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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한심···케빈이 연준 의장 됐어야" 트럼프 생뚱맞은 타령

지난해 10월 연준의 마지막 금리 인하 발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연준의 마지막 금리 인하 발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는 또 한 번의 ‘트럼프 쇼’가 진행됐다. 2년 가까이 끌어온 미·중 무역전쟁이 1단계 합의 서명을 통해 ‘화해 모드’에 들어선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의문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난 1년간 트럼프와 날을 세워온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다. 트럼프는 백악관 이스트룸에 무역협상팀·공화당·재계 측근을 한 데 불러모은 자리에서 케빈 와시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방문연구위원(2017년 당시 연준 의장 후보·전 연준 위원)이 연준 의장이 됐었어야 했다며 한참을 타령했다.  
 

연준 작년 0.75%P 금리 인하…선제적 대응 마무리
트럼프 "파월 한심하다"…일본보다 낮은 금리 요구
닉슨 재선 앞두고 금리 인하…10년간 인플레 시달려
클린턴부터 연준 독립성 존중…그린스펀 시대 열어
FT "미 경기 둔화 조짐에 백악관·연준 한판대결 예상"

그는 “케빈, 왜 그때 좀더 그 일(의장직)을 강력히 희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후 “케빈, 당신은 강력한 인물이다. 사실 나는 당신이 그 자리(연준의장)에 딱이라고 여겼고 당신이 의장이 됐더라면 내가 정말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무역합의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무역합의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발언에 경제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와시 위원은 파월 의장과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매파이기 때문이다. 와시 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기조를 앞장서서 비판한 인물이다. 로이터는 “아마도 트럼프는 와시를 ‘저금리맨(low rates guy)’으로 착각한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연준은 지난해 세 번의 기준금리 인하로, 총 0.75%포인트 조정으로 경기 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보험성 인하’를 마무리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1.5~1.75%이다.  
 
금리를 적극적으로 내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월은 트럼프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동안 트럼프는 파월을 향해  “중국보다 연준이 더 큰 문제” “미쳤다” “한심하다” “멍청하다”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에 집착하는 이유는 마땅한 재정 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꺼내 들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는 통화정책을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지렛대가 아니라 무역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일본(-0.1%)과 유로존(0%)보다 높다는 사실에 불만이다.  

 
탄핵 공세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연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 2020년 대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 지표라도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임기 내내 반세기래 최저 실업률, 다우·S&P500·나스닥지수 역대 최고치 등을 모두 자신의 치적으로 과시해왔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파월 의장과 ‘스트롱맨’ 트럼프 대통령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가 될까.  
 

닉슨·레이건도 재임 앞두고 연준 의장과 날 세워

로널드 레이건(왼쪽) 대통령은 비협조적인 폴 볼커 의장을 버릴 것인가에 대해 여러 번 토론했다. [블룸버그=연합뉴스]

로널드 레이건(왼쪽) 대통령은 비협조적인 폴 볼커 의장을 버릴 것인가에 대해 여러 번 토론했다. [블룸버그=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이 연준을 손바닥에 올리고 쥐락펴락하려고 했던 건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임기 1969~1974년) 전 대통령은 1971년 10월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재선을 1년 앞두고 아서 번스 전 의장에서 “나는 워싱턴을 떠나고 싶지 않다. 유동성 문제는 그저 헛소리(bullshit)”라며 대놓고 기준금리 인하를 종용했다. 고분고분한 번스 의장 덕분에 닉슨은 이듬해 연임에 성공했지만, 미국 경제는 10년간 연간 10%가 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시달렸다.  

 
로널드 레이건(1981~1989년) 대통령은 연준이 ‘변덕스럽다(erratic)’며 불만을 드러내긴 했지만, 폴 볼커 의장의 고집을 꺽진 못했다. 당시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볼커는 기준 금리를 20%까지 올리는 등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최악의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정치권은 그를 ‘학살자’라고 비난했지만, 볼커는 흔들리지 않고 당시 두 자릿수에 달하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3%대로 끌어내렸다. 아울러, 저금리에 연명하던 좀비기업까지 정리되면서, 1980년대 중반 미국 경제는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에 들어섰다.  
 

연준 독립성 확보…그린스펀·버냉키·옐런 시대 열어  

빌 클린턴(오른쪽)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을 꼽았다. [블룸버그=연합뉴스]

빌 클린턴(오른쪽)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을 꼽았다. [블룸버그=연합뉴스]

연준과 얼굴을 찌푸려서 좋을게 없다고 느낀 건 빌 클린턴(1993~2001년) 대통령이 처음이다. 바로 이때가 18년간 ‘금리 마에스트로’로 장기 집권한 앨런 그린스펀의 시대다. 그린스펀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물가상승률로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맞은 상태) 경제’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87년 세계 증시 대폭락, 1990년 걸프전,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등 다수의 경제 위기 때마다 신속한 금리 인하를 단행해 경제를 회복시켰고, 덕분에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클린턴 대통령은 그린스펀을 꼽을 정도였다.  
 
파월 의장의 정책 방향도 그린스펀을 닮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발표를 보도하며 “그린스펀 의장 시절인 1995년과 1998년에도 세 차례에 걸쳐 총 0.75%포인트의 보험성 인하를 단행, 경기하강에 대응했다”며 올해 연준 행보와 비교했다.  
 
클린턴 이후로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은 연준의 독립성을 중요시했다. 이들은 공개 석상에서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의장 등과 절대로 날을 세우지 않았다. 덕분에 버냉키는 양적 완화라는 과감한 정책 실험으로 2008년 금융위기의 ‘구원투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옐런은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기준금리를 네 차례 올리며 버냉키가 시행한 통화완화 정책을 거둬들였다.  
 

트럼프 “경제 좋으면 내 덕분…나쁘면 연준 때문”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연준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의 강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세다. 트럼프가 정권은 바뀌더라도 관행적으로 연준 의장을 연임시키는 전통을 깨고 변호사 출신 파월을 의장직에 앉힌 이유도 그가 자기편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월은 공화당원으로, 조지 W.H.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을 지낸 경험이 있다.  
 
지난해 무역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트럼프는 파월 의장이 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려 지원사격 해줄 것으로 믿었다. 연준이 낮은 금리를 유지해줘야 주식시장이 부양되고 달러 가치 하락으로 미국의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연준은 2018년 3월, 6월, 9월, 12월 0.25%포인트씩 총 네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흥분하며 “연준이 너무 빠르게 금리를 올려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의 제조업 지표가 악화하며,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된 건 결국 파월 의장 탓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장한다.  
 
파월도 반격에 나섰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 경제는 연준 덕분에 버티는 중”이라며 “지금도 무역을 둘러싼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트럼프가 촉발한 미·중 무역 전쟁을 겨냥했다. 연준은 할 만큼 했으니 경기 침체 우려는 이제 트럼프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미 로이터는 해석했다.  
 
백악관과 연준의 싸움에서 파월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고 외신은 평가했다. FT는 “일각에서는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고, 친절한 태도를 지닌 파월이 트럼프 상대가 안 된다고 보는데, 이는 섣부른 판단”이라며 “미국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서 8년간 파트너로 일한 파월은 역대 연준 의장 누구보다도 (트럼프 같은) 불량배(bully)에 익숙하다”고 전했다.  
 
경제 분석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의 한판 대결이 예상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1.9%로, 트럼프가 목표로 하는 연간 3% 성장률에는 한참 못 미치는 등 경기 둔화의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트럼프는 유일한 무기인 경제 실적으로 재선의 칼을 단단히 갈 태세이기 때문에 연준의 기준 금리 인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거나, 경기 불황의 책임을 연준에 돌리며 파월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라고 전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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