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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결정적 순간들' 출간한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 역사 연출한 결정적 리더십, 현장 취재로 복원하고 교훈 뽑아냈다
■ 팩트 핵심 찌르는 단문 문체로 드러낸 지도자와 지도력 참모습

와이드 인터뷰
인류 운명 바꾼 리더십 드라마 그 기억의 현장으로 시간 여행

■ ‘좋은 리더십, 유능한 권력’ 추적하다 보니 국민훈장 모란장 받아
박보균 대기자는 ’이승만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름대로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보균 대기자는 ’이승만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름대로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소에는 흘러간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결정적 순간들]은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장소를 찾아가 결정적 순간을 재현한다. 저자는 ‘좋은 리더십, 유능한 권력’을 줄곧 열정적으로 추적하고 발굴해 온 언론인 박보균이다.
 
박보균식 저널리즘의 두 키워드는 현장주의와 단문주의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는 신간 추천사에서 “박보균 대기자는 독특한 문체를 갖고 있다. 그의 글은 선명하면서 간결하다”고 말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전 덕성여대 총장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는 현장주의자다. 그에게는 운명적인 원칙이 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결정적 순간들]은 특히 현장주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20세기 세계정치사에 이름을 남긴 처칠·루스벨트·드골·히틀러·무솔리니·스탈린·레닌·마오쩌둥·호찌민의 장소를 찾았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주요 회담(카이로·테헤란·얄타회담)의 ‘기억의 장소’를 찾았다.
 
박보균 대기자는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81년 중앙일보에 들어가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편집인을 거쳤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한제국 공사관’의 재매입 공적으로 2013년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했다. 전작으로 [살아 숨쉬는 미국역사] [청와대 비서실(Ⅲ)] 등이 있다.
 
 

고종과 주미 공사관의 교훈… 부국강병 없으면 나라 망한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워싱턴 대한제국(帝國) 공사관은 기막힌 역사 드라마다. 그 속에 가난한 나라 통치자의 도전과 약소국의 좌절이 담겨 있다. 1996~97년께 그 비극적 사연을 알게 됐다. 2012년에 우리 정부가 건물을 재매입할 때까지 15년간 그 드라마에 몰입했다.
 
19세기 말 조선은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 특히 청나라(중국)는 서구 열강에 형편없이 당하면서도 조선을 가혹하게 속방(屬邦) 취급을 했다. 고종은 외교로 나라를 지키려 했다. 대미 외교에 승부수를 던졌다. 고종은 워싱턴에 상주 공사관, 지금으로 치면 대사관을 설치했다. 도쿄나 베이징의 공관은 전세였는데 워싱턴은 달랐다. 1891년 고종은 내탕금에서 2만5000달러(지금 가치 최소 127만 달러)를 꺼내 공사관 건물을 샀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의 막대한 투자였다. 그 건물은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중심가에 있다. 누구나 가보면 미려한 건축미에 감탄하고 역사적 감회에 젖는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외교자산을 강탈한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공사관은 문을 닫는다. 1910년 경술국치의 망국으로 공사관은 제국 일본에 넘어가고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다. 식민지, 해방, 6·25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지는 오랜 격동의 세월 속에서 워싱턴 공사관은 잊혀졌다.
 
1972년 워싱턴 시당국은 그 일대를 문화보존지구로 지정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재개발되거나 헐리지 않고 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1980년대 그 건물의 존재 사실이 알려졌지만 역사적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 이 건물의 가치를 재구성해 조명하는데 앞장 선 것이다. 이 건물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내 마음속은 비감 섞인 감동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역설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망국의 비운을 담은 이 건물이 왜 기적적으로 살아있을까.’ 나는 내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부국강병이 뒤따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교훈을 후손들에게 증언하기 위해서다.’ 나는 공사관의 전도사가 됐다. 공사관의 독보적 역사성, 문화재적 가치를 신문기사·출판·강연을 통해 알렸다.
 
관료적 무사안일, 학계의 허술한 역사의식 때문에 재매입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OECD 회원국이면서도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의 건물을 사지 못했다. 그런 곡절 속에 헤리티지 문화포럼의 적극적인 활약이 전기를 마련하면서 2012년 정부가 우리 돈 39억5000만원을 주고 샀다. 일제에 빼앗긴 지 102년 만이다. 그 공관은 이 일대 비슷한 양식의 30여 채 건물 중 유일하게 내부 수리를 안 했다. 130년 전 공관 내부가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그 건물은 지금 부동산 가치로 5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곳은 워싱턴을 찾는 한국인들의 제1 관광 코스가 됐다. 공관 재매입 때 나는 ‘잊어버린 역사의 귀환, 일본에 빼앗긴 주권 회복의 완성’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 건물 매입의 1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나는 영예로운 국민훈장을 받았다.”
 
'결정적 순간들'의 장점·차별성·셀링포인트는?
 
“현장성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의 현장에 가야만 알 수 있는 사연,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남이 쓴 것을 재구성해 살을 붙여야 한다. 나의 기자적 본능은 그것을 못마땅해한다. 이번에 내놓은 [결정적 순간들]의 차별성은 독자를 리더십의 작동 현장에 초대하는 것이다. 현장주의 글의 미덕은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매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소통하는 방식이다.”
 
1943년 카이로 회담 본부였던 메나하우스 호텔 정원 뒤 피라미드. 그 시절 뉴욕 타임스의 회담 기사를 읽는 박보균 대기자. / 사진:박보균 대기자

1943년 카이로 회담 본부였던 메나하우스 호텔 정원 뒤 피라미드. 그 시절 뉴욕 타임스의 회담 기사를 읽는 박보균 대기자. / 사진:박보균 대기자

현장주의 덕분에 발굴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식민지 한국의 독립 조항이 국제회담에서 처음 들어간다. 카이로회담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장개석) 총통이 참석했다. 여태까지 우리 상식은 그 조항을 장제스가 넣었다는 것이다. 카이로 현장을 다니고 워싱턴, 대만 자료들을 발굴·추적해 보니 그 상식은 과장된 신화, 잘못된 사실이었다. 한국 조항 삽입의 주역은 루스벨트였다. 그의 뉴딜정책 국제판이 구질서 제국주의 식민지의 해체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 제국주의 분쇄와 조선 독립은 연관됐다. ‘장제스 역할론’은 1950년대 대만(중화민국) 기록에 의존한다.
 
미국의 회담 비밀 기록은 1960년대 후반부터 단계적으로 해제된다. 거기에 충격적인 대목이 있다. 루스벨트와 장제스의 회동 내용이다. 루스벨트에 따르면 ‘장세스는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re-occupation)을 포함한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루스벨트의 아들(엘리엇 육군 중령)이 두 사람의 만남에 배석했다. 엘리엇의 회고록은 ‘재점령’이란 놀라운 어휘를 뒷받침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해 일본점령 지역의 전후관리 문제를 물었는데 장제스는 한국 운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고 증언한다. 우리 학계 대부분은 처음 공개된 대만 기록에만 충실하고 미국 비밀기록의 이런 내용은 잘 모른다.
 
1932년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이후 장세스는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 앞에서 주춤하고 외면했다. 장제스는 임시정부를 공식 망명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카이로회담에서 한국 독립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런 태도는 김구 주석의 염원과 전략적 목표를 배신한 것이다.
 
카이로회담 공식 장소는 피라미드 근처의 메나 하우스 호텔인데, 루스벨트는 그 호텔에 가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당시 카이로 주재 미국대사의 저택(메나 빌라)에서 장제스를 만났다. 여기서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와 부인(송미령)이 역사적인 기념사진을 함께 찍는다. 나는 카이로에서 잊혀졌던 이 건물을 찾아내 신문에 보도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에서도 비슷한 지적 쾌감을 맛봤다. 그의 고향이 코카서스 3국의 하나인 조지아의 고리(Gori)다. 그곳의 스탈린 박물관과 서점에는 스탈린의 정체성을 해부할 단서가 많았다. 스탈린은 10대 시절 낭만적인 시를 쓰고 사제(司祭) 양성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분노조절 장애를 겪었고, 그 지방의 전통적인 복수의 관습에 심취했다. 그것이 무자비한 스탈린 공포통치의 심리적 뿌리였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재자 무솔리니의 리더십도 흥미로웠다. 무솔리니의 고향 프레다피오에 가봤다. 거기에 무솔리니의 생가가 남아 있고 그의 무덤도 있다. 그곳은 파시즘 순례자들만 찾는다.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솔리니에 대한 인식은 나치 히틀러의 하수인 정도다. 하지만 현장은 새로운 사실을 담고 있었다. 히틀러는 자신보다 10년 먼저 집권한 무솔리니의 대중 장악, 권력집중, 상징조작 방법을 참고하고 모방했다. 괴벨스의 선전선동술도 무솔리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무솔리니는 명예박사가 아닌 정식 정치학 박사였고 연구논문은 마키아벨리에 관한 것이다. 1938년 뮌헨회담 참석자는 영국 총리 체임벌린,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였다. 무솔리니가 4개 국어를 하며 회담장을 누볐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어 선생을 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 좌파의 이념적 진지를 마련해 준 안토니오 그람시는 무솔리니와 경쟁했다. 총리 무솔리니와 공산당 의원 그람시의 의회 논쟁은 이념과 말의 성찬이었다.”
 
 

리더십 덕목은 상상력과 용기… 지혜·돌파력 낳아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백합홀에 걸린 마키아벨리 초상화와 박보균 대기자. / 사진:박보균 대기자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백합홀에 걸린 마키아벨리 초상화와 박보균 대기자. / 사진:박보균 대기자

이번 책은 ‘현장 중심의 지도자 전기 모음집’이기도 하고 ‘문사철 콘텐트가 풍부한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저자가 보기에 이 책이 속한 분야는?  
 
“정치리더십 분야에 넣고 싶다. 리더십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나치 독재자 히틀러의 리더십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가져왔다. 그는 1939년에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을 일으키고 45년 자살한다. 그의 집권 기간은 놀랍게도 12년에 불과하다. 전쟁 기간 6년을 빼면 1933년부터 6년간 독일을 철저히 개조하고 나라를 뜯어고쳤다. 권력자의 교활한 의지와 악마적 집념으로 그렇게 짧은 기간에 세상이 송두리째 바뀐 것이다.
 
남북한 경쟁 역사를 살펴보면 지도력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 박정희와 김일성의 리더십 경쟁은 누가 먼저 국민을 배고픔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느냐는 거였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에만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은 한국의 산업화가 국민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우수하고 부지런하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의 힘만 강조하면 거기엔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런 접근 방식은 북한 주민들을 멍청하다고 야유하는 이야기가 된다. 이북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이남 사람보다 억척스럽다. 북한 주민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최악의 리더십을 만났기 때문에 최악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세습체제의 리더십 때문에 아직도 굶주리는 것이다.
 
2차대전 때 처칠이 히틀러의 야욕을 막아낸 것은 리더십의 위대한 승리다. 영국이 전쟁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처칠은 총리를 맡았다. 처칠이 우선 초점을 맞춘 것은 국가 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국민에게 주입하는 것이었다. 독일 공군의 런던 공습 때 그는 셰익스피어적 말을 한다. “대영제국이 앞으로 천년 동안 계속된다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지금이 그들의 가장 멋진 순간(finest hour)이었다.” 그의 말은 비관과 패배주의를 퇴출시키고 낙관과 저항의 국민적 투혼으로 가동됐다. 1960년대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처칠의 그런 지도력에 대해 “영국이 혼자 버티던 어두운 시기에 처칠은 언어를 동원해 그것을 전선에 보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의 건국 지도자 호찌민(胡志明·호지명) 리더십은 경이롭다. 베트남은 1950년대 프랑스, 60~70년대 전반 미국, 1979년에 중국을 물리쳤다. 약소국 베트남이 어떻게 강대국들과 싸워 승리했는지를 알려면 호찌민 리더십에 익숙해야 한다.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별관으로 우드바르-헤이지(Steven F. Udvar-Hazy) 박물관이 있다. 엄청난 크기의 박물관 한쪽에 ‘B-52 모형과 호찌민 샌들’이 함께 유리관에 진열돼 있다. B-52 전략폭격기는 샌들만큼 작게 축소했다. 샌들은 자동차의 폐(廢)타이어로 만들었다. 미군은 가죽 군화 대신 샌들을 신은 북 베트남, 월맹군을 ‘거지 군대’라고 깔보았다. 하지만 호찌민 샌들 군대는 B-52 첨단 기술의 미군을 물리쳤다. 두 개의 전시물은 정신력과 기술력의 절묘한 대비다. 호찌민이 생산한 저항 의지는 지금도 마력적으로 작동한다. 2020년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베트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중국이 한국을 속국처럼 여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찾으면 특별한 진실에 접한다. 알자스로렌 지방에 설치된 마지노 요새는 그 시대 최첨단 지하 건축물이었다.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한 방어기지였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터지자 무용지물이 됐다. 마지노선의 취약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전쟁 의지가 결핍된 수세적 대응의 산물이었다. 방어에만 충실한 태도는 나치 독일의 공세적인 상상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 책은 20세기 최고지도자들을 다루었다. 리더십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지도력의 요체, 리더십의 구성 요소, 지도자의 조건은 여러가지다. 통찰력과 비전, 도덕성과 헌신, 원칙과 일관성, 권력 의지와 카리스마, 결단과 도전, 통합과 소통, 비전과 시대정신 창출, 열정과 투지가 거기에 해당된다. 그중에서 어떤 자질이 최고냐, 우선이냐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시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지도력의 요소가 다르고, 대중이 원하는 리더십 조건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나는 상상력과 용기를 리더십의 우선 덕목으로 친다. 상상력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사물을 다원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용기와 상상력이 결합하면 위기 돌파의 지혜와 추진력이 생겨난다. 처칠의 지도력은 거기에 해당한다. 처칠은 상상력으로 무장돼 있었다. 그는 용기를 리더십의 으뜸으로 쳤다.”
 
 

정곡 찌르는 단문 쓰려면 문장마다 승부를 걸어야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환수 유공자 서훈 및 포상식이 2013년 8월 20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다.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가 변영섭 문화재청장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고 있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환수 유공자 서훈 및 포상식이 2013년 8월 20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다.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가 변영섭 문화재청장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고 있다.

'결정적 순간'의 배경에는 마키아벨리가 짙게 깔려 있다.
 
“마키아벨리는 대담한 정치철학자다. 500년 전 내놓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모술수, 기만과 음모의 처세술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그의 학문적 성취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조명·해부한 데 있다. 도덕과 종교로 감춰진 위선과 이중성의 가면을 벗긴 상태에서 그는 권력과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력의 무대를 비르투(virtù)와 포르투나(fortuna)의 대결로 파악했다. 비르투는 인간의 창조적인 의지력이나 야성적 용기, 포르투나는 우연이나 운명에 의존하는 성향이다. 그는 정치적 안정을 통치자의 담대한 의지력(virtù)의 결과로 파악했다. 그는 자유가 가능한 국가가 자유가 없는 국가보다 더 번영하고 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모시고 마키아벨리 학술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최 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카를 마르크스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이론에는 정치의 역할이 없고 규범과 이상만 강요한다. 이런 문제의 해독제로서 마키아벨리의 유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좌파 우위의 지금 현실에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박보균 대기자의 문체는 단문이다. 단문의 특징은 무엇인가?
 
“단문은 어떤 현상, 스토리에서 진액(extract)만 뽑아 정곡을 찌르는 거다. 길게 쓰는 장문 스타일도 좋은 게 많다. 나의 강조점은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방식은 단문이다. 상황의 한복판, 그 밑바닥에 뛰어들어 내면의 정수(精髓)를 들춰내는 것이다. 단문 훈련을 하면 팩트를 추적하는 열정과 집념이 강해진다. 그저 길게 쓰면 두루뭉술하게 쓸 수 있다. 단문으로 쓰려면 문장마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생략의 묘미에도 익숙해야 한다. 생략은 독자와의 역설적인 소통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이번 책에서 단문으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중 있게 다뤘다.
 
“헤밍웨이의 세계는 오랜 세월 나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어 왔다. 그의 글 거의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그것도 피가 튀고 격렬한 충돌이 있고, 삶과 죽음이 얽혀 있는 곳이다. 전쟁·투우·바다·사냥의 장소다. 그는 그 속에서 도전과 쟁취의 캐릭터를 만들어 소설에 등장시킨다. 나는 헤밍웨이의 소설 속 현장을 따라갔다. [무기여 잘 있거라](1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 북부와 슬로베니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스페인 내전)의 론다와 과다라마 산맥,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팜플로나, 그가 태어난 곳(시카코)과 죽은 곳(아이다호 선밸리), 플로리다 키웨스트, 쿠바 아바나의 어촌과 자택을 찾았다. 헤밍웨이의 글이 미국식 단문이다. 그의 스타일은 ‘문장을 자르고 또 자른다’는 것이다.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는 되도록 거부한다. 그러면서 문장 하나하나에 혼을 넣는다. 문장은 짧지만 독립적이고 분리된 섬이다. 다리로 연결돼 있지 않다. 하나의 섬에 ‘진실의 순간’을 담으려 한다. 그에 대한 인상 깊은 평론이 떠오른다. ‘헤밍웨이의 간결하지만 악몽 같은 단문에 독자는 스스로 상상력을 발동해 따라간다.’”
 
리더십과 말은 어떤 관계인가?
 
“정치는 말이고 통치는 언어로 작동한다. 정곡을 찌르는 말들은 진실과 실질에 바탕을 둔다. 적재적소의 말은 상황을 선점하게 한다. 처칠은 언어를 비밀병기처럼 사용했고,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권력이 총과 붓(글·말)에서 나온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는 말과 글로 중국 대륙을 평정하고 중국 인민을 다스렸다. [중앙SUNDAY]에 ‘중국 근현대’를 연재하는 김명호 교수는 장제스가 마오쩌둥에게 패배한 가장 큰 이유를 말과 글의 싸움, 선전선동에서 졌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말과 글은 마오쩌둥이 타천하(打天下)하는 수단이었고, 6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도 마찬가지였다. 마오는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의 말로 10대 홍위병들을 정신무장시킨다.
 
군중 심리학을 연구한 프랑스의 귀스타브 르봉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그들을 다스리는 기술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 기술은 언어로 단련된다. 말과 리더십은 분리되지 않는다. 말을 못하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세상을 관통하는 말, 세상 이치를 낚아챈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지도자는 세상을 밝게 만들려는 의지와 실질을 말로 표출할 줄 알아야 한다. 번지르르한 말은 짜임새와 실질이 빈약하고 간절함이 부족한 경우다. 그런 말투는 대중의 열정을 동원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 정치에서 3김씨도 말을 연마하고 다듬었다. 그들은 ‘가능성의 예술’로 정치를 추구했다. 그 수단이 말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언어는 직설이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대표적인데,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표출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언어는 대칭과 대비다.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적 현실감각.’ 그 양면적 면모가 DJ가 꼽은 리더십의 자질이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언어 취향은 운치와 여운이다. ‘자의반(自意半) 타의반’ ‘정치는 허업(虛業)’이 던진 파장은 길고 미묘하다. 소이부답(笑而不答·미소 짓고 답하지 않는다)은 JP식 절제의 언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리더십 언어는 무엇이었나?

프랑스 알자스 지방 쉐넨버그에 남아있는 2차 대전의 마지노 요새. 마지노선의 수세적 평화 기지는 나치 독일의 공세적 상상력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 사진:박보균 대기자

프랑스 알자스 지방 쉐넨버그에 남아있는 2차 대전의 마지노 요새. 마지노선의 수세적 평화 기지는 나치 독일의 공세적 상상력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 사진:박보균 대기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의 말은 지금까지도 기억된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의 언어다. 그 구절의 오랜 생명력은 해방정국의 격렬한 좌우익 대결 속에 국민적 단합의 간절함과 시대적 열망을 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국정의 지향과 비전,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다. 대중의 바람을 선명하면서 친근하게 담고 표출해야 한다. ‘잘살아 보세’ ‘조국 근대화’ ‘싸우면서 일하자’ ‘수출 입국’ ‘새마을 운동’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그 언어들은 박정희의 작품이다. 박정희는 군인 이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 시대의 초등학교 교사는 미술·음악·작문을 포함해 모든 분야를 가르칠 수 있는 기량을 갖췄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비극의 주인공 같기도 하다.
 
“이승만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들의 역정 속에는 권력 유지의 욕심, 독재의 그늘, 퇴임 후 수모와 비극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나름대로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1945년 2차대전 종식과 함께 수많은 신생 독립국 지도자들은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했다. 어떻게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이룰 것인가의 문제다. 그 시절 미·소 냉전이 시작됐다. 자유민주주의 미국이냐, 공산주의 소련이냐의 선택 문제까지 거기에 더해졌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1950~60년대 중반까지 필리핀은 한국의 선망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필리핀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그 이유는 뭔가. 민주주의는 경제적 바탕이 없으면 무너진다. 그에 따른 정치적 폭풍과 경제난 속에 국민은 시달린다. 고대 중국 철학자 맹자는 ‘무항산(無恒産)·무항심(無恒心)’이라는 국가 운영의 순서를 제시했다. 경제적 바탕이 없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으로 ‘선(先) 경제발전, 후(後) 민주화’의 철학적 원리다. 한국은 박정희 리더십으로 산업화를 이루고 양김의 리더십은 민주화를 이끌었다. 386 운동권의 민주화투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매력은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에 있다. 100여 신생국 중 유일한 성공 모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공적과 과오가 있다. 공이 큰 사람이 있고 과가 두드러진 지도자가 있다. 그중 공적은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과오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는 게 강대국 리더십 문화의 지혜다. 미국의 경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관·기록관·도서관이 세워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통치유산을 ‘공칠(功七) 과삼(過三)’으로 접근한다.”
 
정치에서 ‘결정적 순간’은 ‘과정’과 어떤 관계인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축적의 단계가 필요하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을 낚아채는 통찰과 결단이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이다.”
 
기자로서 ‘좋은 리더십, 유능한 권력’을 추적하고 발굴했다.
 
“내가 정치부 기자를 오래 했는데, 한국 사회에선 정치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정치인들이 아마추어적 관점으로 프로의 세계까지 간섭한다. 주자학 명분론의 잔재 때문이며,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정치문화의 부정적 산물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좋은 리더십, 유능한 권력이 필수적이다.”
 
박 대기자의 글들을 보면 독서량이 매우 많아야 쓸 수 있는 글이다.
 
“기자의 지적 섭취는 현장취재와 사람을 통해 아는 것이 70%, 책을 통해 아는 것 30%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뷰가 중요하다. 유능한 기자가 되려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 그 사람의 지식·경륜을 들으면서 지식을 쌓는 거다.”
 
 

한국이 핵개발 의지를 표출하는 순간 핵 억지 효과가 생긴다

대일(對日) 정책에 대해 박보균 대기자는 ’비분강개 대신 지일(知日)·용일(用日)·극일(克日)로 가야 한다“며 ’박정희·김대중·김종필은 일본을 알았다“고 했다.

대일(對日) 정책에 대해 박보균 대기자는 ’비분강개 대신 지일(知日)·용일(用日)·극일(克日)로 가야 한다“며 ’박정희·김대중·김종필은 일본을 알았다“고 했다.

이번 책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두 담론이 대비되면서 펼쳐지고 있다.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연재해 온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는 전쟁과 평화, 분단 극복의 모델을 찾아다녔다. 미국의 내전(內戰)인 남북전쟁, 스페인 내전,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추적했다. 스페인 내전(1936~39년)은 20세기 모든 이념이 출동한 결전장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전쟁과 평화의 관계를 서사시적으로 담고 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분단된 미국을 어떻게 재통합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룰 것이냐를 고민했다. 링컨 리더십의 외양은 다면적이다. 관용과 통합의 지도자였지만 전쟁 수행은 냉혹했다. 전쟁 4년 동안 남군·북군을 합친 전사자가 62만 명이다. 그 참혹한 죽음의 무게는 20세기 미군 전사자(1·2차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 숫자의 합계보다 많다. 유혈이 넘쳐나자 북부에도 협상 평화론이 팽배했다. 그 때문에 링컨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링컨은 협상 평화론을 거부했다. 링컨은 협상과 타협으로 얻은 평화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다고 여겼다. 미국 연방에서 이탈한 반역의 남부를 응징해 항복을 받아내야 ‘정의로운 평화’가 찾아온다는 게 링컨의 신념이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것처럼 링컨의 북군은 남부의 심장부 애틀랜타에 불을 질러 파괴한다. 초토화 작전 장면처럼 링컨은 모질게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남부가 항복한 순간, 거대한 전환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링컨은 남부의 정치 지도자를 사면하고 남군의 장군들을 용서한다. 포용과 통합의 위대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전범 재판 없이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는 종전후 대학 총장까지 지냈다. 정의로운 평화의 또다른 기반은 관용이다.
 
진정한 평화는 염원과 갈구로 오지 않는다. 구걸하는 평화는 굴욕적이고 망가지게 돼 있다. 1938년 뮌헨회담에서 영국 총리 체임벌린의 유화(宥和)정책은 히틀러의 속임수에 당한다. 마키아벨리의 지적대로 지도자는 경멸당하거나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체임벌린은 얕잡아 보임으로써 히틀러의 야욕을 키워줬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링컨과 체임벌린의 리더십 사례를 통해 참고하고 배워야 한다.”
 
이번 신간에 나오는 드골 대통령이 핵개발에 집착한 이유가 흥미롭다. 한국도 핵무기를 만들어야 하나?
 
“북한의 첫 핵실험은 2006년 10월 9일이다. 나는 그때부터 일관되게 북한이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글에 쓰고 말해 왔다. 6자회담은 북핵 해결의 협상 무대가 아니며, 중국의 영향력만 키운다고 비판해 왔다. 많은 학자 언론인이 협상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나의 시각은 달랐다. 그런 확신은 황장엽 선생 인터뷰에서 힌트도 얻었지만 핵무기와 리더십, 인간 심성과의 관계를 따져보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예전에 보릿고개 때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한테 보리를 한 말씩 얻어서 춘궁기를 넘는다. 부자들은 그저 힘없고 가난한 농부한테 뒤통수를 한 대 치면서 양식을 준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힘을 쓰는 깡패에 대한 부자들의 태도는 다르다. 무시하지 않고 격려하며 양식을 준다. 핵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핵을 가진 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강대국이 함부로 대접하지 않는다. 나는 핵무기가 절대반지, 신의 한 수라고 표현했다. 1970년대 대통령 박정희가 자주국방의 신의 한 수를 가지려고 했지만 미국의 감시와 방해로 실패했다. 그 40년 뒤에 북한은 핵무장국이 됐다. 남북한 체제 경쟁은 북한이 절대반지를 낌으로써 새롭게 시작됐다.
 
드골의 핵무장 집념은 집요했다. 그는 ‘핵무기가 없는 나라는 진정한 독립국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소련의 핵보복 위협을 무릅쓰고도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국의 견제를 이겨냈다.
 
핵은 절대무기다.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북한 핵문제를 국민 다수가 강 건너 불구경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정신상태부터 바꿔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북한 핵을 미국에만 맡기는 것은 비겁한 리더십이다. 한국은 핵무기 개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실제로 개발하느냐 보유하느냐는 나중 문제다. 한국이 그런 의지를 표출하는 순간 핵 억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 1830~1859)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가 왜 중요한가?
 
“2014년 1월 중앙일보에 ‘요시다 쇼인의 그림자··· 아베 역사 도발에 어른거린다’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2.5개 면 실었다. 그것이 종합지에서 요시다 쇼인을 본격 소개하는 최초의 기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덕분에 한 달 뒤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초청받았다. 그 자리에서 “메이지유신, 요시다 쇼인을 알아야 21세기 일본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 출발점은 지피지기(知彼知己)다. 하지만 우리 정계와 학계의 대부분은 비분강개(悲憤慷慨)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런 흐름은 더욱 강해졌다. 비분강개 대신 지일(知日)과 용일(用日), 극일(克日)로 가야 한다. 1960~70년대 박정희와 김종필, 그리고 김대중은 일본을 알았다. 그 바탕에서 정교함을 갖춘 대일외교로 나아갔다.”
 
 
글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whanyung@joongang.co.kr /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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