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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깍지·걸음걸이도 '박통' 복사기…이성민 “아직 난 호기심 많다”

설 연휴를 맞아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와 정치스릴러 '남산의 부장들'로 동시에 찾아온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설 연휴를 맞아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와 정치스릴러 '남산의 부장들'로 동시에 찾아온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설 연휴 동안 극장 나들이 하면 웬만하면 이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지난 22일 개봉해 사흘 동안 112만 관객을 끌어들인 ‘남산의 부장들’과 색다른 가족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의 이성민 말이다. 게다가 5년 만에 복귀한 안방에서도 tvN 수목극 ‘머니게임’으로 질주하고 있다. 각각 ‘박통’(이라 하지만 사실상 박정희),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모피아 의혹을 풍기는 금융위원장 등 종횡무진 변신이다.

'남산의 부장들' 사흘 만에 112만 돌파
박정희 대통령 뒷짐 손깍지까지 연구
'미스터 주'에선 동물·CG 상대로 연기
"멋진 캐릭터는 배우로서 감사한 선물"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은 “여러 번 맞을 매를 한 번에 맞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최소 1년 전에 찍어둔 영화들이 같은 날 개봉한 건 배우로서 이례적이긴 하다. 캐릭터는 180도 딴판이다. 1979년 10‧26 사태가 있기까지 40일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에선 18년 권력자의 피로감과 불안을 내밀하게 그려 또 하나의 인생 연기를 추가했다. 사실상 원톱으로 끌고가는 ‘미스터 주’에선 갑자기 각종 동물들과 말이 통하는 초능력을 갖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을 연기했다.
 
“촬영하면서는 어느 걸 꼽을 수 없게 둘 다 어려웠어요. ‘남산’은 제가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처음인데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분이니까. 버릇‧제스처‧걸음걸이를 ‘대한뉴스’ 등을 보면서 수없이 연구했죠. 헬기 신에선 차에서 내려 주머니에 손 넣고 걸어가는 모습이 제가 봐도 비슷하더라고요.(웃음)”
 

“손 넣고 걷는 모습, 내가 봐도 비슷”

설 연휴를 맞아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와 정치스릴러 '남산의 부장들'로 동시에 찾아온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설 연휴를 맞아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와 정치스릴러 '남산의 부장들'로 동시에 찾아온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담배를 든 모양, 뒷짐질 때 손깍지 끼는 방식, 악수할 때 팔을 낮게 두는 것 등 꼼꼼한 관찰이 ‘이성민표 박정희’를 빚어냈다. 우민호 감독은 “캐스팅 때 ‘외모 싱크로율’은 신경 안썼다”고 했지만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해 귀를 만들어 붙였다. 분장 때마다 두시간씩 걸린 작업이라 제일 먼저 시작하고 맨 마지막에 마치는 식이었다고 한다. 다소 돌출형인 구강 구조를 위해 잇몸에도 보형물을 끼웠다. 의상은 당시 박 대통령의 옷을 제작했던 재단사가 생존해 있어 거기서 맞췄다.  
 
“자료가 많이 남았으니 다른 배우들보다 유리했을 수도 있죠. 다만 연설하는 건 많은데 일반적으로 대화하는 자료가 없더군요. 찾다보니 그분 모친의 칠순인지 팔순인지 잔치 때 육성이 있어 많이 참고했습니다. 거기서 노래도 하는데 영화에 나온 ‘황성옛터’는 아닙니다.”
 
1979년 10?26 사태가 있기까지 40일을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에서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쇼박스]

1979년 10?26 사태가 있기까지 40일을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에서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쇼박스]

‘황성옛터’ 장면은 113분짜리 영화에서 박통의 고독과 김규평(이병헌)과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백미로 꼽힌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은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로 이어지는 가사 자체가 왕국의 흥망성쇠를 읊는 비애가 있는데다 홀로 술상을 앞에 둔 박통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허망함을 되씹는 대목이다. 옆방 벽장에선 김 부장이 숨죽인 채 그를 도청하고 있다.  
 
“사실 제가 노래를 잘 못해요. 사진 찍는 것만큼이나 노래하는 걸 싫어해서 지금도 노래방 마이크 잡으면 덜덜 떨어요. 이 장면에선 노래라기보다 그 인물이 처한 쓸쓸함, 피로함을 보여주는 독백의 느낌으로 읊었지요. 역할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빠져드는 지점이 있는데, 마지막에 술 마시다 총 맞을 때 규평을 바라볼 때 심정이 ‘날 쏴줄래?’였어요. 그렇게 피로함을 끝내고 싶지 않았을까….”
 

정치 부담 안 느껴…추억 되새길 영화

18년 집권에 따른 불안감, 외로움. 인간 박정희의 이런 면모를 보여주려 했기에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치색 논란’에 “전혀 부담 갖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추억 삼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캐스팅 제안 받았을 때 ‘아, 어쩌지’ 싶으면서도 동시에 ‘내게 이런 기회가 왔구나’ 했어요. 많은 배우들이 그분 역할을 했는데 그들을 과연 뛰어넘을 수 없을까 고민 많이 했고요. 그 결과로 지금의 제가 연기한 박통이 있는데, 짜릿한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한 배우들에 대해선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병헌씨와 케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규평이랑은 대화가 잠시 끊어지면서 말과 말 사이 빈 부분이 인상적인데 그 침묵이 잘 설득됐어요. (곽상천 역의) 희준이는 극단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워낙 준비를 많이 하고 이번에도 살 찌워온 걸 보니 역시구나 싶었어요. (박용각 역의) 곽도원과는 ‘변호인’ 때 함께 하긴 했지만 연기를 맞춰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워낙 뜨거운 배우이고 머리를 막 조아릴 땐 ‘미쳤구나’ 싶기까지 했어요.(웃음)”
1979년 10?26 사태가 있기까지 40일을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에서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쇼박스]

1979년 10?26 사태가 있기까지 40일을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에서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쇼박스]

진중하고 정밀하게 진행된 ‘남산의 부장들’과 달리 ‘미스터 주’는 현장이 예측불허였다고 한다. 주인공 주태주는 승진 경쟁에서 밀린 상황에서 중국이 보낸 특사 판다를 경호해야 할 임무를 맡게 된 국가정보국 요원. 사고로 판다가 사라진 상황에서 동물들과 언어가 통하게 된 그는 군견 알리(목소리 신하균)와 함께 합동수사에 나선다. 등장 동물들 중에 개(알리)만 실제 호흡을 맞춘 상대란다. 판다는 사람이 탈을 쓴 상태에서 모션 캡처한 거고 나머지 뱀‧앵무새‧멧돼지 등은 후반 작업에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넣었다.
 

코미디 연기 즐겨…보면서 행복한 영화

“CG 경우엔 상대가 없는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하니 처음엔 너무 어려웠어요. 반면 개와 연기할 땐 상황 따라 맞추는 게 또 힘들었죠. 한번은 개가 맞고 쓰러진 장면인데, 얘가 자꾸 일어나는 게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어요. 그런데 그게 오케이가 나서 영화에 실리는 등 현장의 변화가 많이 작용했어요.”
 
국가정보국 서열 1위 민국장을 연기한 김서형에 대해선 “굉장히 독특하게 해석해 와서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역할을 살렸다”고 했다. 어리버리 요원 만식 역할의 배정남에 대해선 “연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현장에서 약간의 스릴도 있었다”면서 웃었다. 전체적으로 이성민의 안정된 연기가 다소 오버톤의 동료 배우들을 다잡는 역할을 한다. 딸 역할의 갈소원 눈높이에서 즐겁게 볼 수 있는 “유쾌한 가족 영화”라고 소개했다.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에서 갑자기 동물과 언어를 소통하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를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에서 갑자기 동물과 언어를 소통하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를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사실 액션이나 느와르는 힘겹게 만들어가는 편이고요, 휴먼 코미디 쪽이 연기하기 편하고 즐거워요. 시사 때 보면서 미소가 떠나지 않고 너무 행복했어요, 이런 영화를 할 수 있어서. 욕심이 있다면 관객분들이 ‘남산의 부장들’ 보고 이성민 변신이 궁금하다며 ‘미스터 주’까지 보러와 주시는 거죠.”
 
스무살에 연극배우로 시작해 대중에게 ‘미친 존재감’을 각인시킨 건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2012년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를 모델로 한 의사 최인혁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2014년 웹툰 원작 드라마 ‘미생’의 중간관리자 오상식 역은 이 시대 직장인‧아버지의 고뇌와 인간미를 대표한 인생 캐릭터로 꼽힌다. 2018년 영화 ‘공작’에선 중국에서 북한의 외화벌이를 담당하는 리명운 역을 한치 오차 없는 무게 중심으로 연기했다. 정작 그는 이 모든 게 “감독의 힘”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딱히 개성이 없는 얼굴이라서 그런 역할을 맡는 건 제 영역이 아니라 작품과 연출의 영역 같아요. 배우로선 그런 캐릭터를 맡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잘 만들어지는 게 보람이지만, 누가 해도 멋있는 건데 선물 받은 내가 행복한 거구나 생각합니다.”
 

이병헌과 멜로 라이벌, 호기심 난다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에서 갑자기 동물과 언어를 소통하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를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휴먼 가족영화 '미스터 주:사라진 VIP'에서 갑자기 동물과 언어를 소통하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를 연기한 배우 이성민.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리틀빅픽처스]

그는 이날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자주 얘기했다. CG나 동물과의 연기라든가 실존인물 재해석 등이 모두 배우로서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는 갈망에서 비롯됐다는 것. 다음에 촬영 들어갈 영화인 ‘리멤버’도 “배우로서 특이할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찍어두고 후반 작업 중인 김태형 감독의 ‘8일의 밤’도 연내 개봉한다.  
 
인터뷰 도중 ‘남산의 부장들’을 함께 한 이병헌에 대해 그가 “어쩌면 그렇게 섬세하게 하는지, 장르가 규정되지 않는 매력적인 배우”라고 한 뒤 혼잣말처럼 “다음엔 멜로의 라이벌로 한번…”이라고 중얼거렸다.
 
그간 멜로 영화를 해본 적 없다기에 끝날 즈음 다시 물었다. 
“그럼 다음에 도전할 장르는 멜로인가요? 이병헌씨와?”
“아니, 그렇게 써버리면…. 근데 그 조합이 참 재밌을 것 같긴 해요. 한 여인을 두고 병헌씨와 내가, 으하하하.”  
소 같은 눈망울의 그가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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