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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상가가 아니다, 공연 보는 문화공간이다···51살 낙원상가의 부활 비결

2층 악기매장.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2층 악기매장.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기타와 피아노 등 악기들이 빼곡히 늘어선 매장 사이 사이로 수준급 기타 연주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따라가 보니 기타를 사러 온 손님이 악기 하나를 골라 시연 중이다.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이 한 피아노 매장에 서서 대충 두드려 보는데 그 건반 실력도 범상치 않다. 운이 좋으면 작은 음악회에 온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곳.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 2층 매장의 일상이다. 크고 작은 악기 케이스를 메고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평일인 이날도 이어지고 있었다. 
 
낙원 악기상가가 달라졌다. 1960년대 말 ‘쎄시봉’에서 시작돼 80년대까지 이어졌던 통기타 열풍에 호황을 누렸던 낙원상가지만, 세월의 공격을 피하진 못했다. 90년대 노래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악기 수요가 줄더니 2006년엔 ‘서울시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로 전면 철거될 뻔 하기도 했다.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살아남은 지금은 매년 건물안전진단에서 B등급을 받고, 국내 악기 도·소매 매출의 절반(2017년 통계청 기준 42.8%)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한다. 국내 1세대 싱어송라이터인 최백호·엄인호 등은 물론 장범준 등 젊은 인기 가수들도 꾸준히 찾는 곳이다. 단순한 악기상가가 아니라 각종 공연과 영화, 전시 등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화려한 부활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취급 악기만 3만여종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여기는 악기상가가 유명하잖아요. 일단 전문성이 있으니까 믿음이 가죠.” 경기도 포천에서 왔다는 신은식(60·여)씨는 6년째 낙원상가 단골이다. 플루트 수리를 맡기러 낙원상가를 찾은 신씨는 “가까운 곳에도 수리를 맡길 순 있지만, 굳이 멀리까지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씨는 “한 번 수리하면 몇 년씩 쓴다”며 “취미로 하는 거라 자주 오지는 않는데 일이 있으면 낙원상가를 꼭 찾는다”고 말했다.

신은식(60ㆍ여)씨가 6일 플루트 수리를 맡기러 낙원악기상가를 찾았다. 추인영 기자

신은식(60ㆍ여)씨가 6일 플루트 수리를 맡기러 낙원악기상가를 찾았다. 추인영 기자

 
낙원상가를 지탱해온 힘은 다양성과 전문성이다. 이곳에 들어선 악기 매장은 242개. 취급하는 악기만 3만여종에 달한다. 없는 악기 빼고 다 있는 셈이다. 국내 업계 종사자들의 32.7%에 해당하는 1000명이 이곳에서 일한다. 
 

독일·프랑스서 배워온 악기 수리 실력 

관·현악기 수리 경력만 25년이라는 근영악기의 김명수(45) 대표는 독일(클라리넷·플루트·색소폰)과 프랑스(클라리넷)에서 수리 과정을 마친 실력자다. 악기사의 판매우수매장 지원을 받아 약 한 달씩 다녀왔다. 이곳은 낙원상가의 명맥을 이어갈 청년들이 악기 장인의 꿈을 키워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매장 한 켠의 작업대에선 대학생 인턴을 포함해 직원 2명이 기술을 배우며 함께 일하고 있다.

 
우쿨렐레 전문점 에클레시아의 박주일(52) 대표가 서울시 주민공모사업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강의를 하며 직접 만든 우쿨렐레. 악기 뒤에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가수 육중완의 사인이 있다. 추인영 기자〈br〉 〈br〉

우쿨렐레 전문점 에클레시아의 박주일(52) 대표가 서울시 주민공모사업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강의를 하며 직접 만든 우쿨렐레. 악기 뒤에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가수 육중완의 사인이 있다. 추인영 기자〈br〉 〈br〉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은 낙원상가 역사의 일부다. 상인 근속연수는 평균 20년이 넘는다. 전체 242개 매장 중 조사가 가능했던 196곳 중 4곳이 40년 넘는 역사를 가졌다. 낙원상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30년 이상 된 매장이 30개(31%)다. 대를 이어 명맥을 이어가는 매장은 39개로 전체의 20%에 달한다.

 

근속연수 평균 20년 

우쿨렐레 전문점 에클레시아의 박주일(52) 대표는 드럼을 치던 장인 어른이 20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아 28년째 운영 중이다. 결혼 전에는 아내가 어머니와 함께 약 3년간 가게를 맡았다. 온 가족이 낙원상가의 산증인인 셈이다. 박 대표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형제나 사촌 관계인 경우가 많아서 다른 가게 욕을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매장 벽 가득 진열된 우쿨렐레 사이에선 유독 화려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박 대표가 서울시 주민공모사업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강의를 하며 직접 만든 우쿨렐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가수 육중완의 사인도 있었다.
기타 전문점 세종수제악기 손창기(67, 왼쪽) 대표는 아들 손병기(40)씨와 매장을 운영한다. 추인영 기자

기타 전문점 세종수제악기 손창기(67, 왼쪽) 대표는 아들 손병기(40)씨와 매장을 운영한다. 추인영 기자

 
기타 전문점인 '세종수제악기'는 부자(父子)가 함께 일하는 곳이다. 40년 전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아버지 손창기(67) 대표의 건강이 나빠지자 해외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들 손병기(40)씨가 15년 전부터 매장 일을 돕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 2명도 함께 한 지 20년이 넘어 가족과 다름없다. “영업을 양심적으로 하니까 단골들의 믿음을 산 거지 뭐. 정보는 요즘 TV나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잖아요. (비결은 단골과) 끈끈한 비즈니스야.” 손 대표는 장수 영업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들 손씨도 “어쭙잖은 건 안 팔아요. 삼류는 아예 갖다놓지도 않죠”라고 말을 보탰다.

 
“손님들 만나고, 최신 악기 정보를 알려주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아들을 보며 손 대표는 한마디를 던졌다. “아들이 단골과 관계가 좋아서 먹고 사는 덴 지장 없을 것 같아.”  
 

공연·영화·전시에 무료수업·기부까지   

4층 아트라운지 '멋진하늘'. 2012년 150석 규모로 조성한 이후 3월부터 10월까지 매월 2회 이상 다양한 공연이 개최된다.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4층 아트라운지 '멋진하늘'. 2012년 150석 규모로 조성한 이후 3월부터 10월까지 매월 2회 이상 다양한 공연이 개최된다. [사진 우리들의낙원상가]

 
낙원악기상가는 단순히 악기를 판매하고 수리하는 곳만은 아니다. 각종 공연과 영화, 전시 등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2012년 4층에 조성한 야외공연장 ‘멋진하늘’에선 매월(3~10월) 2회 이상 다양한 공연과 영화 상영회가 펼쳐진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콘서트,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의 토크콘서트 등이 개최됐다. 실버 영화관에서 2000원(55세 이상)에 영화를 관람하고, 지하 시장에선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어르신들에게도 인기다.

 
일반 시민들이 함께하는 ‘반려악기 캠페인’도 2016년부터 진행 중이다. 시민들이 기부한 중고 악기를 상인들이 재능기부로 수리해 사회복지시설에 보내는 ‘중고 악기 나눔-올키즈기프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엔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수리한 악기를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증정하는 ‘서울시민·학생 악기 나눔 사업’으로 확대됐다. 무료 악기 강습 ‘미생 응원 이벤트’와 ‘낙원의 고수’ 등에 대한 호응도 뜨겁다.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온라인과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진행한 ‘반려악기 릴레이 캠페인’에는 가수 임현식·하림, 뮤지컬 배우 한지상·김호영, 최현석 셰프 등이 동참했다.  
 
◇수정했습니다=기사가 나온 뒤 낙원상가 일부 상인들이 본인들과 관련된 민감한 문장에 대해 수정을 요청해 이를 반영했습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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