하기 시작했다. 예래휴양형주거단지는 5년째, 헬스케어타운은 3년째 공사가 멈춰 서 있다. 고창덕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제주지부장은 “사업비가 1조원이 넘는 초대형 사업은 공사 근로자만 수천 명에 달해 그 자체로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며 “하지만 이런 사업이 줄줄이 멈춰 서면서 주택 수요가 줄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인구 및 관광객 증가로 하수종말처리장이나 쓰레기처리장 등 도시기반시설 부족 문제까지 불거졌다. 제주시의 경우 하루 음식물쓰레기 처리 용량이 110t이지만, 현재 하루 150t의 음식물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 청정 제주의 이미지까지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사드 사태 이후 줄었던 관광객이 다시 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초대형 개발 사업인 신공항 문제가 해결되지 전까지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신공항은 현재 환경부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도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제주 자가 가구의 연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 배수(PIR)는 평균 6.5로, 17개 시·도 중 서울에 이어 둘째로 높다. 6.5년간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5년 전만 해도 제주 PIR은 9위였다.
 
“호텔 등에 집중한 개발 사업 다양화 해야”
 
집값이 계속 뛰자 뒤늦게 내 집 마련에 나선 실수요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 따르면 주택·토지를 담보로 한 제주의 가계대출 규모는 2018년부터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해 9월 기준 16조원을 돌파했다. 사상 최대로, 부동산 광풍의 후유증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아파트 값이 급등한 서울 등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상봉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멈춰 선 기존 사업을 우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호텔·카지노와 같은 특정 분야에 집중된 개발 사업 자체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장한평역금융센터 지점장은 “부동산시장의 특성상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피해는 실수요자에게 돌아간다”며 “대출을 통해 집과 땅을 산 실수요의 피해를 최소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투자이민제=국내 부동산에 일정액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자격이나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2010년 2월 제주를 시작으로 강원 평창·인천 등지로 확대했다. 제주는 중국인 유입이 급증하자 2015년 투자 대상을 축소하기도 했다.


투자진흥지구=관광·교육·의료·첨단산업 등의 육성을 위해 제주도가 지정한 특정 지역이다. 이곳에 500만 달러(약 6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국내외 기업은 취득세나 개발부담금, 재산세 등이 면제된다.
제주 찍고 서울 상륙한 중국인, 강남·용산도 군침
외국인이 산 서울 집의 61% 차지
강남 13가구, 용산은 21건 사들여
‘집값 버블’ 일으킬 요주의 대상 
 
중국인 투자자들이 제주를 거쳐 서울 주택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외국인이 사들인 서울 주택 1만341가구 중 46.2%인 4773가구를 중국인이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에 뒤를 이어 미국인이 2674가구를 샀고, 일본인도 185가구를 구매했다. 외국인 주택 구매자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5년에는 32.5%였지만 2016년 44.4%에 이어 2017년 50.2%로 절반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61.2%를 차지했다. 이들은 특히 중국인이 많이 사는 구로·금천구뿐 아니라 강남·용산 등지의 주택에 손을 뻗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국인은 2018년 강남에서 11가구를 매입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3가구를 매입했다. 같은 기간 용산 주택도 각각 9건, 21건 구매했다. 아직은 서울 주택 매입 건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제주처럼 집값 불안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인이라도 국내 주택을 매입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에 꼭 부동산투자이민제가 아니라도 언제라도 중국 자본이 밀려 올 수도 있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내국인과 주택 구매 절차가 똑같다. 취득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시·군·구청장에게 신고만 하면 된다. 비거주 외국인은 외국환은행장에게 주택 구입 자금 신고 절차만 거치면 어렵지 않게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인은 서울뿐 아니라 그리스·영국 등 유럽이나 호주의 주요 도시 부동산을 대거 매입해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인이 ‘집값 버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부호가 영국의 대저택을 매입해 눈길을 끌었고, 지난해 초에는 신용카드로 그리스 주택을 매입하는 중국인이 늘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호주에선 500만 호주달러(약 40억원) 이상을 투자해 2017년 투자이민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 1만 명 중 중국인이 90%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각 나라마다 자금출처 조사나 외국인 특별 취득세를 강화하는 등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 문턱을 높여가고 있다.
 
홍철호 의원실은 “외국인은 우리 정부의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나 자금 출처 조사 등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실은 외국인에게 특별 취득세를 부과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인의 주택 구매를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겠지만, 제주나 해외 사례에서 보듯 집값 버블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적절히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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