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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며 '화장실 혼밥' 끝났다···집단주의 日 뒤집는 '솔로충'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서울 신촌의 한 라면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이른바 '혼밥'도 일반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뉴스1]

서울 신촌의 한 라면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이른바 '혼밥'도 일반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뉴스1]

화장실에서 밥 먹기, 일본어로 '벤조메시(便所飯)'란 말, 들어보셨나요? 10년 전쯤 일본 언론들이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앞다퉈 보도하며 주목 받았었죠.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일본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겁니다. 무리의 질서에 따르길 강요하고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을 금기시하는 일본의 ‘집단 우선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슬픈 현상이란 지적이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변하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 아주 흔합니다. 가라오케(노래방)도 술집도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1인용'으로 변신 중이고요, 혼자인 인생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영국 BBC 방송이 최근 일본의 이런 변화를 소개하면서 "전통 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로 혼자 노는 문화가 확산되는 건 전세계적 추세지만, 그 중에도 일본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라고 평했습니다. '집단'에 일체화하기를 강요하는 답답한 일본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젊은층들의 반감이 '솔로 문화'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솔로충'의 시대가 온다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 1인 가구를 '오히토리사마(お一人様)'라고 부릅니다. 원래 음식점 등에서 혼자 온 손님을 지칭하던 말인데, 아예 싱글(특히 싱글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게 된 거죠. '솔로충(일본어 발음은 솔로쥬)'이란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오해 금지. 벌레 '충(蟲)'에 비유하는 부정적 의미가 아닙니다. 충실하다의 '충(充)'을 혼자라는 '솔로'와 합쳐, '혼자 있는 시간을 충실하게 즐기며 보내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죠.   
일본 생애 미혼율(50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본 생애 미혼율(50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수년 전부터 일본에선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의 하나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50세까지 결혼하지 않는 비율인 '생애 미혼율'이 높아지고, 출산율은 당연히 하락세를 걸었죠(2017년 기준 1.44명). 1인 가구 비율은 1995년 25%에서 2017년에는 35%로 급증합니다. 아시아에선 가장 높은 수준이죠. 
 
일본 광고회사 하쿠호도의 트렌드 분석가 아라카와 카즈히사(荒川和久)는 2017년 펴낸 책 『초(超)솔로사회-'독신대국' 일본의 충격』이란 책에서 2040년이 되면 일본 15세 이상 인구의 절반이 혼자 살아가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합니다. '초고령사회'에 이어 '초솔로사회'가 도래한다는 건데요. 혼자 사는 것이 표준이 되는 이 시대엔 사회 제도, 경제 활동의 근간이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혼자를 즐기다, '오히토리사마 무브먼트' 

 
BBC가 '오히토리사마 무브먼트'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신기한 듯) 소개한 일본의 '솔로 문화'는 이미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합니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 자부하는 당신, 자 어디까지 해보셨나요?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씨. '혼밥'의 달인이십니다. [사진 TV도쿄]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씨. '혼밥'의 달인이십니다. [사진 TV도쿄]

 
1단계 '혼밥' :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보셨나요. 
 
2단계 '혼술' : 요즘 일본에선 혼자 오는 손님들만 받는 술집이 속속 생겨나고 있답니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바 히토리'가 대표적인데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들이 호젓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답니다.     
 
3단계 '혼야키니쿠(혼고기) : 석쇠에 고기를 올려 구워 먹는 음식을 일본에선 '야키니쿠'라고 하죠. 야키니쿠는 보통 회식 메뉴지만 요즘은 혼자 고깃집을 찾아 당당히 고기를 굽는 '히토리 야키니쿠'족이 늘고 있다죠.    
 
4단계 '혼가라오케(혼노래방)' : 일본에는 아예 혼자 오는 손님들만을 받는 '히토카라(1인 가라오케)'가 이미 전국 노래방의 2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히토카라를 즐겨 찾는다는 한 대학생은 BBC에 이렇게 말했네요. "친구들과 같이 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잘 못 부르면 어쩌지 걱정도 되는데 혼자 오면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 마음, 알지RG?
홍대 수 노래방 1인실을 찾은 한 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혼노래방'은 이제 낯설지 않죠. [중앙포토]

홍대 수 노래방 1인실을 찾은 한 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혼노래방'은 이제 낯설지 않죠. [중앙포토]

 
5단계 '혼여행(혼캠핑, 혼온천)' : 혼자 가는 여행이야 흔하지만, 캠핑이나 고급 온천까지 혼자 갈 수 있다면 상당히 높은 레벨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여행업계는 요즘 혼자 참가하는 여행자들로만 팀을 꾸리는 '오히토리사마 한정 투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네요. 아예 11월 11일(빼빼로데이?)을 '혼자 여행하는 날'로 정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답니다. 
 

늘어나는 노년 히토리사마  

 
그렇다고 '초솔로사회'를 혼자 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사회로 상상하는 건 실수입니다. '초솔로사회'는 '초고령사회'의 결과물이기도 하니까요. 일본은 2018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27.7%에 이르는 초고령사회입니다. 이들 중 배우자와 이혼했거나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 '1인 가구'가 된 사람들도 많죠. 특히 배우자와 사별한 고령 여성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데요.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 1인 가구는 2000년 303만 가구였는데, 2015년에는 563만 가구로 1.9배 증가했습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혼행족'이란 말도 생겨났습니다. [중앙포토]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혼행족'이란 말도 생겨났습니다. [중앙포토]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남편 65세, 아내 60세인 퇴직 부부의 경우 기초 연금과 후생 연금을 포함해 매달 나라에서 평균 19만 1880엔(약 205만원)의 연금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노후를 보내는 데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개인 자산을 합치면 일정 정도의 소비 능력을 갖춘 노인들도 많습니다. 
 
이런 '고령 싱글족'을 대상으로 한 산업 역시 점점 다양하하고 있죠. 노무라 경제연구소의 수석 컨설턴트 마츠시타 모토코는 BBC에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의 노인들은 아직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 저항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솔로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 놓으면 고령자들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들이 '시간과 돈'을 모두 가진 세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구요."  
 

유럽은 이미 '초솔로사회'

 
일본의 경우를 주로 이야기했지만, '초솔로사회'는 결국 전세계에 닥쳐올 미래입니다. 아니, 유럽은 앞서 '초솔로사회'에 도달했죠. 지난 해 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국제사회보장리뷰'에 실린 '1인 가구 증가에 대한 세계의 대응'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은 1인 가구 비율이 56.5%였고 노르웨이ㆍ덴마크ㆍ핀란드ㆍ독일 등은 이미 40%를 넘어섰습니다. 
 
국가별 1인 가구 구성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가별 1인 가구 구성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인구 구성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특히 1인 가구들의 '주거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솔로족들의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보장하는 동시에 파편화된 개인 간의 접촉을 통한 '공동체 유지'가 목표입니다. 스웨덴과 프랑스 등은 1인 가구에 일정 주거 비용을 지원하고 있고, '따로 그리고 함께' 사는 공동주택을 앞다퉈 건설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시는 이미 1989년 40대 이상의 1인 가구들을 위한 주택단지 '페르드크네펜'을 지었는데요. 이 곳은 각자 개인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주방이나 운동실, 휴식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셰어하우스'입니다. 
 
이미 탄탄한 사회보장 정책을 갖고 있는 나라들인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보다 '정서적 돌봄'에 치중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간병이나 가사도우미 지원은 물리적 도움의 의미도 있지만,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한 감정 돌봄 서비스의 하나로 여겨지죠. 일본 역시 지방을 중심으로 고령 1인 가구의 육체적, 심리적 건강을 관리하는 통합지원센터가 활발하게 운영 중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2019년 기준,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29.8%입니다. 20년 후엔 3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죠. 정부가 올해 초 관계 부처, 기관이 함께 '1인 가구 정책 TF팀'을 꾸려 종합적인 1인 가구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건 조금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입니다. 곧 들이닥칠 '초솔로사회 한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다가왔으니까요.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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