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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걸렸으니 설에 절대 오지마" 했더니 자식들 반응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25)

 
이곳에도 독감이 유행처럼 퍼졌다. 독감에 걸린 손주를 보고난 며칠 뒤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 손톱만 건드려도 아픈 것 같은 몸살이 왔다. [사진 Pixabay]

이곳에도 독감이 유행처럼 퍼졌다. 독감에 걸린 손주를 보고난 며칠 뒤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 손톱만 건드려도 아픈 것 같은 몸살이 왔다. [사진 Pixabay]

 
작년 12월 말쯤 이곳에도 독감이 유행처럼 펴졌다. 어느 날 가까운 곳에 사는 딸이 당분간 자기네 집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한다. 가족 모두가(5명) 독감 확진을 받았다며 킬킬거린다. 눈만 뜨면 망아지같이 밖으로 나가고 폴짝폴짝 뛰는 아이들이 오랜만에 모두 방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으니 또 다른 전쟁으로 아이들에 치여 제 아픈 몸은 건사나 할는지 걱정이었다. 오지 말라니 더 궁금하여 들리니 손주가 달려와 안기며 하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이~ 독감에 걸려서 너어~무 좋아요. 헤헤.”
 
에구머니. 그건 또 뭔 말이니? 병원에서 독감 확진을 받으면 학교에 못 간다. 겨울 방학 이틀 전 확진을 받았으니 그 이틀 더 노는 게 그리 신이 난 거다. 학교가 가장 가기 싫은 곳이 되어버리다니. 제 몸 아픈 건 잊고 호들갑 떨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 며칠 뒤 친구네 잔치에 참석해야 해서 서울 갈 채비를 하는데 낮부터 몸이 으스스하게 춥고 찌뿌둥했다. 밤이 되니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나며 머리카락, 손톱만 건드려도 아픈 것 같은 몸살이 왔다. 머리가 압력밥솥 터지듯 폭발할 것 같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두려움에 응급실에 가니 독감이란다. 그날 밤 나도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해열제를 맞는 호들갑을 떨었다. 하필 그날이란 말인가. 오랜만에 친구들 만날 생각에 설레던 나들이 길이 취소되었으니, 내겐 속상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기억되는 독감이다.
 
어제는 마을 회관에서 짜장면 파티를 했다. 그곳에도 마스크를 쓰고 나온 어르신들이 많이 있다. 자식들이 명절 때 몸살감기 걸리면 힘드니 사람 모인 곳은 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걸릴 때 걸리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나와 심심함을 푸신다.
 
명절이 코앞인데 모두 장 보랴, 청소하랴 바쁘지만 농한기 한 철 모여서 노는 것도 빠지면 안 될 만큼 바쁜 일과이다. 동네에 독거 어르신들이 많아도 날마다 한 끼 정도는 함께 먹는다. 오늘도 생일이신 분이 한턱내신다고 빨리 나오라 호출이 온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명절이 아니라도 늘 사람 구경하며 사는 동네다.
 
 
밥을 먹고 난 후 젊은 어른(70대) 한 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지난주 우리부부 독감이 걸렸잖아요. 그 와중에 안사람은 고열에 혈압까지 터져 병원 신세도 지고 참 힘든 시간이었지요. 우리부부 맨날 투덕거리며 서로 걱정거리다, 골칫거리라며 짐 취급했는데 아파보니 서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자식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으니 신경 안 쓰게 하려고 연락 안 해서 우리가 고생한 거 모르지요. 암만, 지들끼리 잘살아 주면 되는 거예요. 지금은 독감도 혈압도 정상을 찾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자식들에게 말했어요. 우리부부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격리하란다. 이번 명절엔 손주들 위험하니 집으로 오지 말고 모두 여행을 가든가 처가로 가든가 하라고. 명절 음식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으니 꼭 오려거든 귀갓길에 들러 차나 한잔하고 가라고요. 그랬더니 진짜 안 가도 되냐고 확인 전화가 날마다 옵니다. 허허, 다들 목소리가 좋아요. 그러면서 잘 안 하는 화상 전화까지 해가며 인사를 하는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요즘은 살기가 얼마나 좋은지, 용돈은 통장으로 보내오고 세배도 영상으로 다 받으니…. 혼쭐나게 아프고 나서 이름표 얻은 독감 핑계로 아이들에게 휴가를 준 것 같아 흐뭇하지만 허전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시원하기도 하네요. 정작 부인이 그리 좋아할 줄 몰랐어요. 아이들을 더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고 고마워하니 본인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명절 귀가전쟁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러면서 두 사람이 지낼 소박한 설 차례상은 이미 준비가 끝났단다. (사과 한 접시, 포 한 마리, 떡국, 딱 세 가지란다) 안동사람이 이런 변화를 꿈꾸면 이것은 혁명이다.
 
뒤바뀌어 자식이 독감 걸려 부모님 못 뵌 분들은 우리 손자 같은 기분이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설날 다음 절기 행사는 정월 대보름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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