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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의 진보 배제는 위법인가···블랙리스트 운명의 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현직 시절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현직 시절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보수주의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가 예술 단체의 연극과 영화, 전시, 도서 지원금 선정에 개입하고, 좌파 성향이라 판단한 예술과 예술인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정부 지원을 배제한 것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직권남용에 해당하는가. 
 

조국·양승태·황운하 걸린 직권남용 문턱 높아질 가능성
법조계 "직권남용 성립 요건 보다 엄격해질 듯"

직권남용 기준 제시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2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 피고인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7명이다. 2018년 7월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이번 사건을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은 1년 6개월간 격론을 벌여왔다. 선고 막판까지도 판결문 수정이 이뤄질만큼 진보와 보수 성향 대법관간의 논의가 치열했다. 
 
대법원은 이날 선고로 오랜 기간 사문화된 조항이었으나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되살려낸 직권남용죄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방침이다. 30일 선고 결과가 김기춘 등 사건의 피고인뿐 아니라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운명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1·2심 판단 및 형량.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1·2심 판단 및 형량. 그래픽=신재민 기자

법조계에선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직권남용죄 성립 기준이 보다 명확하고 엄격해질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유죄 선고의 문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용복 국정농단 특검보는 중앙일보에 "특검 입장에선 특검의 공소 사실이 모두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직권남용의 시금석이 되는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인가 

대법원이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직권남용 기준 제시의 판결로 선택한 건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사건 내에서 벌어지는 직권남용 행위와 양태가 다양하고 ▶단순 법령 위반을 넘어 문화적 기회의 균등과 사상의 자유란 헌법적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급부행정이란 국가의 역할과 상하관계로 이루어진 피고인 7명의 공범관계가 법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따져볼 게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 직권남용 판례로도 무죄가 충분히 포섭되는 사건"이라 밝혔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달리 안 전 국장의 직권남용 성립 구조는 훨씬 더 간단했다는 뜻이다.
 
2017년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7차 청문회에서 참석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모습. 김현동 기자

2017년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7차 청문회에서 참석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모습. 김현동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1·2심은 영화와 연극, 도서 지원금 사업과 심의 위원 선정에 개입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관련 고위직 인사 대부분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징역 4년)부터 신동철 전 청와대 소통비서관(1년 6월)까지 7명의 피고인 모두에게 유죄가 인정됐다.
 
징역형을 피해간 것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블랙리스트 선정 과정에서 나름의 저항을 했던 김소영 전 청와대 문체비서관뿐이었다. 김 전 비서관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심에서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던 조 전 정무수석의 경우 박준우 전 정무수석이 항소심에서 진술을 뒤집으며 유죄가 인정돼 2년형을 선고받았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대법원 선고 주요 쟁점.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대법원 선고 주요 쟁점. 그래픽=신재민 기자

보수 정부의 진보 차별은 위법인가

대법관들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보수주의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의 '좌파 지원 축소와 우파 지원 확대' 방침이 헌법을 위반한 위법 행위인지, 국가 지원 정책의 우선순위 문제인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1·2심은 "모든 국민은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문을 근거로 블랙리스트 관련자를 단죄했다. 2심 재판장이었던 조영철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정부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문화를 억압하거나 차별적 대우를 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의 길은 폐색되고 전체주의 국가로의 문이 열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관 사이에선 "집권 세력에 따라 정부 행정권의 행사는 원칙적으로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나왔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블랙리스트 공범 여부에 대한 1·2심의 판단이 엇갈려 이 지점 역시 대법관간의 쟁점 사항이 됐다. 1심은 '보수주의를 표방한 박 전 대통령의 우파 지원 확대는 정책선언에 불과하다'고 봤지만 2심은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과 블랙리스트를 구체적으로 공모한 공범'이라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1·2심 재판에서 문체부 블랙리스트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판결을 공직선거법 분리 선고를 이유로 파기환송하며 블랙리스트 부분은 별도의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날 전원합의체 결정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책임 유무도 명확히 가려질 전망이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권남용 문턱 높아질까 

대법관들은 또한 청와대의 지시로 진보 성향의 예술 단체와 예술인의 지원을 배제했던 각 문화·예술 관련 위원회 위원들의 '독립된 권한'이 법적으로 명시된 경우와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의 성립 여부를 다퉜다. 문예기금과 영화기금의 지원 업무를 맡는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법령에 위원의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정부 추천도서를 선정하는 출판진흥원의 경우 위원의 고유한 권한에 대한 법적 조항이 없다. 
 
김기춘 등 피고인 측에선 "최소 출판진흥원의 도서 선정의 경우 청와대와 문체부의 감독 대상"이라며 "특정 도서 배제는 정당한 정부의 행정권 행사"라 항변해 왔다. 1·2심은 예술위와 영진위뿐 아니라 출판진흥원 도서 선정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유죄라 봤다. 단체의 존립 이유를 부정했다는 취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쁜사람'이라고 지목한 뒤 사직을 강요당했던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문재인 정부 초대 문체부 2차관)이 2017년 1월 11일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검사무실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쁜사람'이라고 지목한 뒤 사직을 강요당했던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문재인 정부 초대 문체부 2차관)이 2017년 1월 11일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검사무실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앞서 대법원이 안태근 전 국장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며 직권남용의 핵심 요건인 '의무에 없는 일'은 법령에 근거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안 전 국장의 판결을 따를 경우 소속 위원의 법적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은 출판진흥원 부분은 원심판결이 깨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5월 '직권남용 성립요건'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이완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안태근 판결은 김기춘 판결로 나가는 하나의 징검다리라 생각한다"며 일부 파기환송 가능성을 예견했다. 
 

사표 강요도 최종판단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에는 문화예술 지원배제 문제와 고위 공무원의 사직 강요에 대한 법적 판단도 남아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혀 사직했던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문재인 정부 초대 문체부 2차관)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 사직을 강요당한 3명의 문체부 1급 공무원(최규학, 김용삼, 신용언)에 대한 직권남용 성립 여부도 이날 전합 선고의 쟁점이다. 
 
노 전 국장의 경우 국장급 고위공무원에 대해선 법적 신분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1·2심 모두 사직 강요를 유죄로 봤다. 하지만 법적 신분 보장이 명시돼있지 않은 1급 공무원 사직의 경우 1심은 '대통령 인사권의 재량범위'로 2심은 '불합리한 신분 박탈'로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1·2심 판단 및 형량.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1·2심 판단 및 형량. 그래픽=신재민 기자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의 선고도 늦은 감이 있다며 "보수와 진보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이 직권남용 혐의로 우르르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직권남용에 대한 대법원의 명확한 기준 제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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