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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발견은 곧 시간의 발견…자격루를 다시 보다

기자
민은미 사진 민은미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33) 

 
“이제 우리 백성들은 낮이고 밤이고, 이 자격루(自擊漏)의 종소리에 맞춰 생활하게 될 것이다.”
 
2019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에서 세종대왕(한석규 분)이 자격루를 처음 공개하면서 한 말이다. 장영실(최민식 분)이 만든 물시계를 처음 시연하는 순간 기존에 쓰고 있던 해시계와 시각이 맞아 떨어졌다. 역사상 우리 손으로 만든 첫 물시계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86년 전인 1434년(세종 16) 얘기다. 영화 천문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1397년~1450년, 재위 1418~1450)과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1390년경~?)의 스토리를 담았다.
 
조선 전기의 관료이며 과학자, 기술자, 발명가이다. 박연과 함께 조선 세종대왕 치세 시절 양대 기·예능 분야 총신(寵臣)이었다. [사진 위키백과]

조선 전기의 관료이며 과학자, 기술자, 발명가이다. 박연과 함께 조선 세종대왕 치세 시절 양대 기·예능 분야 총신(寵臣)이었다. [사진 위키백과]

 
조선시대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왕은 백성들에게 일어날 시각과 일할 시간, 쉬는 시간 등을 알려 주어 일상생활의 리듬을 규제하고 통제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시계는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었고, 통치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해시계로는 한계가 있었다. 해시계는 해의 그림자로 태양의 위치를 파악해 시간을 측정했기 때문에 낮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했기 때문에 24시간 작동이 가능했다.
 
영화 천문은 『세종실록』등에 남아 있는 짧은 기록에 상상력을 덧붙여 만든 픽션이지만, 그 작동원리만큼은 제대로 재연해냈다. 장영실이 신하들로 둘러싸인 세종대왕 앞에서 물시계를 선보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다.
 
세종대왕 앞에서 물시계를 선보이는 장면.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세종대왕 앞에서 물시계를 선보이는 장면.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큰 항아리인 파수호(播水壺 )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수호(受水壺,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는 병)로 들어가 살대가 떠오르면 부력(浮力)이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해지고, 쇠구슬이 떨어지면서 동판 한쪽을 치면 동력이 전해져 나무로 된 인형이 종과 북·징을 쳐서 시보장치를 움직인다. 나무인형 둘레에는 12신을 배치하여 1시부터 12시의 시각을 알리도록 했다.
 
세종대왕은 삼국시대부터 이용하던 원시적인 물시계의 ‘시각알림장치’를 자동화하곤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으로 자격루란 이름을 붙였다. 세종대왕은 자격루를 1434년 ‘보루각(報漏閣)’이라는 전각에 설치해 국가의 표준시계로 삼았다.
 
자격루는 도성의 성문을 열고 닫는 인정(人定, 통행금지 시각, 밤 10시경)과 파루(罷漏, 통금해제 시각, 새벽 4시경), 오정(午正, 낮 12시)을 알려 주는 데 썼다. 한양 사람들에게 아침·점심·저녁 때를 알려 줘서 생활의 리듬을 잡아 주는 기능을 한 셈이다. 자격루가 있는 보루각에서 나오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이를 신호로 광화문과 종루에서 북과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으며, 연이어 궁궐의 문과 한양의 도성문인 ‘숭례문’, ‘흥인문’, ‘돈의문’이 열리고 닫혔다고 한다.
 
그런 자격루를 1455년(단종 3) 2월까지 사용한 뒤 철거했다가 1536년(중종 31)에 다시 만들었는데, 임진왜란(1592년~1598년) 때 불에 타 없어졌다. 현재 유일하게 덕수궁에 남아 있는 국보 제229호는 1536년(중종 31년)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를 개량해서 만든 것이다. 항아리 모양의 큰 파수호 1개와 작은 파수호 2개, 원통 모양의 수수호 2개, 부력에 의해 떠오르는 살대가 남아 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자격루. 20년이 넘는 연구끝에 복원해 시연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립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자격루. 20년이 넘는 연구끝에 복원해 시연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시계는 효종 이후부터 조선 말기까지 표준시계로 쓰였다. 현재 중국 광동에 남아 있는 명나라의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규모가 크고 모양이 훌륭해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자격루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자연시계’라 부를 수 있다. 서양식 ‘기계시계’는 누가 언제 처음 발명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탈리아 시인 단테가 1320년에 완성한 ‘신곡’에 기계식 시계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니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에 확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서양의 기계시계가 16세기에 중국으로 소개된 것이 ‘스스로 울리는 종’이란 뜻의 자명종(自鳴鐘)이다.
 
그것이 17세기 이후 휴대용 시계로 진화했다. 시계의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휴대용 손목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초에서 20세기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명품 시계브랜드인 까르띠에가 1847년, 오메가가 1848년, 롤렉스가 1905년에 설립됐다. 지금은 동서양을 따질 필요 없이 스마트폰이 일상과 밀착함에 따라 시간까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시계는 전체적인 룩에 맞춰 스타일로 착용하는 패션의 일부로 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계의 발명은 곧 시간의 발견이었다. 특히 세종 시절의 물시계가 백성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동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간의 소중함을 시계의 의미로 되새기면서 경자년을 맞이해 본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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