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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트럼프 자만심에 북한·이란 비핵화 두마리 토끼 다 놓쳐

중동 정세불안 불러온 북한 비핵화 실패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4월 테헤란에서 국가 핵기술의 날 행사에 참석한 뒤 우라늄 농축장치인 원심분리기를 둘러 보고 있다. 이란은 핵합의에 따라 1만9000개의 원심분리기를 2015년부터 10년 동안 1/3로 감축할 계획이었다. [EPA=연합뉴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4월 테헤란에서 국가 핵기술의 날 행사에 참석한 뒤 우라늄 농축장치인 원심분리기를 둘러 보고 있다. 이란은 핵합의에 따라 1만9000개의 원심분리기를 2015년부터 10년 동안 1/3로 감축할 계획이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만심이 이란과 북한 비핵화를 모두 놓치게 했다. 초심을 지키지 못한 그의 정책은 북한에 핵무장 기회를 줬고 중동의 정세 불안까지 불러왔다. 이란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거의 쌍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룬 이란 핵합의(JCPOA: 공동포괄행동계획)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란 핵무장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 없는 수준 미달의 합의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던 중 북한이 2017년 6차 핵실험에 성공하고 탄도미사일을 마구 쏘아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옵션을 실행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중재로 북한과 극적으로 비핵화 협상에 들어갔다. 북한 비핵화를 미궁에 빠뜨린 최대 실수의 시작이다.
  

미, 북 비핵화 위해 이란 합의 탈퇴
북·미 핵협상 끄는 사이 북 핵무장
트럼프, 대북정보 매일에서 주단위
대북 군사옵션보다 고사작전 우선

2018년 5월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싱가포르 정상회담(6월 12일)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미봉책이었던 이란 핵합의를 제기하며 같은 수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의 비난에도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했다(5월 8일). 북한 핵을 ‘제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나쁜 딜보다 노딜이 낫다’는 그의 평소 지론대로다. 세종연구소 정은숙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최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과 (북한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미국이 탈퇴한 이란 핵합의 문제점은 이란 우라늄 농축시설 감축과 일몰조항, 탄도미사일이었다. ▶이란이 보유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1만9000개를 10년 동안 3분의 1로 줄이고 ▶15년간은 우라늄을 농축도 3.67%(원전용 핵연료 수준) 이하로만 보유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10년 뒤엔 일몰조항에 의해 이란의 핵동결이 사실상 해제된다. 이란의 탄도미사일에 대해선 아무런 제한이 없었던 것도 맹점이었다. 미국이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해야 할 상황에서 이란 핵합의는 분명 나쁜 걸림돌이었다.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트럼프는 핵합의 탈퇴에 앞서 이란에 경제제재부터 가했다. 그러자 이란의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2016년 12.5%였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미국 제재가 시작된 2017년엔 3.7%로, 2018년 -4.8%, 2019년 -9.5%까지 떨어졌다. 탈퇴 직후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란에 새로운 12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이란이 ▶핵무기 프로그램 전체 보고와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 ▶농축 중단과 플루토늄 재처리 추구 중단 ▶영토 전역에 무제한 사찰 ▶탄도미사일 확산 종료 등이다. 미국은 같은 비핵화 조건을 북·미회담 초기에 북한에도 요구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로 항공모함을 한반도에 집결시키며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극도로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트럼프의 막가파식 용감한 행동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북한을 더 몰아치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미국을 상대한 북한의 노회한 혼란전술에 당했다. 그러다 18개월을 끌었다. 그 사이 북한은 밖으론 협상하면서 젖먹은 힘까지 모아 핵무장 마지막 단계에 몰두했다. 핵탄두를 최대 60개 생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용 미사일(SLBM)은 고도화했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극했다. 거만해진 북한은 대남 비난 강도를 높였다. 지난 연말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영변 핵시설과 대북제재 완화를 바꾸지 않고, 정면돌파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협상안 ‘영변+α’는 날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기술’을 운운하며 자만심에 빠진 사이 북한과 이란의 비핵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위기에 온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북한 비핵화를 강공으로 계속 밀어붙였어야 했다. 성공했더라면 북한 비핵화 영수증을 다시 이란에 내밀어 새로운 이란 핵합의까지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수포가 됐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일정에 바빠졌다. 그의 첫 캠페인은 지난 9일 오하이오에서 시작했다. 취임 초기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매일 받던 북한 정보보고는 뜸해졌다. 최근 그의 공식일정(factba.se/topic/calendar)을 보면 정보보고는 지난해 11월 5회, 12월 3회로 대폭 줄었다. 올 1월엔 이란 사태 때문인지 보름 동안 5회다.
 
비핵화

비핵화

앞으로 극적인 계기가 없는 한 북·미 3차 정상회담은 기약이 없다. 주한 미 대리대사를 지낸 에반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15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국가전략연구원·브루킹스연구소 세미나에서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미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중대한 정책 실패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실패에 대해 리비어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동맹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적대국들을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여기엔 ‘평화’라는 솔깃한 용어로 트럼프 의지를 약화시킨 문 대통령의 책임도 없지 않다. 리비어 연구원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북한에 대한 대대적인 정책수정과 함께 ‘거대한(massive)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압박 방법은 ▶한·미연합훈련 재개 ▶미 전략적 군사자산을 한국에 추가 배치 ▶금융과 외화 공급 차단 ▶해상 차단 ▶북한 항공기와 선박 통제 등 군사대비와 고사작전이다.
 
대북제재가 통하는 이유는 북한의 달러가 바닥이어서다. 한양대 장형수 교수(경제금융대)에 따르면 북한의 2018년 말 외환보유고는 25억∼58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북제재로 2020년 말엔 최대 20억 달러가 남고 내년엔 고갈된다. 더구나 지난 연말로 외화벌이 노동자가 거의 귀국했고, 유엔은 북한의 암호화폐 탈취와 돈세탁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남은 외화벌이 창구는 북·중 밀무역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중국을 압박해 북한에 달러가 흘러가지 않게 막아야 한다. 북핵으로 동북아 핵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거나 미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는 중국에 큰 손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원장인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그제 세미나에서 “동북아 핵도미노 현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금강산 개별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으로 남북관계 속도전에 매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지난 15일 대북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미국에 금강산 논의를 강행하겠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 희망과 남북관계 개선의 아쉬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젠 티끌만 한 희망보다 리비어 연구원 말처럼 거대한 대북 압박과 북핵 대응에 서둘러야 할 때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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