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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달라" 이라크인 절규···美 그린존엔 수영장 물 넘쳤다

※ 어려운 국제정세를 영화를 통해 쉽게 풀어낸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가 2020년 시즌2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찾아갑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 ... 변기 공장인데요?”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한복판. 미군 특수팀 로이 밀러(맷 데이먼)는 오늘도 허탕을 쳤습니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쳐들어가 빈손으로 나오길 몇 번째. 더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 '그린존'. 이 영화를 시작으로 이라크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 '그린존'. 이 영화를 시작으로 이라크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굶주린 시민들의 분노로 가득찬 거리를 겨우 빠져나가 그가 도착한 곳은 그린존(Green Zoneㆍ안전지대).  
밖에선 “물을 달라”며 물통을 들고 아우성인데, 이 안에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수영장에서 휴식을 즐깁니다. 
완벽한 ‘이라크 안 미국’. 별천지가 따로 없습니다. 이라크는 무슬림 국가인데 이곳에선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실 수 있었죠.
 
“와우~ 우리도 놀 수 있나? 다들 피맥(피자에 맥주)하는데.”

동료의 말을 뒤로하고 밀러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만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뭐라고라? 대량살상무기 따위 없는 것 같다고?!

 
‘그린존’(2010,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9ㆍ11 테러를 당한 미국이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한 사실을 뼈아프게 그린 영화입니다. 여기까진 많이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우리 정부도 파병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이후 이라크는 우리 관심에서 점차 멀어져갔죠.

 
미국의 공격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이 숨지며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이라크 땅에서 공격받아 숨졌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미국의 공격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이 숨지며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이라크 땅에서 공격받아 숨졌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최근 이곳 뉴스가 다시 쏟아지는 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폭발한 탓입니다.  
미국이 이란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를 제거하자 이란은 미군기지에 미사일로 보복했는데, 이 모든 것이 이라크 땅에서 벌어졌거든요. 솔레이마니가 숨질 때 함께 사망한 이라크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주권을 존중하라"는 이라크인들의 절규는 어디에서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딱 한 번 언급했네요.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숨진 이라크인이 없다는 점에 고맙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이자 한때의 군사강국, OPEC 2위 산유국인 이 나라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요.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에서 함께 살펴보시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점령군의 실수는 점령 그 자체"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그린존 내 미 대사관을 공격했을 당시 상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그린존 내 미 대사관을 공격했을 당시 상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영화에 등장하는 ‘그린존’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안전지대입니다. 현재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있죠.  
그렇습니다. ‘안전지대’가 따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의 이라크를 설명해줍니다. 그 바깥은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니까요.

 
그 ‘바깥’의 혼란스러움은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전쟁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침공 2주 만에 바그다드는 함락됐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거든요.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고,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심겠다며 주둔하는 기간 오히려 혼란만 가중합니다. 혼란이란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죠. '석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비난은 빗발쳤고 미국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발이 나왔습니다. 
 
영화의 원작을 쓴 워싱턴포스트 기자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은 “점령군의 가장 큰 실수는 점령 그 자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죠.  

 

이라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미국, 이라크 혼란 가중 

8일(현지시간) 이라크 알아사드 미군기지를 향해 발사되는 이란 미사일. [사진 이란 TV 화면 캡처]

8일(현지시간) 이라크 알아사드 미군기지를 향해 발사되는 이란 미사일. [사진 이란 TV 화면 캡처]

 
이라크는 어떤 나라냐.  
 
주민의 80%는 아랍인이고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지만 이중 시아파를 믿는 이가 64%, 수니파가 30% 정도 됩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은 극심한데 어느 쪽도 압도적인 다수가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후손’이란 자긍심이 엄청난 옆 나라 이란과도 다르죠.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고 20세기엔 열강의 다툼에 휩싸인 탓에 독립국의 역사가 매우 짧거든요.  
 
그만큼 이곳의 안정을 찾기 위해선 고도의 정치술이 필요했을 텐데…

 
미국은 이라크 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후세인의 잔존 세력을 제거한단 당위 아래 나라의 근간을 모두 흔들어 버립니다. 군대를 해산하고 웬만한 기관들을 다 없애버렸죠. 선거를 하면 뭐하나요. 수니파ㆍ시아파ㆍ쿠르드족의 나눠먹기식이었고, 후세인(수니파) 아래서 핍박받았던 시아파는 정권을 잡자 수니파를 탄압했습니다.  
 
갈등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 ‘내전’ 수준이 되어버렸죠. 혼란스런 상황에서 무장세력이 일어났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미군정 아래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무수히 투옥되고 죽어 나갔습니다.

 
몇 년 후. 2011년 미국은 “이라크가 안정됐다”며 도망치듯 철군합니다.  
 

미군 철군하자 갈등 폭발 ... 내전 벌어져 

이라크 내전을 일으킨 '이슬람국가'(IS)가 기세등등했을 때의 모습. [AP=연합뉴스]

이라크 내전을 일으킨 '이슬람국가'(IS)가 기세등등했을 때의 모습. [AP=연합뉴스]

 
기세를 잡은 시아파는 본격적으로 수니파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폭력 사태가 일었죠. 
 
그렇게 2014년, 수니파 이슬람국가(IS)를 주축으로 하는 이들과 이라크 정부군(시아파) 간 내전이 터집니다. 
이라크에서 겨우 발을 뺐던 미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국적군을 끌어모았고, IS 격퇴라는 명분 아래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도 협력했습니다. 쿠르드도 힘을 보탰죠. (그러나 쿠르드는 트럼프에 의해 토사구팽당합니다.)
 
수많은 희생 끝에 2017년 12월, 이라크는 IS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란-이라크 전쟁(80년대), 걸프전(90년대)에 이어 미국의 침공, 내전까지 40년 가까이 전쟁을 겪은 이곳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습니다. 내전 기간 이란의 입김은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세졌고요. 그러자 이번엔 시아파 내에서 ‘친이란’과 ‘반이란’으로 기류가 나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는 '수니파 vs 시아파' '친이란 vs 반이란' '반미 vs 친미' '이라크인 vs 쿠르드' '쿠르드를 둔 터키와의 갈등' 등이 마구 뒤섞인 혼돈 그 자체가 된 거죠. 지난해 민생고를 이기지 못해 거리로 나온 반정부 시위대 속에서 ‘반이란’ ‘반미’ 구호가 섞여 들린 이유입니다.  
 

"이라크의 일은 이라크에 맡겨라" 약소국의 절규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 '샌드캐슬'. 할리우드 스타 니콜라스 홀트가 주연을 맡아 주목받았다.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 '샌드캐슬'. 할리우드 스타 니콜라스 홀트가 주연을 맡아 주목받았다.

 
영화 ‘샌드 캐슬’(2017, 페르난도 쿠임브라 감독)에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한 미군 매트(니콜라스 홀트)가 등장합니다.
 
그는 미군의 공격으로 급수시설이 망가진 마을에 파견됩니다. 시설 재건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습니다. 마을 지도자는 “미국인을 도우면 목숨이 위험하다”며 거절하죠. 그러면서 “니들이 저지른 짓이니 너희들이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미군이 “지켜드리겠다”고 하지만 그 ‘호언장담’은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너덜너덜해지고 말죠. 마치 그 이후 미국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 말입니다.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 '샌드캐슬'. 2017년작으로, 이라크 전쟁을 다룬 영화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 '샌드캐슬'. 2017년작으로, 이라크 전쟁을 다룬 영화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매트가 향한 곳 역시, ‘그린존’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주민들과 자신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물’이 넘쳐나는 수영장을 보고 씁쓸해지죠. 미국의 모순적인 면을 극명히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얼마 전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위대가 이곳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면서 그린존은 다시 화제가 됐는데요. 
이곳이 계속 공격의 타깃이 되는 이유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던 이라크의 아픈 역사 때문일 겁니다. 
 
미국과 이란 양국의 갈등에 이라크의 피해가 커지자 10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미국도, 이란도, 이스라엘도, 사우디도 싫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양국의 갈등에 이라크의 피해가 커지자 10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미국도, 이란도, 이스라엘도, 사우디도 싫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남의 땅인 이라크에서 공격을 감행한 건요. 쉽게 말하면 이 혼란스런 나라가 ‘만만해서’입니다. 
미국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며 근거를 내세우고, 이란은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시아파 민병대를 앞에 세우죠.
 
이들을 막아낼 힘이, 이라크에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라크 민병대는 솔레이마니 사망 당시 함께 죽은 이라크 사령관의 죽음에 복수를 하겠다며 공언하고 있습니다. 
영화 ‘그린존’ 속 이라크인의 절규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라크의 일은 이라크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그 울분에 찬 말이요.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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