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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돈 찾아준 노인, 그 아들 구한 남자…돌고 도는 인생사

기자
권도영 사진 권도영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51)

 이 년 전 이맘때쯤 실제로 겪은 일이다. 밤에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정거장에 내리면서 패딩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핸드폰이 없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가방 안에 툭 던져 넣고 찾기도 했던지라 가방 안을 뒤졌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얼른 집으로 뛰어들어가 가방을 뒤집어 쏟아 놓고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졌지만 역시 없었다.
 
집 전화로 내 핸드폰에 전화를 했다. 한참 동안 안 받길래 누가 벌써 집어 갔나 싶어 안달이 났는데, 다행히 누군가 받았다. 버스에서 내가 앉았던 자리는 맨 뒤 가운데 자리였다. 위치 설명을 하자 전화 받는 사람이 자기도 맨 뒷자리에 있다가 진동을 느끼고서야 핸드폰을 발견했다고 했다.
 
버스는 이미 내가 내린 정거장에서 세 정거장쯤 더 간 곳까지 가 있었다. 정말 죄송한데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바로 그러겠다고 해 부랴부랴 차를 타고 막 달려갔다. 덩치 큰 남자가 점퍼 모자 뒤집어쓰고 혼자 서 있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바람도 심하고 휑했다. 추운 밤, 단 십 분이라도 그저 서 있기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주운 그 남자는 거기가 내려야 하는 곳이었다며 사례금도 극구 사양하면서 그냥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는 정말 정신없이 코가 땅에 닿도록 “고맙습니다”를 연발하게 됐다. 그는 분명 복 받았을 것이다. 인생사, 돌고 도는 것이니. 선한 마음과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야 흔하고 흔한데, 이런 이야기도 한번 살펴보면 좋겠다.


돈 찾아주고 아들 구한 노인

인생사, 돌고 도는 것이니 선한 마음과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온다. '돈을 찾아주고 아들을 구한 노인' 이야기에도 그런 교훈이 담겼다. [사진 pixabay]

인생사, 돌고 도는 것이니 선한 마음과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온다. '돈을 찾아주고 아들을 구한 노인' 이야기에도 그런 교훈이 담겼다. [사진 pixabay]

 
옛날에 참으로 가난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아들이 큰 동네 가서 돈을 좀 벌어보겠다며 나갔다. 남자는 부인과 함께 집에서 버텼지만 점점 먹을거리도 떨어지고 해 아들을 찾아갔다. 아들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 삼백 냥을 내주었다. 남자가 그걸 전대에 매고 집에 오다가 한 고개에서 전대를 풀고 잠시 담배를 피우며 쉬었다.
 
그러곤 다시 길을 떠났는데, 한참 오다 보니 허리춤이 허전한 것이었다. “아이쿠, 큰일이다” 정신이 아득해진 남자가 숨이 턱에 차도록 헐레벌떡 고개에 가보니 한 노인이 전대를 꽉 끌어안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돈 삼백 냥을 여기다가 놓구 갔는디 할아버지가 주우셨느냐”고 하니 할아버지는 “그렇지. 이걸 내가 가지구 가먼 잃어버린 사램이 못 찾을 거구, 여기다 놓구 가먼 다른 사램이 주워갈 게구. 그래서 내가 이걸 붙잡구 있다”고 했다.
 
참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꾸벅하고는 또 한참을 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냇물이 금세 불어 흙탕물이 흘러넘치는데 어떤 청년 하나가 내를 건너다 빠져버렸다. 청년이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거센 물줄기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남자가 “저 사람 건지라. 여기 돈 삼백 냥 있는데 이눔 줄 테닝께 건지라”며 막 소리쳤더니 장정들이 뛰어들어 청년을 구해냈다.
 
살아난 청년이 남자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 집에 들어가 보니 아까 남자의 전대를 주워 준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이 청년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노인은 아들을 살려주어 고맙다며 자신의 재산 반을 갈라 남자에게 주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대를 잃어버린 남자보다는, 누군가의 전대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인에게 관심을 두어 본다. 이런 걸 흘리고 가버렸다면 곧 찾으러 올 수 있다는 헤아림, 내 일 아니니 지나쳐 버려도 될 텐데 굳이 전대를 끌어안고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린 마음. 마음은 이렇게 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전대 주인은 이 노인의 아들이 물에 빠졌을 때 어렵게 찾은 돈이지만 기꺼이 그 사람을 돕는 일에 쓰고자 했다. 전대를 찾아준 노인의 아들임을 알았기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2000년 국내에서 개봉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ward)’라는 영화가 있다. 트레버라는 아이가 칠판에 그림 그려가며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한 명이 세 사람만 돕는다고 하면 한 명이 세 명 되고, 세 명이 아홉 명 되고, 아홉 명이 스물일곱 명이 될 것이니 좋지 않겠느냐고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영화가 너무 착하기만 한 내용인 데다 결말이 좀 안타까워서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그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가던 그림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나눔은 돌고 돌면서 점점 뻗어가게 되는 것이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포스터. 트레버가 칠판에 그린 그림을 모티프로 하였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포스터. 트레버가 칠판에 그린 그림을 모티프로 하였다.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 같다. 레비나스가 ‘타자윤리학’에서 말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이라고 한다. 나의 자아 안에서 세상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중심을 타자에 둔다는 것이고,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준다는 계산적 관계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다. 위험이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일은 그 일이 나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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