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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정규직이 비정규직 착각? 이게 무슨 통계냐" 유경준의 분노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정부는 지난해 고용률(60.9%)이 22년 만에 최고였다고 자랑했다. 취업자가 30만명 늘었다. 한 꺼풀 벗겨보니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노인 등을 대상으로 돈을 퍼부어 잠깐 일하는 자리를 만든 덕분이다. 그 덕에 수치상으로는 좋아 보였다. 이런 허상은 지난해 10월 말 발표된 통계청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비정규직이 전년보다 무려 87만명 늘었다. 역대 최악이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황한 정부가 내놓은 해명은 “정규직이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부 통계의 신뢰성을 정부가 부정한 셈이다. 
 

비정규직 논란에 직접 자료 분석
“정규직이 비정규직 착각했다니
팩트 대신 추정으로 통계 해석
정부 정책의 근간 흔드는 행위”

당시 유경준 전 통계청장(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은 “국가 통계를 팩트 대신 추정으로 해석하는 건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며 혀를 찼다. 참다못한 유 교수가 직접 통계청의 원자료를 분석했다. 31일 한국경제학회의 ‘한국경제포럼’에 실린다. ‘2019년 비정규직 변동의 원인 분석: 2019년 급증한 비정규직 87만명은 어디서 왔는가?’란 제목이 붙었다.
 
전 통계청장인 유경준 한기대 교수는 ’비정규직 급증은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앙포토]

전 통계청장인 유경준 한기대 교수는 ’비정규직 급증은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앙포토]

전 통계청장으로서 통계청의 발표를 재분석하는 건 이례적이다.
“정부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데다 계속 우기고 있어서다. 정부는 비정규직이 확 늘어난 통계 자체를 틀렸다고 한다. 지난 17년간 같은 조사를 했는데, 지난해 것만 유독 신빙성을 스스로 부정했다. 통계가 맞는지, 정부가 왜곡하는지 따져봐야 했다.”
 
정부 해명에 뭐가 문제였나.
“정부는 비정규직 증가가 국제노동기구(ILO)가 권장한 병행조사 때문이라고 한다. 이 조사에서 ‘얼마나 더 일할 거로 보나’라는 질문에 정규직이 ‘얼마 못 다닐 듯하다’는 심리변화를 일으켜 비정규직으로 오답했다는 것이다. 그 규모를 35만~50만명으로 추정했다. 이런 추정을 근거로 비정규직 규모를 축소 해석하는, 또 다른 추정을 했다. 국가 통계를 두고 추정에 추정을 더하는 정부는 없다. 언제부터 인간의 심리변화까지 추측해 통계에 반영했나.”
 
그뿐인가.
“해석에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정부는 기간제·비기간제 근로자 개념과 비정규직·정규직 개념을 동일시했다.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고용기간을 정한 기간제는 비정규직이 맞다. 그러나 기간을 정하지 않은 비기간제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한다. 전체 비정규직의 절반 정도는 비기간제다. 비기간제라도 계약이 반복 갱신되거나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면 비정규직으로 본다. 또 비기간제 중에는 파견, 용역, 일일근로, 가정 내 근로자도 있다. 이들도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정부는 비기간제를 모조리 정규직으로 치부했다.”
 
정부 해석상의 다른 오류도 있나.
"정부는 앞서 얘기한대로 3월과 6월에 두 번의 병행조사를 거친 뒤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하자 비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제 근로자로 답을 바꿨다(오답)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해당 통계는 그 근로자가 실직이나 전직을 하지 않았고, 동일한 일자리에 근무하고 있음이 기본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2019년은 질적인 일자리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따라서 동일인이라고 해도 실직이나 전직을 통해 비기간제에서 기간제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니 동일인을 기준으로 계산했다는 50만(오답자)의 수치는 출발 자체가 과장일 수밖에 없다. 특히 총고용예상기간에 대한 질문으로 과거 비기간제가 기간제로 답변을 바꾸었다는 논지도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근로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사용자와는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는데, 본인의 개인적인 사정(유학, 가사, 결혼 등) 때문에 향후 일할 기간을 스스로 정하거나 판단한 뒤 '얼마 일하지 못 할 것 같다'는 답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통계조사의 기본 상식을 벗어나는 설문이다."
 
그 근거는 뭔가.
“지난해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증가한 일자리는 노인 재정지원 일자리, 보건복지의 신규 일자리, 청년층의 단시간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비정규직이다. 더구나 핵심연령인 40~50대의 취업자 수는 줄었다. 정규직이 준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의 체계상 여러 질문 단계를 거치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걸러져 분류된다. 일부 문항에 착각성 오답을 해도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둔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모르거나 감추고 변명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병행조사의 문항 변경이라는 ‘건’이 걸리자 그걸로 변명하려 든다.”
 
비정규직

비정규직

유 교수는 이런 오류를 제거하고 통계청의 원자료를 분석했다. 결론은 “비정규직이 폭증할 수밖에 없었다”였다. 경제성장률 저하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이 큰 영향을 미친 탓이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임금근로자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1만명 늘었다. 청년층과 60대에서 34만명 증가했다. 60대 증가율은 11.4%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단시간 내지는 정부의 재정지원 일자리에 편입된 비정규직이다. 실제로 60대 이상 고령층의 고용률은 1.4%p 증가했는데, 이는 경제활동 참가자 증가(1.3%p)에 기인한다. 취업률 증가(0.1%p)는 미미하다. 집에서 쉬던 사람이 정부 재정사업에 투입됐을 뿐 실제 취업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근로시간을 보면 비정규직 증가세는 확연하다. 임금근로자 증가분의 절반 이상은 주당 17시간 미만 일한다. 시간제 비정규직이 폭증했다는 얘기다. 특히 청년층의 단시간 근로자가 확 늘었다, 반면 주당 36시간 이상 근로자는 줄었다.
 
또 비기간제 임금근로자는 전년 동기보다 28만명이나 감소했다. 그중 72.4%는 상용직이다. 정규직의 감소가 많았음을 시사한다. 지난해 8월에 증가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계약기간을 보면 98%인 78만명이 2년 미만이다. 대부분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논문 작성 과정의 에피소드 한 토막. 유 교수의 논문 초고는 격정적이었다. “통계조사의 기본 상식을 벗어났다” “(정부 해명은) 출발 자체가 과장이다” “엉뚱한 답변으로 상황을 회피” “아예 근거가 없는 정부 주장”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통계 자체를 다시 보라”는 등의 문구가 담겼다. 최종 작성 과정에서 순화했다. 그래도 결론에선 “비정규직 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정부의 조급한 입장이 빚어낸 결과”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경제정책, 일자리 정책에 문제가 없는지 돌이켜보는 계기로 삼으라”고 정부에 조언했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15대 통계청장, 한국기술교육대 교수(현)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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