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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청와대, 5대 그룹에 “공동사업 찾아라” 재계 “5공 회귀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5대 그룹에 ‘공동 사업화’ 과제 제출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김 실장이 지난 6일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5대 그룹에 ‘공동 사업화’ 과제 제출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김 실장이 지난 6일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삼성과 현대차그룹 등 재계 5대 그룹 관계자들을 불러 이들이 공동으로 사업화할 만한 아이디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개별 기업이 정해야 할 미래 사업 방향을 정부가 좌우하려 한 탓이다.
 

김상조 “반도체 버금갈 신사업
함께 찾아 연구개발·투자해달라”
민간기업 경쟁 DNA 무시한 발상
홍남기 “의무 아니다…지원에 방점”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롯데그룹의 부회장·사장급 임원들이 최근 서울 시내 모처에 모여 정부의 ‘공동 사업화’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내지 못했다고 한다.
 
‘공동 사업화’ 과제는 청와대 정책사령탑인 김상조(58) 정책실장이 주도한다는 후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5대 그룹 기업인들에게 “제2의 반도체가 될 만한 신사업을 5대 그룹이 함께 찾고 공동 연구개발 및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도 이를 국책사업으로 삼아 수십조 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5대 그룹 고위 임원들의 모임은 김 실장의 이런 요청에 따른 것이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공동 프로젝트가 만약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며 “공동 프로젝트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가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르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김상조 실장이 움직였다는 건 결국 청와대의 뜻이라는 의미”라며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작 청와대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동 사업화’ 제안의 기본 취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내는 것은 한국 경제의 필수 과제다. ‘반도체’만 한 효자 아이템 하나만 만들어 낸다면 ‘문재인 정부’는 커다란 경제적 성과를 이룬 셈이 된다.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현실에서 ‘공동 사업’이란 기업 생리에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기업들은 이미 국내외 시장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했다. 실제로 석유화학 산업만 봐도 SK그룹과 LG그룹, 롯데그룹은 업계 1~3위 업체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고,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는 ‘배터리’ 시장과 관련해선 SK와 LG가 미국·한국에서 대규모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반면 이익이 된다 싶으면 알아서 과감하게 손을 잡는다. 삼성그룹이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부문을 각각 롯데그룹과 한화그룹에 넘긴 일이 대표적이다.
 
‘공동 사업화’는 재계에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산업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5대 그룹의 한 부사장급 임원은 “제5공화국 당시인 1980년, 정부는 업체 간 과당경쟁과 과다 설비를 지양한다는 이유를 들어 ‘산업 합리화 조치’를 추진했었는데, 이번 ‘공동 사업화’ 소식을 들으니 그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재계 회장들을 불러 강제로 사업 방향을 바꾸게 하고 자의적으로 자동차 업체들을 이리저리 묶었다.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이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불려 들어가 도장을 찍은 건 유명한 일화다.
 
멀리 갈 것 없이, 박근혜 정부 때 일부 대기업은 청와대 요청에 휘말려 수년째 재판을 받았다. 총수가 감옥살이를 한 곳도 있다.
 
정부의 ‘공동 사업화’ 과제를 두고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60년대 우리나라에 이렇다 할 산업체가 없던 시절 당시의 정부 주도 발전 모델로 회귀한 것”이라며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규제 혁신, 장기적 기초연구 등에 힘쓰면 된다”며 “정부의 역할과 기업의 역할에 대해 성찰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진심이라면 ‘지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기다리는 정부’가 돼야 한다.
 
이수기·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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