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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잘 안 보이는 김상조의 ‘가운데 길’

서경호 경제에디터

서경호 경제에디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김상조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시절엔 경제민주화 열풍이 거셌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센 공약을 쏟아내고 있었다. 인터뷰 때 귀에 꽂히듯 다가왔던 그의 말이 몇 대목 있었다. 방법론적 최소원칙,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 법치주의 같은 거였다.
 

방법론적 최소원칙, 거대담론 비판
학자 시절에 했던 아름다운 말들
지금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

방법론적 최소원칙이란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부분부터 천천히 개혁하자는 의미였다. 경제민주화한다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다 보니 “가장 과격한 재벌 개혁론자였단 내가 이젠 중간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고, 그게 신문에 제목으로 뽑혔다.
 
거대담론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능력이 한국 사회에 부족하다는 지적은 예나 지금이나 ‘뼈를 때리는’ 지적이다. 법치주의는 흔히 보수의 슬로건인데, 왜 진보의 아이콘인 그가 거론했을까. “사회가 정한 게임의 법칙을 지키는 자에게는 보상을 주고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는 자에게는 제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이런 원칙 없이는 어떠한 개혁·진보도 실패할 것이다.”
 
지난 16일, 청와대 정책실장에 취임한 지 7개월 다 돼가는 그를 다시 인터뷰했다. 특유의 달변은 여전했지만 과거 인터뷰처럼 ‘꽂히는’ 표현은 없었다. 아무래도 시민단체 대표 시절처럼 자유롭게 개인 생각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배경을 설명하는 가지런하고 정선된 말들이 이어졌다.
 
서소문포럼 1/28

서소문포럼 1/28

어지간히 대화가 오간 뒤에 물었다. 그가 강조했던 방법론적 최소원칙이 과연 문 정부에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지 궁금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비정규직 제로 정책, 근로시간 단축 등은 경제정책이 지켜야 할 합리적인 선을 넘어섰다고 평소 생각했다.
 
김 실장은 경제는 정치와 다르다고 했다. 정치는 표를 좇더라도 경제는 국민의 다수가 공감하는 ‘가운데 길’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지면에선 빠졌지만 이런 말도 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긴다. “어느 한 쪽만의 강한 지지와 다른 쪽의 강한 비난을 받는 정책보다는 차라리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가운데 길’로 가는 게 성공적인 경제정책의 길이라고 그때도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운데 길’로 간다는 데 왜 노조 편향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묻자 “문재인 정부는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 정부”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친노동 정부지만 친노조는 아니다. 친기업 정부지만 친대기업은 아니다.”
 
멋진 말이지만 현 정부의 민주노총 편향 이미지는 왜 생겨났을까. 지난 연말 인터뷰한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의 쓴소리를 인용한다. “정부는 노조 간부 중심의 ‘노동 존중’이 아니라 근로자 일반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야 한다.”
 
지면에 미처 소개되지 않은 그의 말은 더 있다. “정책실장의 업무 범위는 넓지만 모든 분야를 다 책임지고 있다고는 말씀드릴 수가 없다. 공정위에 있을 때는 공정위의 업무에 관해, 지금은 정책실장의 소관 업무에 대해 방법론적 최소원칙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데,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총괄한다고 하지만 그런 막강한 정책실장의 ‘한계(?)’를 토로한 말로 이해했다. 과거 정권에서도 청와대 경제라인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들이 비슷한 언급을 하곤 했다. 아무래도 경제라인은 정권을 ‘보위’하는 정치나 민정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거다. 시쳇말로 끗발에서 밀린다. 부처에서 잘나가던 경제관료들도 청와대에 가면 정책 결정과정에서 최대한 합리성을 높여 보완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다. 지금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경제학자 출신의 김 실장이 인터뷰에서 자주 거론했던 ‘경제학자의 합리성’도 제한된 합리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 성장을 포용으로 바꿔 표현할 뿐, 기조가 달라진 건 아니라는 설명도 듣기에 답답했다. 정부가 이미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보완한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생활비용을 낮추고 사회안전망을 넓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소주성이 비판받는 건 정부가 시장을 좀 존중해달라는 뜻이 아니겠나. 경제학자라면 이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서경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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