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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에 조롱당했던 추사의 글씨···중국선 30만명이 몰렸다

추사 김정희가 쓴 '계산무진'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쓴 '계산무진'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굵고 단조롭게 느껴지는가 하면, 또 구불구불하고 길게 흘러내리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보면 느끼는 첫 인상이다. 미술계에선 높게 평가받는 추사의 글씨라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땐 한석봉이 쓴 ‘예쁜’ 서체가 더 빛나보일 법하다.
 
현대인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사대부들의 비난과 조롱에 시달린 추사는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교가 좋고 나쁨을 따지지 마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하니 당대에도 파격성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던 모양이다. 
 
추사 김정희 초상 [중앙포토]

추사 김정희 초상 [중앙포토]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는 이런 추사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무대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동명의 전시전의 귀국전 형식이다. 중국에서 열린 전시전은 3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다만 앞선 전시회가 추사와 중국 석학들의 교유와 수작들을 소개하는 데 무게를 뒀다면 이번 전시전은 추사의 ‘괴(怪)의 미학(美學)’과 현대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전시전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 현대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김종영, 윤형근 등 추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제작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추사 전시전을 찾은 중국인 관객 [사진 중국미술관]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추사 전시전을 찾은 중국인 관객 [사진 중국미술관]

추사의 작품이 현대미술에 영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이동국 큐레이터는 “추사의 예술정신은 현대의 추상 표현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서구에서 현대와 이전 미술을 구분하는 지점 중 하나가 미(美)와 추(醜)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라며 “추사 역시 정(正)과 괴(怪)에 대한 개념을 전복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추사 스스로 이것은 서(書)가 아니라며 ‘비서(非書)’를 선언했다. 기존 동아시아에서 바라보는 서(書)에 대한 관념을 뒤집은 것”이라며 “서양 현대미술이 점, 선, 면이라면 추사의 세계는 점, 획, 면이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추사 김정희가 쓴 '칠불게첩'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쓴 '칠불게첩'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그렇다면 추사체의 독특한 필체는 어디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그것은 조선 최초의 고고학자였던 추사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탁본을 즐겼던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의 정체를 처음으로 밝힌 학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고고학자적인 면모는 중국 청나라에서 발흥했던 고증학의 영향이다. 20대 중반 부친을 따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던 추사는 청나라에서 꽃피웠던 고증학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고증학은 성리학과 달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보다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우선시하는 학풍으로 문헌학이나 언어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탁본 역시 고증학의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널리 유행했던 분야다.
 
추사 김정희가 쓴 '도덕신선'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쓴 '도덕신선' [사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고증학에 빠졌던 추사는 탁본 등을 통해 한나라 시대에 쓰인 예서체에 크게 주목했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추사가 탐구했던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글자도 예서체에서 행서체로 바뀌는 과도기의 필체라고 한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한나라는 종이가 발명되면서 기존에 칼이나 도구로 찍거나 새기던 글씨에서 붓으로 쓰는 글씨로 본격적으로 전환된 시대”라며 “추사는 서체의 시작점이었던 예서체를 통해 새로운 예술 경지로 나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치 피카소가 아프리카 예술품의 원시성에서 영감을 얻어 큐비즘을 만든 것처럼 추사 역시 서체의 기원을 통해 미추(美醜)를 넘어선 자신의 정신세계를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을 지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전은 3월 15일까지 열린다. 또 2월 13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추사국제학술포럼이 열려 한ㆍ중 학자들이 추사의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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