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박쥐와 원숭이, 그리고 마을봉쇄…영화 뺨치는 우한폐렴 공포

※ 어려운 국제정세를 영화를 통해 쉽게 풀어낸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가 2020년 시즌2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찾아갑니다.
 

“그 바이러스가 미국에 들어올 확률은 없다고 봐야지.”

 
상부의 느긋한 대응에 전염병 예방ㆍ통제 센터의 샘(더스틴 호프만)은 속이 타들어 갑니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치사율 100%의 치명적인 전염병을 목격하고 온 그는, “늑장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며 이를 비상사태로 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상부에선 쉬쉬할 뿐이죠.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한 장면. 육군 대령이자 전염병 예방통제센터에서 일하는 샘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한 장면. 육군 대령이자 전염병 예방통제센터에서 일하는 샘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 미국에 들어올 확률이 없기는커녕 한 마을이 초토화되기에 이릅니다.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원숭이 한 마리 때문이었죠.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전염병이 속수무책으로 퍼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마을을 봉쇄하기에 이르고, 급기야 이곳을 폭격하자는 무시무시한 방안까지 거론됩니다.  
 
무려 25년 전 영화인 ‘아웃브레이크’(1995, 볼프강 페터젠 감독)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소환’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때문입니다. 이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중국 정부는 뒤늦게 우한을 봉쇄했는데요.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근 국가는 물론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백신ㆍ치료제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죠.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의 공포,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요.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 시즌2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중국 우한 지역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우한 지역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신화통신=연합뉴스]

 
인간의 역사는 전염병과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죠.  
 
역사가들 사이에선 고대 로마의 멸망에 말라리아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부터,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군이 러시아 침략에 실패한 주요 이유가 전염병이었단 해석도 나옵니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 봉건 제도를 붕괴시키는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에게 무자비하게 당한 데는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에 면역력이 없던 탓도 컸습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데도 전염병 극복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가들은 미국이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파나마 운하'를 꼽는데요. 원래 이 운하를 건설하려 했던 프랑스는 황열병과 같은 열대 질병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했지만, 미국은 모기 서식지에 석유를 뿌려가며 이를 극복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이 운하를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과 동아시아 지역을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통합된 세계 규모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의 해군력을 하나로 통합해 막강한 힘을 발휘”(『물의 세계사』에서)할 수 있었죠.  
 
중국 우한에 투입된 군 의료진 450여명이 지정된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우한에 투입된 군 의료진 450여명이 지정된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전염병 극복의 문을 열어젖힌 건, 18세기 영국 의사 제너가 널리 알린 종두법이었습니다. 천연두를 퇴치한 종두법 이후 ‘백신’이란 획기적인 예방법은 점점 발전했죠. 그러나 오랜 전염병들을 극복한 듯했던 것도 잠시, 신종 전염병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전염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동물이 매개체인 ‘인수공통감염병’이 늘고 있단 사실입니다. 
 
사스(박쥐)와 메르스(박쥐ㆍ낙타)가 그랬고,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역시 박쥐에서 발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이 늘고 있는 이유로는 교통 발달,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가축 사육의 공장화 등이 꼽히는데요. 양극화가 심해지며 저소득 국가(지역)의 보건의료 체계가 무너진 것도 중요한 이유로 꼽힙니다.    
 

“교통의 발전이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동물의 접촉 기회를 증가시켰고, 지구상의 생활환경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병원체들이 쉽게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또 개발 때문에 자연환경이 파괴되면서 살 곳을 잃은 동물이 사람과 접촉할 기회는 점점 늘어나게 됐다” (『세상을 바꾼 전염병』에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최초 발생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화난 수산물도매시장의 모습. 현재 폐쇄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최초 발생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화난 수산물도매시장의 모습. 현재 폐쇄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이런 신종 전염병이 세계를 휩쓰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게 됐습니다.  
‘아웃브레이크’와 함께 최근 다시 화제가 되는 영화 ‘컨테이젼’(2011,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을 참고할 만한데요. 현대 전염병의 확산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우한 폐렴을 예언한 것 같다’는 평이 나올 정도죠.

 
영화 속에서, 글로벌기업 중역 베스(기네스 펠트로)는 홍콩 출장을 다녀온 후 끙끙 앓다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합니다. 순식간에 아내와 아들을 잃은 토마스(맷 데이먼)가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이 전염병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죠.  
 
환자들이 늘어나자 미국 정부 내에선 “신종플루 때는 과잉대응으로 원성을 사지 않았느냐”는 우려와 “늑장 대응보다는 과잉 대응이 낫다”는 질타가 오갑니다. 결국 “역학 조사를 통해 감염경로를 밝히는 게 우선”이라는 전문가의 말에 부랴부랴 대응에 나서게 됩니다.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컨테이젼’이 주목하는 것은 그 이후의 상황입니다.

 
예방책도 치료책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온갖 말이 퍼지는데요. “이 병은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화학 무기와 관련 있다” “질병관리센터와 세계보건기구가 친정부 성향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려고 치료약을 숨기고 있다”는 등의 음모론으로 세계 곳곳이 아수라장이 되죠. 
 
그리고 이런 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짜 뉴스(치료약 홍보)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돈을 긁어모읍니다. 백신이 개발된 이후에는 이를 확보하려는 싸움으로 도시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고요.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영화 '컨테이젼'의 한 장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런 상황이 닥치는 걸 막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전 세계적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앞서 다룬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는 말이 거듭 강조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죠. 
 
중국 정부의 초기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이 때문인데요. 중국 정부는 2003년 사스 대유행 당시 정보를 은폐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 아시아 지역 대변인이었던 피터 코딩리는 “중국 정부는 감염증 확산에 대해 초기부터 거짓말을 했다”고 우려를 표했죠.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서 위생소독용역 직원들이 '우한 폐렴'에 대비한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서 위생소독용역 직원들이 '우한 폐렴'에 대비한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참, ‘컨테이젼’에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선동하는 블로거 앨런(주드 로)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개나리액으로 병을 치료했다고 주장하지만, 감염되지도 않았으면서 개나리액 치료 사기극으로 돈을 벌었단 사실이 드러나죠. 보건 당국이 '과잉 대응'이라도 해서 전염병을 막아야 한다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런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퍼뜨리는 헛소문이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는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포를 조장하는 이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관련기사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