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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덕 할머니, 日미쓰비시와 면담···강제징용 판결 이후 처음

미쓰비시 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미쓰비시 중공업 간의 면담이 성사됐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피고 기업이 원고 당사자와의 면담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원고당사자 면담 처음
양금덕 할머니와 40분간 "진지하게 청취"
미쓰비시 앞 '금요행동' 500회 집회

17일 양금덕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공동대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상임대표 등은 도쿄 마루노우치(丸の内)에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를 찾아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이행하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면담은 약 40분 간 진행됐다.
 
미쓰비시가 피해 당사자인 양 할머니와 면담에 나선 것은 2010년 7월 이후 약 9년 반 만이다. 다카하시 공동대표는 “10년 전 화해 교섭을 담당했던 직원이 내려와 예정된 시간을 넘어 면담을 했다”면서 “(피해자와 개별 교섭에 응하지 말라는) 아베 정부의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미쓰비시 측이 직접 면담에 나선 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왼쪽)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가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 본사에 요청서를 전달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왼쪽)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가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 본사에 요청서를 전달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 측에 “미쓰비시에서 열심히 비행기를 만들었고 다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죽기 전에 미쓰비시 측의 사죄와 미불임금을 빨리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은 메모를 해가면서 양 할머니의 발언을 진지하게 청취했다고 다카하시 공동대표는 설명했다.
  
다카하시 공동대표는 “면담이 성사됐다고 해서 앞으로의 협의를 낙관할 수는 없지만 만나는 것과 만나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오늘 면담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선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약칭: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금요행동’ 500회 집회가 열렸다. 2007년 7월부터 매주 금요일 계속된 집회가 500회를 맞은 것이다.
 
500회를 기념해 양금덕 할머니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 일본 히로시마ㆍ나가사키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관계자 등 60여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 주축이 된 '금요행동' 500회 집회가 열렸다. 윤설영 특파원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 주축이 된 '금요행동' 500회 집회가 열렸다. 윤설영 특파원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가운데)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관계자들이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금요행동' 500회 집회를 맞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가운데)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관계자들이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금요행동' 500회 집회를 맞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이에 앞서 이들은 도쿄 치요다(千代田)구 외무성을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光) 외무대신 앞으로 “당사자의 자발적 해결을 존중하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금요행동’은 피해자들이 나고야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뒤 2007년 7월 20일부터 시작됐다.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15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와 도쿄 시나가와(品川)역에서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2010년엔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서명자 수가 13만 5000명을 넘었고, 같은 해 6월 삼보일배로 미쓰비시 중공업 주주총회장을 찾아갔다.
 
시민들의 끈질긴 압력 끝에 미쓰비시 중공업은 2010년 7월, 드디어 피해자들과의 화해 교섭에 나섰다. 이 기간 동안 ‘금요행동’은 중단됐고, 약 2년 간 16번에 걸쳐 화해를 위한 교섭이 이뤄졌다. 그러나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2012년 8월 10일 146회 ‘금요행동’이 재개됐다.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빨간 옷)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관계자들이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 요청서를 전달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빨간 옷) 할머니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관계자들이 17일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 요청서를 전달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다카하시 공동대표는 “금요행동이 없었더라면 미쓰비시 측과 협의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한국에서의 재판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표가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끝은 있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집회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1월 29일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5명에게 미쓰비시 중공업이 1인당 1억~1억 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않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은 미쓰비시 소유의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 등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한 상황이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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