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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월 수상작

장원

외동덤
-권선애
 
등 뒤에 꼭 붙어 나란히 누워 있다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 잠들고 싶었는데
어미의 품속인 듯해 파도 없이 잠이 든다
 
보육원에서 태어난 내 이름과 생년월일
그곳에서 뛰쳐나와 풍파 속 유영할 때
기대고 싶어서일까 젖은 등을 내밀었다
 
피붙이 하나 없이 덤으로 끼워져
풀어 놓은 날들은 눈치만 싱싱했다
혼자서 등 떠밀려도 물결 따라 여기까지
 
◆권선애
권선애

권선애

1966년 충북 음성 출생. 시란 동인. 안산여성문학회 회원. 2018년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2019년 중앙시조백일장 차하

 
 
 
 
 
 

차상

어떤 유형 자산  
-김정애
 
기다린 듯 통장 속 잔고가 텅 비었다
실금 난 바닥으로 빠져나간 흔적들
선명한 잉크 자욱이 한숨으로 찍혔다
가진 건 몸뚱이 하나 하루를 팔고 산 품
닳고 단 손 끝으로 옷깃 꼭꼭 여며 주던
앙상한 감가연수에 옹이가 박혀 있다
어머니는 비워내도 당연한 줄 알았다
쉰 두 해 지나도록 몰랐던 괜찮단 말
옹이는 흔적을 품었다 피돌기가 뜨겁다 
 

차하

자목련
-이용호
 
남편과 사별하고 불면의 강을 건넜다
 
딸마저 가슴에 묻고 나목裸木의 산도 넘었다
 
처녀 땐 백목련이었던 어머니의 새 자태  
  

이달의 심사평

경자해, 다시 시작하는 1월. 응모자의 행운을 빌며 새해 첫 당선작을 올린다.
 
장원은 권선애씨의 ‘외동덤’이 차지했다. 외동덤이란 자반고등어 따위 속에 덤으로 끼워놓은 새끼 자반을 말하는 것. ‘보육원에서 태어’나 ‘피붙이 하나 없이’ 산 화자의 지난한 삶을 이에 비유했다. 무심하게 읊조리는 고백풍의 진술에 외로움은 더 절절하다. 도치법으로 짜놓은 ‘풀어 놓은 날들은 눈치만 싱싱했다’ 등의 표현이 잘 닦인 형식미에 얹혀 또렷하게 살아있어 더욱 그렇다.
 
차상은 김정애씨의 ‘어떤 유형 자산’이다. 경제 용어를 이용해 어머니의 거룩한 희생을 이야기했다. 다소 낡은 표현이 있어 고민했지만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조형식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차하는 이용호씨의 ‘자목련’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어머니의 한 생을 오롯이 담아 놓은 깔끔한 단수다. ‘남편과 사별하고’ ‘딸마저 가슴에 묻’은 어머니를 자목련에 겹쳐놓았다. 짧은 단수에 안정적인 서사구조가 눈에 띄게 했으나 상투적이고 직설적인 어휘 운용은 아쉬웠다.
 
함께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김현장, 문혜영, 황병숙씨에게는 아쉬움을 전한다. 이 달은 수준 높은 응모작들이 많아 더 아쉬웠다. 다음 달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최영효, 강현덕 (대표 집필: 강현덕)
 

초대시조

물새를 읽다
-박화남  
 
애당초 아버지는 물새가 분명하다
 
무논에 얼굴 담가 부리가 닳았는지
 
쓸쓸히  
날개가 젖었어도  
말수가 없으셨다
 
뼈마디 결린다고 개구리가 우는구나
 
혼잣말을 흘려놓고 새벽을 물리셨다
 
물 위에  
세운 그림자  
한평생 목이 길다
 
◆박화남
박화남

박화남

경북 김천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수상.

 
 
 
 
  
아마도 물새는 무논 위에 수 없이 많은 생의 글자를 쓰기도 하고 지우기도 했을 것이다. 부리가 다 닳을 정도로 어떤 글자는 깊이 새겨졌을 것이고 어떤 글자는 물 위를 떠돌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화자가 물새를 읽는 것은 한없이 가벼운 물새의 표지가 아니라 너무 깊이 새겨져 지울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글자들일 것이다. 시인은 이 작품 한 편에 아버지의 일생을 담았다. 물새의 몸에 깃든 아버지는 날개가 젖어도 말이 없고 뼈마디가 결려도 그저 혼잣말을 흘리며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세상의 아버지들은 물새의 서법처럼 대체로 말이 없다. 그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고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속으로 삼키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등에 지고 있는 짐의 무게는 왜 항상 그렇게 무겁기만 할까?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물체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늘 그렇게 말문이 막힐까? 어머니가 다정하고 섬세한 사랑이라면 아버지의 서체는 그저 굵고 애틋한 그리움이다. 물새의 다 닳은 부리와 젖은 날개는 아버지의 삶을 상징한다. 화자는 아버지의 목에서 머무는 말을 젖은 마음으로 듣고 있다. 말을 꾹꾹 눌러 삼키는 아버지의 목은 그래서 쓸쓸히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화자는 책으로 써도 한 권이 넘을 만한 분량의 아버지의 일생을 ‘물 위에/ 세운 그림자/ 한 평생 목이 길다’는 종장 한 대목에 다 쓸어 담았다.  
 
김삼환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또는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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