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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 167년 고택서 만든 전통 장맛 보실라요”

1853년 광산김씨 양강공파 6대 김태현이 지은 전남 강진의 고택 가는 길. 하멜 돌담길로도 불린다. [사진 롯데쇼핑]

1853년 광산김씨 양강공파 6대 김태현이 지은 전남 강진의 고택 가는 길. 하멜 돌담길로도 불린다. [사진 롯데쇼핑]

 시원하게 펼쳐진 하늘 아래 양옆으로 특이한 모양의 돌담길이 늘어서 있다. 비스듬히 세워 쌓은 돌 위에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을 세워 쌓은 전통 네덜란드식 돌담길이다. 전남 강진군 병영마을 1.2㎞를 잇는 이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167년 된 강진 천석꾼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등록문화재(제64호)로 지정된 ‘하멜 돌담길’의 마지막 집이다. 조선을 서방에 알리게 된 책『하멜표류기』를 쓴 헨드릭 하멜(1630~92)이 1656년부터 63년까지 강진에 살면서 남긴 흔적이다.  
 
1853년 광산김씨 양강공파 6대 김태현이 지은 이 집은 170년 가까이 되는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옛 모습 그대로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양곡 판매업을 하던 김태현은 천석꾼(곡식 1000석을 거둘 논밭을 가진 큰 부자)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950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소작농들이 동네 부잣집들엔 죄다 불을 질렀지만 “이 집만은 안 된다”고 남겨뒀다고 한다.  
1853년 광산김씨 양강공파 6대 김태현이 지은 전남 강진의 고택. [사진 롯데쇼핑]

1853년 광산김씨 양강공파 6대 김태현이 지은 전남 강진의 고택. [사진 롯데쇼핑]

 
이 집의 지킴이는 40년째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선봉(59) 씨다. 7남매 중 셋째인 김 씨는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자리 잡은 형들과는 달리 농업고등학교와 농업전문대를 나온 전문 농사꾼이다. 약 1만6500㎡(5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콩을 직접 재배한다. 농약이나 제초제는 쓰지 않는다. 김 씨는 지난 16일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시골에서 땅 두고 놀리면 죄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000평 남짓한 이 집의 마당에는 장독대 200대가 장관을 이룬다. “증조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온 것”이라며 김 씨가 장독대 뚜껑을 들어 올려 내보인 건 4대째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씨 간장이다. 이 씨 간장으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다 직접 담근다. 장독대 옆 덕장에선 김 씨가 직접 재배한 콩으로 빚은 메주 2000개가 자연 바람을 맞으며 건조되고 있다.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드는 된장과 고추장도 전통방식 그대로다. 콩을 12시간 불리고 아궁이에 장작불로 2시간을 삶은 뒤 가마솥에 4시간 뜸을 들인다. 삶은 콩은 압축해서 밀어 으깬다. 1년간 재배한 콩 50가마니를 이렇게 으깨면 2t가량이 나온다.  
 
전남 강진군 병영마을 김선봉(59)씨가 전통방식으로 만든 고추장. 추인영 기자

전남 강진군 병영마을 김선봉(59)씨가 전통방식으로 만든 고추장. 추인영 기자

상품화를 준비한 건 지난 2009년부터였다. 지인이 “이렇게 좋은 거 좀 같이 먹게 팔아봐라”고 권유하면서다. 2014년 첫 상품 출시까지 준비에만 5년이 걸렸다. 신안에서 공수한 소금을 간수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서도 기존 전통 방식은 그대로 고수한다. 으깬 콩 2t으로 만들 수 있는 된장은 약 4t이다. 김 씨는 “돈 벌려면 1년에 20t 정도는 만들어내야 한다”며 “많이 만들어 파는 것보단 좋은 걸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씨간장과 10년 숙성시킨 고추장은 롯데백화점에서 ‘남도명가(名家)’진귀품 세트로 구성해 판매하기도 했다.
 
사랑채 옆에 따로 마련한 작업실에선 주문이 밀리는 설 연휴를 앞두고 김 씨의 아내가 간장병과 된장 그릇을 포장하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된장과 고추장은 숟가락으로 직접 퍼서 그릇에 담는다. 김 씨는 “농도가 높아 되직하니 기계로 담을 순 없다”고 했다. 본채 옆에 있는 집은 담장이 트여 있다. 작업차가 드나들다 보면 집이 훼손되니 옆집을 따로 구매했다고 한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렵냐는 물음에 “안 어려운 게 어딨다요. 다 힘들제. 장독대도 관리 안 하면 파리 날라다니고 냄새 나니까 날마다 닦아야 해요. 근디 젊은이들은 이런 걸 모르고 또 할라고도(하려고도) 안 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도 왜 굳이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걸까. 짧은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온다. “그냥 재밌어서 하제.”
 
강진=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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