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에 세는 나이로 여든이 되는 배우 박정자는 자신의 연극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1인극을 내달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달 6~16일 ‘노래처럼 말해줘’ 무대
9살 때 연극 ‘원술랑’ 보고 전율
대학 중퇴, 배우된 뒤 한 해도 안 쉬어
팔순엔 ‘19 그리고 80’ 7번째 공연
- 58년 동안 공연한 에너지 원천은.
- “고지식하게 연극만 해왔다.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게 똑똑한 것만 세상 잘 사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마라톤 경기에서 마지막 주자한테 박수를 보내는 것 있잖나. 완주했다는 것 때문에.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 일 년에 한 편 이상 공연을 했는데.
- “연극 공연은 단 몇주에 끝나도 준비에만 석 달이 걸린다. 나는 무대 위에 나가지만 그 뒤에 제작을 맡은 사람들, 또 스태프들 다 적자를 예상하면서도 몇십년씩 막을 올린다. 이 일을 왜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 그런데도 그 일을 한 이유는.
- “연극이 아니면 박정자라는 이름 석 자도,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이름값 하노라고 했다. 그냥 박정자가 되기 위해서. 참 이상하다. 연극을 안 할 때는 거울 보기가 싫다. 내가 정말 보잘것없이 초라하고 끔찍하다. 하지만 공연 전 분장실에서 거울을 딱 들여다보면 거기 진짜 내가, 박정자가 있는 거다. 그 외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든 적이 없다. 공연이 없을 때는 지옥이다. 지옥.”
- 58년 전 이화여대 문리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배우의 길을 택했다. 20대의 박정자는 학교보다 무대가 더 간절했던 것일까.
- “그런 철까진 안 들었고, 그래도 당시엔 결혼보다도 더 힘든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방송국에 성우로 꼭 들어가고 싶었는데 대학생이라 안된다고 하니까. 어떤 게 내 인생에, 앞으로의 삶에 더 유용할까 생각했다. 그때는 밀고 나가는 때였다.”
- 58년간 쉼 없이 무대에 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 “희생이 없으면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아이가 둘인데, 둘 다 임신 막달에도 공연했다. 첫 아이 땐 최인훈의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 온달 어머니 역을 맡았다. 평강공주가 나타나면 한 10분 동안 엎드려 절을 해야 했는데, 아이가 꼭 목구멍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웃음). 둘째 땐 정신병동의 환자 역할을 했다. 나는 그냥 연극을 하는 애미였다.”
- 인생이 무대에서 흘러간 셈이다.
- “시어머님과 한 집에 살았다. 극단 ‘산울림’과 공연 중이었는데, 아침에 어머님이 마루에 앉아계신 걸 보고 나와 공연을 시작하려는 직전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연은 미룰 순 없지 않나. 정신없이 공연했다. 그 정도니까…. 나는 공연 안 하면 우울하다. 다들 쉬라고 하는데 관속에나 들어가 쉴 것 같다.”
- TV 등 방송 출연은 통 없었다.
- “TV는 천재들이 하는 건데 나는 천재가 아니다. TV에 나가면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겠지만 나는 못하겠더라. 드라마도 몇 번 하다 내려놨다. 내 인생에서 TV는 없다.”
그는 “시청률이 딱딱 나와야 하는 TV는 목숨이 열 개 있어도 모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완전히 다른 별”이라며 자신은 “망해도 좋아서 하는 연극의 세계에 딱 들어가서 안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1950년 서울시청 근처 부민관에서 ‘원술랑’을 봤다. 꿈속 지옥 장면에서 배우들이 까만 옷을 입었는데, 조명이 비치고 갈비뼈에, 진짜 해골들 같았다.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한다.” 열 살도 되기 전 연극에서 전율을 느꼈다는 그의 얘기다.
- 데뷔 무대는.
- “대학교에 붙은 그리스 비극 ‘페드라’의 오디션 공고를 보고 찾아갔다. 내 생각엔 내가 주인공을 할 것 같았다. 이미 프로라고 생각해서 오디션 때도 죽으라고 주인공 대사만 했다. 그런데 오디션 결과를 보니 가정과 언니가 페드라를 하고 나는 시녀 역이었다. 그때 내가 ‘이따위 시녀는 안 해’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 나이 들고, 캐릭터가 강한 배역을 많이 맡았는데.
- “20대, 30대 때 머리에 흰 칠하고 얼굴에 주름살 그리면서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그래도 난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 빛나던 주인공들은 다 어딜 갔느냐고. 그런 시간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세는 나이로 여든이 되는 박정자는 다음 달 무대에서 “여든의 연극배우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라는 대사를 읊는다. “정말 많다. 내년에 해야 할 작품이 두 개다. ‘19 그리고 80’이라는 작품은 2003년부터 여섯 번 했는데 내년에 또 한다. 사랑을 통해 19세 청년 해롤드를 우뚝 서게 하는 80세 모드를 보여주며 많은 사람이 모드처럼 되길 원한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할머니 역할도 한다.”
-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 “나는 예술이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중요한 건 감동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주는 것. 그걸 위해서 계속 일해야지. 내 80은 굉장히 화려할 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