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858기 추정 동체 촬영 지점서 추락 봤다는 목격자 나와”

KAL 858기 실종 33년

“33년의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실종된 후 백방으로 뛰시던 어머니도 이제는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만 갑니다.”
 

실종자 가족들 정부에 수색 촉구
대형 사고인데 열흘 만에 수색 끝내
과거사위도 1주일 정도 수중조사

전문가 “사고기 잔해 가능성 높아”
가족회 부회장 “어딘가 있을 동체서
실종자 유골 몇점이라도 찾았으면”

지난 29일 중앙SUNDAY와 만난 KAL 858기(보잉 707기종) 가족회 부회장 박은경(55)씨의 얘기다. KAL 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인근 안다만해 상공에서 사라졌다. 이 사고로 탑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전원 실종됐다. 사고 이틀 만에 항공기 폭파범으로 김현희가 체포됐고, 얼마 뒤 국내로 압송됐다. 13대 대선을 불과 하루 남긴 12월 15일이었다. 당국은 사건 한 달 반만인 이듬해 1월 15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원의 폭탄 테러’라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KAL 858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박 부회장의 부친은 당시 교체 승무원으로 탑승하고 있었다. 박씨를 포함한 실종자 가족들은 비행기 동체 등 단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자 한동안 “어딘가에 납치돼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발견된 항공기 부품. 현지 어부들이 발견한 비행기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박은경]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발견된 항공기 부품. 현지 어부들이 발견한 비행기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박은경]

“어머니(차옥정 전 가족회 회장)는 이사를 다니면서도 집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어요. 언제 실종된 아버지가 전화하실지 모르잖아요.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정부가 만든 추모비가 있어요.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거기 잘 안 갑니다. 정부가 제대로 된 수색도 하지 않고 (범인만 잡았다고) 끝낸 거잖아요. 그냥 죽음을 인정하라는 거죠. 어딘가 남아있을지 모르는 동체에서 유골 몇 점이라도 찾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11월, JTBC 탐사 프로그램인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미얀마 현지 취재를 통해 비행기 부품 일부를 확보해 공개했다. 고무 재질의 둥근 튜브인 랜딩기어와 금속 재질로 된 링이었다. 특히 튜브 안에는 ‘굿리치’(GOOD RICH)라는 제조자의 영문 글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굿리치는 세계 최고의 랜딩기어 제조업체로 실제 보인 707기종에도 이 회사 제품이 사용됐다. 당시 JTBC 취재팀이 둘러본 곳의 수심은 50m 정도로 바다 속이 육안으로도 깨끗하게 보일정도로 시정이 좋았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KAL 858기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인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민간인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어 지난 1월 말에는 대구 MBC가 안다만 해역에서 비행기 왼쪽 날개와 엔진, 꼬리 날개 부분을 수중 촬영해 공개했다. 이번에 발견한 비행기 동체가 KAL 858기가 맞다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줄 단서가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비행 기록 장치인 블랙박스가 꼬리 날개 쪽에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당시 사고 조사와 수색은 치밀하지도 끈질기지도 못했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항공 전문가나 구조·수색 관계자들의 얘기다. 사고 직후 태국과 미얀마 국경 지역에 사는 카렌족 목격자의 증언만 믿고 태국 국경 지역 밀림 지역만 일주일가량 수색했다. 이후 미얀마 근해인 안다만 해역으로 수색 지점을 옮겼지만 불과 3일 만에 중단하고 철수했다. 100명이 넘는 탑승객이 실종된 대형 사고가 났는데 불과 열흘 만에 수색을 끝낸 사례는 세계 항공 사고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2006년 미얀마 현지 조사와 수색이 다시 이뤄졌다. ‘수중확인팀’ 일원으로 현지 조사에 참여한 김태정(51·대한수중협회 스쿠버다이빙 강사)씨는 당시 국정원 관계자 등 정부 인사들과 함께 미얀마 인근 해상에서 수색 작업을 벌였다고 했다.
 
“국정원이 확보했다는 목격자는 비행기가 섬과 섬 사이에서 날다가 나무에 부딪혀 인근 바다에 떨어졌다고 증언했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제보자는 가짜였어요. 1주일 정도 수중 수색을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30일 KAL 858기 가족회는 기자 회견을 열고 ’최근 미얀마 앞바다에서 발견된 KAL858기 추정 동체를 정부는 즉각 인양하고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지난달 30일 KAL 858기 가족회는 기자 회견을 열고 ’최근 미얀마 앞바다에서 발견된 KAL858기 추정 동체를 정부는 즉각 인양하고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김씨에 따르면 이후 미얀마 현지에 있는 지인을 통해 중요한 또 다른 제보를 접했다고 한다.
 
“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이 종료된 후 미얀마 당국도 자체 조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2009년 12월쯤 미얀마 정보당국 관계자가 진짜 목격자를 찾았다는 겁니다. 현지인 어부라는 이 목격자에 따르면 마웅마간 섬에서 북서쪽으로 20km 떨어진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데 한쪽 날개가 떨어진 채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했다고 합니다. 수심은 50m 정도고요. 이번 MBC가 동체 추정 물체를 촬영했다는 지점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김씨는 이어 “정부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KAL 858기를 찾으려는 의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미얀마 현지에서 들어온 여러 증언 등이 있었지만 이후 정밀 조사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다 보니 한계가 많았다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실망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2018년 정부 당국은 당시 JTBC가 확보한 잔해에 대한 감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이제 와 KAL 858 잔해인지 확인하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느냐”는 반응을 취재진에게 보였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KAL 858기 가족회와 진상규명위원회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 다시 섰다. 이들은 “최근 미얀마 앞바다에서 발견된 KAL 858기 추정 동체를 정부는 즉각 인양하고 조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박은경 가족회 부회장은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해 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빨갱이라는 둥 온갖 가슴 아픈 얘기를 들으며 살아왔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미얀마 당국에 협조를 구해 적극적인 수색에 나설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2014년 사라진 말레이시아 항공기, 희생자·잔해 하나도 못 찾아
역대 항공 사고 중 KAL 858기처럼 실종돼 동체도, 시신도 찾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2014년 3월 8일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이륙해 중국 베이징으로 가던 MH-370이 관제탑과 교신이 끊긴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출발 40여 분 만이었다. 광범위한 수색 작업이 진행됐다. 말레이시아와 호주, 중국 당국이 공조해 공동 수색을 벌였지만 사고 발생 3년 여 동안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2016년 1월 수색작업이 중단됐다. 탑승객 가족들은 끈질긴 수색 재개 청원을 했고 말레이시아 당국은 기체를 찾지 못하면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의 한 해양 수색 전문업체에 다시 수색을 맡겼다. 이후 2017년까지 조사는 계속됐지만 역시 기체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동체를 찾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은 끈질겼다. 사고 직후 3년 동안 11만 9140㎢ 면적의 해상을 샅샅이 뒤졌다. 비용만 1억 5000만 달러(한화 1780여 억원)가 들었다고 한다.
 
이 사고의 공식 보고서가 나온 것은 2018년 7월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495쪽에 달하는 공식 보고서에서 “충분한 증거가 없어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명확히 특정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사고를 조사한 관계자는 “이를 최종 보고서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며 “어떤 잔해도 발견되지 않았고, 희생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게 최종일 수 있는가?”라고 했다.
 
2009년에는 330명을 태우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를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447기가 대서양에서 실종됐다. 5일이 지나서 기체 잔해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다. 수색은 계속됐고 2년 뒤 심해 4000m에서 블랙박스를 발견했다. 당시 외신은 불가능할 것 같던 블랙박스 발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끈질긴 수색 노력에도 찬사를 보냈다.
 
KAL 858기 가족회 관계자는 "외국의 사고 사례에 비춰 과연 우리 정부가 얼마나 충분히 사고 조사를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