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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20대 젊음 앗아간 석면 질환…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2008년 고2 때 왼쪽 폐에 기흉(氣胸·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차는 증상) 앓기 시작했고, 2010년엔 암 덩어리 3개가 있는 악성 중피종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석면 피해구제법 제정 10년
지난해 피해자 726명 ‘최다’
주택·학교 꾸준히 개량하지만
30년 후까지 피해 이어질 듯

지난달 27일 충남 아산에서 만난 이성진(28)씨는 지난 10년 동안 겪은 석면 피해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폐를 감싼 흉막 등에서 발생하는 악성 중피종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의해 나타나는 전형적인 질환이다.
 
이씨는 “집 근처에 석면 광산은 없지만, 어렸을 때 동네에 온통 슬레이트집들 많았고 거기서 놀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 3월 환경부에 석면 피해구제를 신청했고, 지원을 받았다. 암은 완치됐지만, 통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마약성 진통제를 끊은 뒤엔 통증이 심해졌다. 한창 배우고 일할 나이인 20대를 병과 싸우며 지내는 바람에 직장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한 그는 “매주 목요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자원봉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1일 광주 북구의 한 중학교에서 광주 북구청 환경과 직원들이 석면 해체작업 기존법령준수 여부를 지도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21일 광주 북구의 한 중학교에서 광주 북구청 환경과 직원들이 석면 해체작업 기존법령준수 여부를 지도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 국내에서 석면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2010년 3월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됐고, 10년이 흘렀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석면피해구제 직업과 무관하게 석면에 노출돼 건강을 해친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구제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석면 관련 직업 종사자는 산업재해 보상을 받는다. 원발성 악성 중피종이나 원발성 폐암, 석면폐증, 미만성 흉막비후 등의 질환자가 대상이다.
 
석면 피해 인정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석면 피해 인정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석면피해구제를 담당하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4137명(피해자 3314명과 사망자 823명)이 피해를 인정받았다. 지난해까지 피해자 가운데서 669명은 사망했다. 이들에게는 지난해까지 총 819억 원이 의료비·생활급여·장례비·위로금 등으로 지급됐다. 피해구제기금은 정부출연금과 기업 분담금 등으로 매년 150억 원가량 조성된다.
 
시·도별 석면피해 인정자 분포. 그래픽=신재민 기자

시·도별 석면피해 인정자 분포. 그래픽=신재민 기자

4137명을 시·도별로 보면 충남이 1590명(38%)으로 가장 많다. 전국 석면 폐광산 38곳 중 25곳이 충남에 분포한다. 경기도가 629명(15%)으로 그 뒤를 이었다. 부산은 598명(14%)으로 서울(468명,11%)보다 많은데, 1969~90년 석면제품 생산 공장이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서 운영됐다. 연도별로는 2011년 459명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는 감소하다가 다시 늘어나 지난해에는 726명이 인정받아 가장 많았다.
 
지난해 7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가 연 전국 석면피해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가 연 전국 석면피해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이 85.5%를 차지했다. 악성 중피종에 걸린 20대 11명(0.2%)도 피해를 인정받았다. 2014년에 신청했던 A씨는 당시 겨우 20세였고, 2016년에 인정을 받은 B씨와 C씨도 당시 22~23세였다. D씨는 24세 때 악성 중피종으로 숨졌다.
 
국내에서 석면 수입·사용이 금지된 것은 2009년이고, 2015년부터는 석면이 소량 포함된 제품까지도 사용이 금지됐다. 그런데도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환경산업기술원 석면피해구제팀 이철호 선임연구원은 “석면의 경우 노출된 후 발병까지 보통 20~30년, 길게는 30~50년의 잠복기를 거친다”며 “20~30대 피해자의 경우 질환으로 봐서는 석면 탓이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노출 경로는 확인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20대의 경우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학교나 석고보드 등을 건축 자재로 사용한 학교·학원·다중이용시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국에 건축물 슬레이트는 총 149만 동으로 주택은 73만 동(50.8%)이다. 환경부는 가구당 168만 원(지자체 지원 제외)씩 지원하며 슬레이트 지붕을 개량하고 있으나, 연간 2만~3만 채 수준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학교 석면 철거 현장 모니터링에서 수거한 석면이 포함된 폐건축자재 조각들.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학교 석면 철거 현장 모니터링에서 수거한 석면이 포함된 폐건축자재 조각들.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학교 석면 제거도 중요한 과제다. 전국 2만808개 학교 중 1만2200곳에 석면이 사용됐다. 정부는 2027년까지 전국 모든 학교에서 석면을 제거할 계획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전국 1211개 학교에서 석면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철거가 오히려 학생들이 석면에 노출될 위험만 키울 수도 있다. 한정희 전국 학교 석면 학부모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학교 석면 철거 현장에 가보면 석면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하는 음압기나 비닐 설치가 제대로 안 되는 등 고용노동부나 교육부 매뉴얼을 안 지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환경부의 구제 급여금은 산재보험 지원의 10~20%로 턱없이 낮다”며 “일터에서 석면에 노출된 것인데도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자들이 환경 노출 피해자로 구제 신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2030년대는 물론 2040년대까지도 피해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며 “향후 20년은 계속 지켜봐야 피해자 숫자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열재로, 건축 자재로 편리하게 사용했던 석면이었지만, 우리가 몰랐던 해악이 긴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우리 주변에 또 다른 석면이 도사리고 있지나 않은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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