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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만 시 쓰나요, 무릎 치게 만드는 이 시를 보세요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52)

제주도의 시인으로부터 시집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어린이시집이었다. 나는 평소 어린이들이 쓴 글이라면 무한한 신뢰를 갖는 편이므로 무척 반가운 선물이었다.
 
무한 신뢰를 갖게 된 배경은 이렇다. 어린이들의 글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목표가 단순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도 단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호하고 복잡한 짓은 어른들만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어린이시집이란 늘 읽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인데, 이번에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시를 몇 편 만났으므로 소개해보기로 한다.
 
첫 번째 작품은 동홍초등학교 6학년 최진욱 학생의 글인데 작품의 수준이 기성 시인들의 그것 못지않다. 하여, 지금부터는 그를 최 시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최진욱 시인은 '생각들이 서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며 그 심경을 참 기발하게도 표현해냈다. [사진 pxhere]

최진욱 시인은 '생각들이 서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며 그 심경을 참 기발하게도 표현해냈다. [사진 pxhere]

 
친구에게서 교통사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집으로 가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나서
내 머리 속에 생각들이
서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
- 「교통사고」 전문
 
어느 날 최 시인, 교통사고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됐다. 집으로 가는 길, 그의 머릿속은 끔찍한 상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에게 교통사고가 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번 끔찍한 상상을 하자 더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는 '생각들이 / 서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며 그 심경을 참 기발하게도 표현해낸다. 시의 대표적인 덕목 하나가 기발한 비유라면, 최 시인은 이미 뛰어난 시인인 셈이다.
 
서귀북초등학교 6학년 신지민 시인의 작품 중에도 이런 기발함을 가진 시가 있다.
 
한 칸 한 칸
한 명 한 명
가족이랑 생이별한다.


신지민 시인은 두루마기 휴지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 pixabay]

신지민 시인은 두루마기 휴지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 pixabay]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생이별’이라는 시어다. 이산가족 찾기 때나 쓸 것 같은 이 단어는 너무 슬퍼서, 열세 살이라는 시인의 나이와 통 어울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그런데 다음 순간, 혼란은 걷히고 독자는 실소하게 된다. 「두루마기 휴지」라는, 시의 제목을 알게 되는 순간에 말이다. 뭐야 휴지 얘기였어? 참 기발하네, 하하하…
 
그런데 며칠 뒤, 태평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독자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출렁댄다. 신지민 시인의 그 작품, 사실은 사람의 인생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두루마기 휴지라는 것은 그저 메타포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에 말이다.
 
이 재기발랄한 시들은 제주도의 ‘하룻강아지어린이철학연구소’에서 기획한 문화예술교육사업의 결과물이다. 김신숙, 김애리샤 같은 제주도의 시인들이 강사 명찰을 달았다. 그러나 강사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시가 가르쳐서 되는 것이었다면 지금쯤 전국의 학원에는 ‘노벨문학상반’이라는 게 있고도 남았을 것이므로.
 
앞의 시인들은 올해 모두 중학생이 되었다. 그들이 앞으로 계속 시를 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허나 만일 쓴다고 한다면, 먼 곳에서 전새벽이라는 배 나온 회사원이 힘껏 응원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도순초등학교 5학년 김민우 시인의 작품을 인용한다. 인생에 관한, 이렇게 짧고 멋진 비유를 나는 전에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나를 던졌다.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여행 간다.
-'돌멩이' 전문
 
던져진 돌멩이라니. 인생에 관한 짧고 멋진 비유다. [사진 pixabay]

던져진 돌멩이라니. 인생에 관한 짧고 멋진 비유다. [사진 pixabay]

 
원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생이란 던져진 돌멩이와 같다. 그것을 숙제로 받아들이느냐, 축제로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김민우 시인은 삶을 여행이라 정의하면서 ‘기분이 좋다’고 선언한다. 덕분에 독자의 기분도 그렇게 된다. 읽는 사람까지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직설적인 선언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오늘 소개한 시집은 『새싹들은 슬프다』라는 제목으로 묶였으며, ‘2019 꿈다락 퐁낭작은도서관 어린이 시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일반 서점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서귀포의 퐁낭작은도서관에 가면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이 책이 아니어도 좋다. 어린이들이 쓴 시집이라면 믿고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앞서 말했듯이, 어린이들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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