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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정을 중계한다, 역전마라톤 하코네 에키덴

기자
양은심 사진 양은심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8)

미우라 시온이라는 작가가 쓴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일본의 ‘하코네 에키덴(箱根駅伝)’을 다룬 소설이다.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도 2007년에 번역 출판되었다고 한다. 하코네 에키덴의 정식명칭은 도쿄하코네구간왕복 대학역전경주(東京箱根間往復大学駅伝競走)다. 역과 역을 잇는 이어달리기 마라톤이다.
 
매해 1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열린다. 1920년에 시작하여 2020년 96회를 맞이했다. 10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일본의 정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10명의 선수가 타스키(襷/어깨끈)를 메고 217.1㎞를 달린다. 도쿄에서 하코네까지 5구간 107.5㎞ 5명. 하코네에서 도쿄까지 5구간 109.6㎞ 5명. 왕복 10개 구간이다. 대학명이 새겨진 타스키를 무사히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다. 경찰 오토바이가 선도하고 길거리에는 역 주변에는 응원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 [사진 양은심]

길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 [사진 양은심]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를 읽은 후 나는 하고네 에키덴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방송이 뭐가 재미있냐고 채널을 돌리자고 했었던 내가 지금은 제일 열심히 본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날을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기에 쉬이 채널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상관이 없는 선수들이지만, 응원하면서 얻어지는 감동은 각별하다.
 
‘2020 하코네 에키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시드권(자동 출전권)을 획득한, 소카(創価)대학의 마지막 주자다. 타스키를 이어받은 그 선수는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선수는 많지만 모자를 쓰고 달리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피곤이 몰려오면 실 한 오라기조차 무겁게 느껴진다는데 저 선수는 왜 모자를 쓰고 있는 걸까. 시마즈 유다이(嶋津雄大) 선수. 이유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한 자외선이 시력을 방해하기 때문에 달릴 때는 꼭 모자를 쓴다고 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의 증상에는 야맹증도 있어서, 해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야외 훈련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기가 켜진 트랙이나 체육관 안을 달린다.
 
하얀 모자를 쓴 시마즈 유다이 선수.

하얀 모자를 쓴 시마즈 유다이 선수.

 
시마즈 선수는 말했다. “이런 저이지만 신기록을 세우고 팀 우승에도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거나, 한 걸음 내딛지 못해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마즈 선수는 13년 만에 10구간 신기록을 남겼다. 23㎞, 1시간 8분 40초. 이전기록을 19초나 앞당기는 대활약이었다.
 
대학 2학년인 그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달리는 문학도. 벌써 육상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 놓았다고 한다. 벌써 기대된다. 출판된다면 무조건 사 볼 것이다. 시마즈 유다이. 종합 우승한 대학의 유명 선수가 아닌, 9위 우승한 팀의 이 선수의 존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에키덴 출발 사진.

에키덴 출발 사진.

 
하코네 에키덴은 총 21팀이 출전한다. 10팀은 전년도 대회에서 10위 안에 들어 시드권을 얻은 대학, 10팀은 예선전을 통과한 대학. 마지막 한 팀은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한 대학의 선수 중 좋은 기록을 낸 선수로 구성되는 ‘관동대학연맹’팀이다. 연맹팀 선수들은 자기 대학의 유니폼을 입고 뛴다. 다음에는 꼭 대학팀으로 출전하리라 다짐하며….
 
지루한 경주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아나운서의 중계 실력이다. 출전 선수, 대학, 코스, 역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절묘하게 소개하며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에 끌어다 앉힌다.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손이 닿을 듯하면서도 멀기만 한 시드권!” 절묘하다. 탁, 무릎을 친다. 종합우승보다 더 치열한 것이 이 시드권 획득이 아닐까 싶다. 명문 팀이 10위 밖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무명 팀이 약진을 보이기도 한다.
 
소설 속의 한 구절이다. “승리의 형태는 다양하다. 참가자 중에 가장 좋은 기록을 세우는 것만이 승리는 아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승리의 형태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선수를 기다리는 골인 테잎.

선수를 기다리는 골인 테잎.

시마즈 유다이 선수 골인 모습.

시마즈 유다이 선수 골인 모습.

 
에키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구간 신기록. 구간 우승. 왕로 우승. 귀로 우승. 종합우승. 시드권 획득. 전년도보다 좋은 성적. 완주. 목표는 각양각색이다. 종합 우승팀의 눈물도,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그저 완주했을 뿐인’ 선수의 눈물도 아름답기만 하다.
 
문득, 2015년 100주년을 맞이한 일본 고교야구대회 ‘고시엔(甲子園)’ 생각이 났다. 나는 이 두 스포츠 대회를 보며 민간인들의 절실한 바람이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야구를 하고 싶다는 염원과 달리고 싶다는 염원. 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어른들의 염원. 절실함보다 더 강한 힘은 없지 싶다. 건강한 절실함이 그리운 시대이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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