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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상드 기다린 쇼팽, 그의 희망 외면한 상드

기자
송동섭 사진 송동섭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60)

프레데릭 쇼팽의 마지막 사진. 루이-오귀스트 비송(Louis-Auguste Bisson). 1849. 음악 박물관(Musée de la Musique)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

프레데릭 쇼팽의 마지막 사진. 루이-오귀스트 비송(Louis-Auguste Bisson). 1849. 음악 박물관(Musée de la Musique)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

 
기후 때문인지 자연적인 쇠퇴 때문인지 영국과 스코틀랜드 체류 후 쇼팽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파리로 돌아 왔을 때 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심하게 피를 토했고 고질적인 설사에 시달렸다. 다리와 발은 부어서 신발도 신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 온 그를 방문했다. 쇼팽은 간편한 실내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았다. 1849년 1월부터 휴가를 떠나기 전까지 화가 들라크루아는 거의 매일 그를 찾았다. 둘은 악덕과 미덕이 교차하는 조르주 상드의 운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1849년 4월에는 델피나 포토츠카와 몇몇 친구들이 모여 즉석 연주회를 열었다. 이것은 쇼팽의 마지막 음악 모임이었다. 상드의 딸 솔랑주가 두 번째 딸을 5월에 낳았고, 6월에는 잘나가던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가 샤이요 거리의 아파트에 들렀다.
 
쇼팽에게 동종요법을 실행하여 고통을 줄여주던 몰린 박사는 쇼팽이 영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유명한 결핵 전문가 쟝 크뤼베이에르 박사가 와보았지만 그의 병을 낫게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무런 처방도 없었고 그저 편히 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쇼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의 권고를 들을 필요 없이 편히 쉴 수 있을 거야”하고 솔랑주에게 전했다.
 
가뿐 숨을 몰아 쉬던 쇼팽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 했고, 그 때 생각한 것은 가족이었다. 쇼팽은 누나 루드비카에게 편지를 보내어, 와서 좀 돌보아 달라고 간청했다. 바르샤바의 루드비카는 분주히 움직여서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각각 러시아와 폴란드에 영향력이 있는 오브레스코프 공주와 마르첼리나 공주가 여권발권이 빨리 되도록 힘을 썼다.
 
한편 이즈음 노앙에 있던 조르주 상드에게 편지 한 장이 전달되었다. 발신인은 상드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의 오랜 친구가 심한 병으로 누워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오랜 고통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그를 당신이 모르고 지나쳐서 그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는 위안을 줄 기회를 놓친다면, 당신은 후회할 것이고 그는 절망 속에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글 쓰는 것이 숨쉬는 것보다 쉬워 보였던 상드는 보통 편지의 답장에 뜸을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 지 궁금하다. 그녀의 답장은 다음과 같다.
 
“그 불행한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주변의 상황이 우리를 갈라놓았습니다. 딸에 대한 그의 일방적인 편애가 아무 잘못 없는 아들을 소외시켰습니다. 나는 그 친구와 아들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할 지경으로 몰렸습니다.
 
저는 그 뒤로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났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죠. 그런데 그 사람은 거의 도망가다시피 자리를 피하더군요. 저는 열심히 뒤쫓아갔고, 그 사람은 마지 못해 돌아와서는 […] 화난 표정으로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내비쳤습니다. […] 그렇게 저를 혐오하고 저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상드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가족같이 쇼팽을 돌보고 있던 로지에르의 지인(知人)이면서 상드의 딸 솔랑주의 친구라는 말이 있다. 상드에게 쇼팽은 이미 떠난 사람이었다. 남은 미련은 오직 쇼팽에게만 해당했고 상드는 아니었다.
 
바르샤바에 있는 누나 루드비카에게 보낸 쇼팽의 편지.

바르샤바에 있는 누나 루드비카에게 보낸 쇼팽의 편지.

 
루드비카는 남편과 딸을 데리고 8월 9일 파리에 도착하였다. 쇼팽은 잠시 활기를 찾았다. 그렇잖아도 가족에게 풀어놓을 얘기들이 많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쇼팽은 누나와 밤새 얘기를 주고 받았다.
 
루드비카가 쇼팽을 돌보기 위해 파리로 왔다는 소식은 상드에게도 전해졌다. 상드는, 이전에 노앙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던 루드비카에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받은 난데없는 편지에 너무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상드는 루드비카에게 쇼팽의 근황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파리에 있다는 것을 지금 알았습니다. 어떤 이는 그가 평소보다 더 나빠졌다고 하고 다른 이는 내가 늘 보아왔듯이 그렇게 그저 약하고 조바심에 차 있다고 합니다. 감히 당신에게 소식을 청합니다. 자기 아이들에게 버림받고 오해 받아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누군가 당신 가슴속에 있는 나에 대한 기억을 어지럽힐지라도, 그 모든 비난만큼 내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쇼팽의 마지막 거처가 있던 파리의 방돔 광장 건물. [사진 Wikimedia Commons]

쇼팽의 마지막 거처가 있던 파리의 방돔 광장 건물. [사진 Wikimedia Commons]

 
상드는 쇼팽이 예전부터 병약했고 지금의 상태에 대해서 자신을 탓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쇼팽의 관계가 어머니와 아이처럼 한 쪽이 일방적으로 사랑과 보살핌을 베푸는 사이였음을 은근히 부각시키려 했다. 상드는 주위의 이런 저런 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은 없었다.
 
의사는 결핵균이 햇빛에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햇빛이 풍부하고 난방이 잘되어 있는 방으로 옮기라고 권했다. 쇼팽은 마지막 집이 될 방돔(Vendôme) 광장의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빛이 잘 들고 일곱 개의 방이 있는 큰 아파트의 월세는 충직한 제자 제인 스털링이 부담했다.
 
10월이 되자 쇼팽은 도움 없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지키고 있어야 했다. 쇼팽이 곧 죽을 거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를 만나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곁을 지키는 친구들은 방문객을 선별해야만 했다.
 
솔랑주는 엄마 조르주 상드에게 쇼팽의 상태를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솔랑주에게 쇼팽과 상드는 같은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을 확신한 쇼팽은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쇼팽은 모든 이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췄다. 그리고 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축복을 남겼다.
 
『쇼팽의 마지막 순간』. 테오필 퀴아토프스키 그림. 제인 스털링의 의뢰에 따라 그려짐. 1849 ~ 1850. 프레데릭 쇼팽 기념관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쇼팽의 마지막 순간』. 테오필 퀴아토프스키 그림. 제인 스털링의 의뢰에 따라 그려짐. 1849 ~ 1850. 프레데릭 쇼팽 기념관 소장. [사진 Wikimedia Commons]

 
10월 15일에는 지중해 안의 니스에 있던 폴란드 동포 델피나 포토츠카 부인이 달려왔다. 파리 폴란드 동포사회의 꽃이었던 델피나는 쇼팽과 비슷한 시기에 파리에 와서 이국 생활의 애환을 나누었다. 쇼팽은 그녀의 목소리가 곱다고 칭찬했었다. 쇼팽은 노래를 청했다. 델피나의 노래는 그에게 마지막의 위안을 주었다. 노래를 마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기력을 좀 회복한 것 같았다. 쇼팽은 곁에 있는 프랑숌에게 속삭였다. “그녀(조르주 상드)가 내 마지막을 지켜줄 거라고 했었는데.” 저녁이 되자 고통이 심해졌다. 그의 얼굴은 검게 변했다. 크뤼베이에르 박사가 와서 진찰했다. 아프냐는 물음에 쇼팽은 작은 소리로 “더 이상 아니요”하고 말했다. 밤에는 숨도 쉬기 어려웠다. 쇼팽은 솔랑주를 불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쇼팽에게도 솔랑주는 한 가족이었다.
 
새벽 2시경 쇼팽은 목마르다고 했다. 곁에 있던 제자 구트만이 그를 안아 일으켰다. 솔랑주가 물을 가져와 그의 입에 잔을 대어주었다. 물을 주는 솔랑주를 바라보던 쇼팽의 눈이 흐려지다가 초점을 잃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솔랑주는 ‘앗’하고 비명을 지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솔랑주는 쇼팽의 눈을 감겨주었다.
 
다음 편은 쇼팽의 장례식과 끝까지 충직한 모습을 보인 제인 스털링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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