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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선] 누가 대통령 뜻 거역하는 항명자인가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수도권의 한 중소도시에 A총경이 신임 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현직 시장 B씨의 비리 수사에 착수해 정치자금법 위반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입건했다. B시장은 유죄판결을 받고 시장직 직무정지까지 당했다.
 

검찰 못잖은 경찰의 정치 편향
경찰이 수사권 쥐면 국민 득보나
정권이 수사개입 않는 게 더 중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듬해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B시장의 후임으로 당선된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닌 A총경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B시장을 수사한 것인지 여부는 제3자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의 출마 행보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설령 수사 당시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현직 시장을 수사한 당사자가 그 자리에 출마한 건 적절한 처신이라 보기 어렵다. 훗날 들은 바로는 A총경 또한 시장 취임 후 뇌물 혐의로 측근들과 함께 줄줄이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그래서 경찰은 안돼”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참았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면전에서 자초지종을 얘기해준 사람 역시 경찰 간부였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졌던 10여년 전의 A총경 사건을 다시 떠올린 건 최근 일어난 두 가지 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통과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때문이다. 별개인 듯 보이는 두 사안은 서로 긴밀히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경찰청 현관에는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 혜택은 국민에게”라 쓰인 대형 간판이 걸렸다. 검찰과의 상하관계로부터 ‘독립’했다는 감격과 뿌듯함이 묻어나오는 문구다. 그런데 경찰이 정권의 부당한 간섭과 외압으로부터도 ‘독립’할 수 있을까. 경찰의 힘이 세지면 국민에게 정말로 혜택이 올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을 여러 명 만났다. 그동안 경찰이 보여온 행태와 전력때문이다.
 
권력을 향한 줄서기,인권침해, 부실 수사, 비리와의 유착 등으로 국민의 불신을 산 경찰의 ‘흑역사’는 차고 넘친다. 검찰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문제가 심각한지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유독 검찰에게만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 힘을 빼고, 경찰에겐 정반대로 수십년 숙원을 해결해주며 힘을 실어줬다. 일각에선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된 것을 놓고 “검사 1만명이 늘어난 격”이라고 말한다. 범죄가 발붙일 땅이 없어졌다고 좋아하는 말이 아님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은 A총경 사건과 여러 모로 닮았다. 하지만 A총경 사건의 단순 확대판은 결코 아니다. A총경은 개인의 문제에 그쳤지만 울산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친구이자 오랜 동지를 필두로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 즉 대통령의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경찰은 안돼”란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검찰 수사가 경찰과 대통령 주변인물들 간의 음험한 결탁이나 공모가 있었는지 여부를 파고 드는 건 합리적 의심에 바탕한 당연한 수순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해답은 문 대통령이 2011년 뜻이 맞는 법학교수와 함께 펴낸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 나와 있다. “정치적 중립은 검찰개혁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라고 굵은 활자로 적혀있는 이 책에서 문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은 검찰권에 대한 개입을 스스로 절제, 자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검찰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집권자의 의지와 행동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검찰사에서 모범 사례가 딱 한차례 있었다며 노무현 정부 때의 대선자금 수사를 꼽았다. 당시 검찰은 노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 강금원씨를 비롯, 대통령 측근들을 성역없이 수사하고 처벌했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검찰이 제대로 해서 모처럼 국민에게 아주 잘한다는 갈채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그 원인으로는 노 대통령이 일절 수사에 간섭하지 않았던 점을 들었다.
 
지금 윤석열 검찰의 수사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윤 총장이 상가(喪家)에 나타나도 박수를 받는 건 정권 눈치 안보고 수사하는 모습을 실로 오랫만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선자금 수사에 견줘 보면 지금 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자명해진다. 2011년 『검찰을 생각한다』를 펴낼 때의 소신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면 말이다. 대통령의 소신이 그럴진대 법무장관이든 누구든 절제와 자제 없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든다면, 그건 바로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금명간 울산 사건 수사팀의 운명이, 추미애 장관이 쥐고 있는 인사권의 도마위에 오른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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