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용균 막자 〈하〉
사회 초년생들 다치고 죽는데
정부 감시 능력은 형편없어
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 근로자
한국 4만4258명, 독일 8507명
스트레스, 상사·고객 갑질 따른 질환 확산
1년 동안 여행을 다니며 안정을 취한 박씨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극심한 비효율 행정, 직업의식 부재, 무책임성 등을 경험하며 나의 미래를 맡길 곳은 아니다”는 생각에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현 직장에 들어와 한 달 만에 쓰러졌다. 박씨는 “회사에선 산재 요양을 충분히 하고 복귀하라며 배려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산업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산재의 유형도 다변화하고 있다. 스트레스, 상사나 직원 또는 고객의 갑질에 따른 질환이 확산하고 있다.

급증하는 심혈관 질환 산재. 그래픽=신재민 기자
신입사원은 특히 취약하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0월 뇌경색 진단을 받은 A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그는 2017년 10월 입사 5개월 만에 회사 숙소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A씨의 근무상황은 심각했다. 납품일에 맞추려고 야근과 휴일 근무를 반복한 데다 회사의 잡무도 도맡았다. 설계도 수정과 작성도 그의 몫이었다. 그 와중에 선배가 주관하는 회식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나 됐고, 다음 날 제대로 못 쉬고 출근했다. 소위 ‘신입 뺑뺑이’였던 셈이다.
2018년 재해자 가운데 근속기간 1년 미만인 근로자는 3만8557명으로 전체 재해자의 52%에 달했다.
앳된 사회 초년생들이 이렇게 많이 다치고 죽는데 정부의 감시 능력은 형편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 ‘규제개혁 보고서-한국 규제정책’을 통해 “다른 회원국에 비해 산업안전·보건 관련 규제 집행 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산업안전을 지도하고 감독할 사람이 없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수습에 나서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미연에 방지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OECD에 보고된 ‘규제 집행 인력(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 근로자 수’는 한국이 4만4258명(2015년 기준)이다. 영국(1만2221명), 독일(8507명)과 비교하면 근로감독관이 격무에 시달려 산재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될 지경이다.
공공부문은 산재의 또 다른 사각지대다. 지난해 5월 12일 이은장(32·충남 공주우체국 집배원)씨는 오후 9시가 넘어 퇴근해 쓰러지듯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밝혀졌다. 유족은 “집에서도 우편물을 정리할 정도로 일이 많아 힘들다고 했다”고 전했다. 30대 젊은 나이에도 감당하기 힘든 피로가 켜켜이 쌓였던 셈이다.
집배원 4년간 191명 숨져…위기의 공공부문

산재 절반이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휴가도 제대로 못 쓴다. 병가를 안 쓴 사람이 71.2%에 달할 정도로, 다쳐도 일터를 지킨다. 동료에게 업무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다. 정(情)을 나르다 정 떨어지는 근로환경에 결국 정을 떼고 세상을 등진 셈이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등에서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79명이다. 한 달에 7명가량이 정부 관할 기관에서 죽는 셈이다. 여기에 집배원을 포함한 공무원은 빠져 있다. 공공기관이 산업안전 감독 대상으로 포함된 것도 지난해 3월 들어서다. 이마저도 자율점검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산재 사망자가 지속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산업환경 후진국임을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공공부문이 더 강력한 제어로 산업안전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정용환·전익진·최현주·신진호·이병준 기자 wolsu@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