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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지금이 경협을 시작할 때인가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우리 사회 일각에선 지금이라도 남북 경협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신년사에서 경협을 언급했고 정부도 개별 관광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배경엔 다음과 같은 상황 판단이 있는 듯하다. 첫째,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아직 확고하지만 기회를 놓치면 실패한다. 둘째, 비핵화 협상의 난관은 북한보다 미국이다. 미국은 아직 북한이 원하는 비핵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한국이 경협을 치고 나감으로써 미국이 협상에 전향적으로 움직이도록 자극해야 한다.
 

북한에 외화 유입시키는 관광은
제재와 비핵화에 악영향 미쳐
제재가 경협을 이끄는 역설 알고
비핵화와 경협 트랙 일치시켜야

첫째와 둘째는 지난 2년 동안 관찰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2019년 외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경제발전을 위해 핵을 포기할 의지를 피력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노이 회담과 여러 차례 실무 협상에서 드러났던 북한의 전략은,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란 말과 거리가 멀었던 김정은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협상 교착이 미국 탓이라는 주장도 실제와 다르다.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면 북·미 수교가 이루어질 수 있고 그 결과 경제 개발의 기회도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미국은 실제 비핵화도 단계적·동시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북한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보면 협상의 진전을 막고 있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다.
 
비핵화를 위해 제재와 경협 중 어느 방안이 효과적인지는 실증적으로 평가할 문제다. 제재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냈고 북한도 영변 핵시설 폐기는 가능하다고 제안할 만큼 그 효과가 이미 입증됐다. 북한 스스로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로 인한 고통을 인정하고 김정은 자신이 그 해제에 집요하게 매달릴 정도였다. 지난해 말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의 김정은 발언문도 “조·미 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며 제재의 치명적 효과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반면 경협이 비핵화에 미치는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 시점에서의 경협 추진은 제재를 허물고 북한의 자력갱생을 도와 비핵화가 실패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비핵화를 위해선 가능한 한 빨리 북한 외환보유고를 소진시켜야 하지만 경협은 반대로 북한에 외화를 유입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외화 문제다. 제재 효과는 산업, 시장, 그리고 외화 부문으로 파급된다. 이 중 산업에 미치는 충격은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시장 충격은 외국으로부터 충분한 식량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보이는 외화 충격은 김정은에겐 시한폭탄처럼 다가오는 공포다.
 
북한 관광 수입의 급증은 제재에 큰 구멍이 생김을 의미한다. 제재 이전 북한 정권의 주요 외화 수입원은 광물 수출과 해외 파견 근로자의 충성자금이었다. 순수입이 각각 연 8억 달러와 3~4억 달러였다고 추정된다. 지금은 밀수와 신분을 위장한 근로자 수입을 더해도 제재 이전 규모의 20%가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외환보유고는 급속히 고갈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핵심 대안으로 북한은 관광을 활용하고 있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2019년 북한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는 2010년의 13만 명에서 크게 증가한 35만 명으로서 북한은 이들로부터 1.7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만약 이 증가 속도에다 한국인 관광까지 더해진다면 제재 이전 해외 파견 근로자들이 김정은에 바쳤던 충성자금 액수에 버금가는 외화가 정권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는 제재가 외환보유고에 미치는 충격을 반감(半減)시켜 비핵화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우리 정부의 개별 관광 추진은 중국인 관광을 자극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경협이라 하더라도 한국의 정책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북핵 당사국인 한국마저 완화하고 싶어 하는 제재를 제 3국인 우리가 왜 계속해야 하는지 반문하며 중국은 제재 이행 강도를 낮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이 금전적으로 후원하는 관광은 개별 형태라 하더라도 유엔이나 미국 제재에 위반될 수 있다. 한국이 앞장서서 이런 형태의 관광을 장려한다면 그동안 미국 눈치를 보던 중국인의 북한 관광이 폭증할 수도 있다.
 
지금 경협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발상은 소득주도성장 추진보다 훨씬 더 무모하다.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는 얼마의 성장률 감소를 겪겠지만 잃어버린 비핵화 기회는 한반도 평화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개별 관광과 같이 제재의 목적과 정신을 이해하지 않고 그 자구(字句)의 빈틈만 찾으려는 시도는 한·미간 틈새만 벌릴 뿐이다. 지금은 한 푼의 돈이라도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할 제재의 때다. 그래야 오히려 경협의 시기가 더 빨리 열리는 역설의 기간이다. 정부는 독자적인 경협 추진보다 한·미가 함께 설계한 경협 안을 북한 비핵화 진전에 따라 진행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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