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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가부장 깨고싶다" 페미 공부하는 50대 아저씨들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남편과 동갑인데, 시부모님은 제가 남편 이름을 부르는 걸 싫어하셨어요." (결혼 5년 차 유지은씨)

"남들이 '엄마가 집에 안 들어가냐'고 묻는데, 아빠가 아이 봐도 되잖아요." (결혼 3년 차 이예송씨)

 

<제19화> 페미니즘
엄마페미 모임, 책까지 발간
“비혼과 칼 겨누고 싶지 않아”
4050 남성들도 페미니즘 독서모임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 회원들이 결혼한 페미니스트로서 겪는 고충과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결혼한 여성이라면 한 번쯤 해본 생각 아닐까요.
 
여러분은 '페미니스트'란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짧은 머리의 20대 여성을 연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2015년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 중심엔 20대 여성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결혼한 페미니스트는 물론 페미니즘 책을 읽는 50대 아저씨도 있습니다. 페미니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건데요. 밀실팀이 이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엄마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 회원들의 모습. 왼쪽부터 은주씨, 이예송씨, 이성경씨, 유지은씨. 최연수기자

엄마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 회원들의 모습. 왼쪽부터 은주씨, 이예송씨, 이성경씨, 유지은씨. 최연수기자

“처음엔 페미니스트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부너미를 만든 계기를 묻자 이성경씨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약 3년 전만 하더라도 이씨 역시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이씨는 2017년『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주인공이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답니다. 남편과 한 직장을 다니다가,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다 결혼·출산 후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죠. 
 
책을 읽은 후 이씨는 “돌봄 노동에 전념하고 있는데,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외벌이 가정’으로 불리는 게 싫다”고 남편에게 털어놨다고 해요. 
 
이때 남편은 “당신이 페미니스트야 뭐야?”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물음에 이씨는 페미니즘이 도대체 뭔지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빨래하는 페미니즘』 등 관련 책을 읽었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자 같은 해 12월 부너미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페미니즘은 이혼사유', '페미니스트 남편은 극한직업'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부너미 회원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성·엄마로서 겪는 고민을 글로 엮어『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란 책을 출간했지요.
부너미에서 지난해 3월 출간한 책『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표지. 사진 민들레

부너미에서 지난해 3월 출간한 책『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표지. 사진 민들레

엄마들은 왜 부너미에 모였을까요. 출산 70일 후 합류한 이예송씨는 "육아를 하면서 '다른 엄마들은 잘하는데 왜 나만 힘들까'라는 물음이 들었다"며 "부너미에서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니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한 여성 모두 느끼는 불평등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기자가 만난 회원들은 그들의 지향을 "주변을 바꾸는 페미니즘”으로 정의하더군요. 예를 들어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다’는 표현,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나눠 부르는 관습을 바꾸고 싶다는 겁니다. 유지은씨는 “명절에 어느 집에 먼저 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라며 “‘이번에는 친정 먼저 다녀오려고 해요’라고 시어머니께 자연스럽게 양해를 구하고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은주씨는 “아이에게 요리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한다”며 “그런 모습 자연스러운 일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참고로 부너미 회원들은 서로 나이를 밝히지 않는데요. "나이에 따라 서열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해요.
 

“비혼과 기혼, 서로 적 아냐”

이성경씨가 지난해 12월 젠더토크콘섵 '영화로 보는 일상 속 젠더 이야기'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김지아 기자

이성경씨가 지난해 12월 젠더토크콘섵 '영화로 보는 일상 속 젠더 이야기'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김지아 기자

일부에선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비혼을 주장하기도 하죠. 기혼자인 부너미 회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은주씨는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야 공고한 가부장제를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를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비혼 페미니스트들과 우리가 서로 적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유씨는 "비혼을 주장하는 활동도 지지하고 응원한다. 기혼여성이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는 말도 틀리지 않는다"면서도 "주적은 생각이 다른 여성이 아닌, 가부장제 사회"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 '된장녀' 같은 혐오 발언이 나왔을 때 우리가 안일하게 대처한 면도 있다"며 "3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운동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도 했어요.
 
엄마들에게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씨는 페미니즘을 빨래 건조기에 비유했습니다. “빨래 건조기를 쓰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듯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을 자유롭고 편리하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50대 아저씨도 페미니즘 공부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독서모임 '남성페미니스트' 멤버들. 왼쪽부터 박창기씨, 신호승씨, 이정철씨(왼쪽부터). 박씨는 보수적인 직장 분위기탓에 얼굴공개를 거부하고 가명을 요구했다. 김지아 기자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독서모임 '남성페미니스트' 멤버들. 왼쪽부터 박창기씨, 신호승씨, 이정철씨(왼쪽부터). 박씨는 보수적인 직장 분위기탓에 얼굴공개를 거부하고 가명을 요구했다. 김지아 기자

“설거지하는 것만으로도 칭송받는 경험을 하고 ‘남자가 살기 편한 세상이구나’ 싶었어요.”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이끄는 신호승(54)씨의 말입니다. 신씨와 이정철(49)씨, 박창기(가명·56)씨. 이들은 현재 파주여성민우회의 독서 소모임 활동을 하는 세 명 중년 남성들입니다.
 
2016년부터 모임에 참여했는데, 계기는 각자 달랐습니다. 대학 재학 당시 '운동권'이었던 신씨는 학생운동을 함께 한 여학생들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처음 들었답니다. 그는 “당시엔 페미니스트들이 날 배척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때 제대로 공부 못했다는 '부채의식'도 남았다. 여유가 생긴 지금 다시 공부해보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박씨는 직장에서 겪은 일을 소개하더군요. 여성의 날 어느 남자직원이 "남성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여직원이 "어차피 여성의 날 빼고 모두 남성의 날 아니냐"라고 되묻더라는 거여요. 박씨는 "그때 깨달음을 얻어 페미니즘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씨는 “딸은 여전히 나를 '가부장 쩌는 아빠'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적인 행동을 일삼는 만큼 항상 공부해 내 안에 있는 ‘가부장성’을 돌아보려 한다”고도 하더군요.
 
지난해 이들은 ‘페미니즘 고전 깨기’를 주제로 책을 읽었는데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의 『여성과 공동체의 전복』 등을 함께 읽었습니다. 모임 이름은 ‘남성페미니스트’지만 여성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성 멤버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죠.
 

설날에 설거지하니 조카사위가…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는데요. 박씨는 “설날 집안에서 어른격인 내가 설거지했더니, 더 어린 조카사위들도 자연스럽게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고요. “서서 소변을 보면 주변에 튀어 가족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앉아서 소변을 보게 됐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집에서 요리는 주로 자신이 한다는 이씨는 “‘지배와 굴종’으로 이뤄진 군대 문화가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보니 그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심리적 해방감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중년 남성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일까요. 박씨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 고충을 그대로 겪을 수 없는 내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렵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요. “페미니즘이란 여성들이 억눌린 현실에 공감하고 같이 해결방법을 고민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신씨는 “페미니즘이 없는 가부장적인 시스템에선 20대 남성의 삶도 고되고 피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대들에게 여전히 페미니즘이 낯선 사회를 물려줘 미안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아·최연수·남궁민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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