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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 저작권 인정 못한다"

바둑과 궁합이 잘 맞는 인터넷은 이제 안방의 기원이자 프로바둑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창구가 됐다. 그러나 인터넷 회사들이 프로의 기보를 지적 재산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나오면서 양 측에 찬바람이 불고있다. 정지영 인턴기자
"기보엔 저작권이 있다."

"아니다. 기보는 저작권 대상이 아니다."

한국기원과 인터넷 바둑사이트들이 기보의 저작권을 놓고 정면으로 맞붙었다. 한게임.넷마블.타이젬 등이 그간 내던 '정보사용료'(기보사용료)를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용료는 회사당 연간 3000만~6000만원 선. 지금이야 별게 아닌 액수지만 계속 오르는 추세였다. 돈 문제보다도 한국기원을 크게 당황케 한 문제는 따로 있다.

기보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국기원의 존재 이유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중대 사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축구에 관한 중계권 등 모든 권리를 행사하듯 국내 바둑에 관해서는 모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어온 한국기원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인터넷 사이트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한국기원은 몇 달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있다.

◆ 기보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나= 오랜 세월 프로기사들은 '기보(棋譜)'를 신성시해 왔다. 기보는 그들의 창작품이고 역사의 기록물이기에 자신들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왔다.

바둑계에서도 마치 음악의 악보처럼 기보에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그 권리가 한국기원, 프로기사, 대회 주최사 중 누구에게 있느냐만이 논의의 대상이었다.

프로기사들은 그간 개인의 기보집을 출판할 때는 각자가 저작권을 행사해왔고('조훈현 대국집'이면 조훈현 9단) 바둑TV 등에 대해선 한국기원이, 인터넷 사이트들엔 한국기원 자회사 격인 사이버오로(Cyberoro)가 권리를 행사해 이용료를 받아왔다. (한국기원은 사이버오로에 인터넷을 통한 대회 중계와 기보 이용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위임했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들이 경쟁사인 사이버오로에 이용료를 낸다는 것은 자존심 상 용납할 수 없다고 항의해 왔고, 드디어 지난해 9월 넷마블이 먼저 기보사용료를 내지 않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과 사이버오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자 한게임과 타이젬도 올해 5월부터 이용료를 내지 않았다.

◆ 기보는 저작권이 없다= 인터넷 사이트들의 기본적인 시각은 '기보엔 저작권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 법무팀과 상의해보니 기보는 생생한 동영상과 달리 경기의 기록일 뿐이므로, 다시 말해 축구로 치면 누가 어느 방향으로 찼고 누가 받았다와 같은 기록일 뿐이기에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동영상엔 얼굴이 들어간다. 즉 초상권 때문에 저작권이 인정되지만 기보엔 얼굴이 없고 동시에 저작권도 없다고 한다.

한게임 바둑 팀장 유승엽씨는 "근거만 마련된다면 우리는 즉각 이용료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는 돈을 낼 아무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또 "체스의 기록에는 저작권이 없다. 저작권 문제에 도통한 서구사회에서 이렇게 본다는 것은 바둑의 기보에도 저작권이 없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 한국기원의 대응=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결국 이 문제는 소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기원은 억대의 소송비가 우선 부담스럽다. 또 고문 변호사조차 '필승'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주인이 없는 단체에서 누군가 총대를 메기도 쉽지 않다.

한국기원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한상열 사무총장(프로기사)은 "어차피 한번은 부닥뜨려야 할 문제였다. 우선 국회의 입법에 힘쓰겠다. 소송까지 가기 전에 다른 방법을 먼저 강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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