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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근 별세로 임재범·손지창 가족사 재조명…조카는 성 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방송계를 앞장서서 개척한 산 증인으로 불린 원로 아나운서 임택근씨가 11일 별세했다. 88세. [중앙포토]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방송계를 앞장서서 개척한 산 증인으로 불린 원로 아나운서 임택근씨가 11일 별세했다. 88세. [중앙포토]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라디오조차 귀하던 1950~60년대 동네 이장집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목소리가 있었다. 1956년 처음 중계된 호주 멜버른 올림픽 때 박진감 넘치는 말투로 우리 선수단 활약을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옮겼다. 66년 실향민 출신 김기수가 장충체육관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무적 복서 니노 벤베누티를 상대로 첫 세계챔피언(WBA 주니어미들급)을 따냈을 때 국민을 대신해 목청껏 환호했다.

1951년 방송에 입문, 최고 라디오 스타로
올림픽 중계 등 스포츠 캐스터로 맹활약
혼외자식 임재범·손지창이 빈소 지킬 듯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방송계를 앞장서서 개척한 산 증인, 흑백TV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린 원로 아나운서 임택근씨가 11일 별세했다. 88세. 12일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0월 심장 문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11월 뇌경색 진단을 받고 폐렴 등 합병증으로 투병했다.  
 
‘아나운서계의 전설’로 불린 그는 특히 스포츠 캐스터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로마‧도쿄‧멕시코 올림픽 등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한 임택근식 중계방송은 이국땅의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이런 추억에 힘입어 지난 2002년 한‧일 축구월드컵 때 개막전과 한국 대 폴란드전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당시 MBC라디오가 마련한 특별 중계 이벤트를 통해 만 70세의 임씨가 캐스터와 해설자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소리로 듣는 축구 경기'의 진수를 선보인 것. 당시 그는 “올드팬들한테 정말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아나운서 임택근(오른쪽)이 1966년 권투선수 김기수와 이탈리아 출신 벤베누티 간의 세계선수권 타이틀매치를 중계하는 모습. [중앙포토]

아나운서 임택근(오른쪽)이 1966년 권투선수 김기수와 이탈리아 출신 벤베누티 간의 세계선수권 타이틀매치를 중계하는 모습. [중앙포토]

 
1932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방송에 입문했다. 연희대학교(연세대 전신) 정치외교학과 1학년 재학 중에 중앙방송국(KBS 전신) 아나운서 모집 소식을 듣고 응시했다. 처음엔 재학생이라 안 된다고 했다가 그의 집념에 못 이겨 뽑아준 이가 노창성(1896~1955) 전시중앙방송국장이다. 노창성은 한국 첫 패션디자이너로 불리는 노라 노(노명자)의 부친이다.  
 

4.19 시위대 "사장 말고 임택근 나와라"

쩌렁쩌렁한 미성(美聲)에 수려한 외모, 아나운서만이 천직이라는 집념과 투지에 힘입어 20대 중반에 이미 당대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스무고개''노래 자랑''퀴즈 열차' 등 숱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가 방송국에서 당직하던 날은 시내 유명 요정 주인들이 앞다퉈 야식을 배달시켰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1960년 4·19 때 방송국 앞으로 몰려온 대학생 시위대가 면담을 요구한 사람이 방송국 사장이 아니라 임택근 아나운서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1964년 문화방송(현 MBC)으로 이적하고 69년에는 최초의 아침 토크쇼 '임택근 모닝쇼'를 맡았다. 국내 TV 프로그램 사상 MC 이름이 들어간 첫 사례였다. 사실상 MBC를 키운 게 '임택근 파워'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71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다시 방송가로 복귀해 80년 문화방송 및 경향신문사 사장직무대행 등을 지냈다.  
1969년 11월 17일 첫 전파를 탔던 '임택근 모닝쇼'의 한 장면. [중앙포토]

1969년 11월 17일 첫 전파를 탔던 '임택근 모닝쇼'의 한 장면. [중앙포토]

 
퇴사 후에는 개인 사업을 했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대한고용보험 상무 등을 지냈다. 연세대 동창회 상근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던 2008년 가벼운 버스 낙상사고를 당했다. 수술 후 하반신을 못 쓰게 돼 의료사고 논란이 일었지만 생전 인터뷰에서 “동문 병원(세브란스)를 두고 의료사고 운운하겠느냐. 그냥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92년엔 자신의 방송인생 40년과 한국 방송의 역사를 회고한 『방송에 꿈을 싣고 보람을 싣고』(문학사상사)를 펴냈다. 책 출간을 맞아 방송에 출연해선 이승만 대통령 시절 당시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준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월남(베트남) 방문 후 귀국할 때 활주로에 '대통령 비행기가 굴러들어오고 있습니다' 해야 할 것을 '지금 대통령이 굴러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해버렸다. 나중에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 아니냐'며 질책당하고 시말서를 썼다."
 
90년대 이후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져가던 그가 다시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다소 복잡한 가족사가 알려지면서다. 이는 탤런트 손지창씨가 2001년 언론을 통해 “1970년대 최고 아나운서로 명성을 떨쳤던 임택근씨가 나의 생부이며, 가수 임재범씨가 이복 형”이라고 밝히면서 수면에 떠올랐다. 
 
고인이 혼외로 둔 두 번째 가정에서 난 아들이 임재범, 세 번째 부인과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 손지창이다. 고인은 이들의 성장 과정을 외면하고 호적에 올리는 것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2011년 MBC 음악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다시금 인기를 얻은 임재범이 굴곡진 성장 과정을 털어놓으면서 이들 삼부자 관계가 새삼 조명됐다.  
 

전 주한 미 대사 성 김의 외삼촌이기도  

고인은 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한국명 김성용)의 외삼촌이다. 성 김의 아버지이자 전 중앙정보부 요원인 김기완이 그의 자형이 된다. 동생 임양근도 1967년 동양방송 아나운서 4기로 1970년대 형과 같이 아나운서로 활동한 적이 있다. 
 
2008년 그에 대한 책 『아나운서 임택근』을 펴낸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방송인 첫 팬덤을 몰고다녔을 정도로 한국방송사의 기린아 같은 분”이라며 “사고 후 휠체어 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식사 약속 땐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끝나면 사람들 다 보낸 후에야 움직였다. 그만큼 자존심과 자기 관리가 강했다”고 돌아봤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예정)이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회다. 상주는 임재범이다. 배우 손지창과 그의 부인인 배우 오연수도 함께 빈소를 지킬 것으로 알려졌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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