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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거처럼 수백억 펑펑…봉준호도 뛰는 오스카 캠페인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이 (왼쪽부터) '기생충' 배우 이정은, 조여정, 송강호가 5일(미국 현지시간) LA 골든글로브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외국어영화상 수상 이후 자사 트위터에 공개했다. [트위터 캡처]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이 (왼쪽부터) '기생충' 배우 이정은, 조여정, 송강호가 5일(미국 현지시간) LA 골든글로브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외국어영화상 수상 이후 자사 트위터에 공개했다. [트위터 캡처]

표심을 잡기 위해 수천만 달러(수백억 원)를 펑펑 쓴다. 북미에선 그 열기가 “공직자 선거에 비견할 정도”(미국 온라인 매체 ‘VOX’)란다. 할리우드 최대 축제 아카데미상을 향한 선거전 ‘오스카(아카데미상 트로피 이름) 캠페인’ 얘기다. 
 

내달 9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8000여 아카데미 회원 표심 잡으려
영화 한 편에 수천만 달러 펑펑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뛰어든
할리우드 최대 경연 오스카 캠페인은…

봉준호 "오스카, 한국영화 산업에 의미"

다음달 9일(미국 현지시간) LA 돌비극장에서 열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향한 캠페인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출전했다.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주제가상(‘소주 한 잔’) 예비 후보에 오른 데 더해 13일 발표될 작품상 등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올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이어 이번에도 ‘한국영화 최초’ 행보다.
5일(미국 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한 순간이다. 이는 한국영화 최초 기록. 수상무대에 선 그는 북미 관객들을 향해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라"고 외쳤다. [AP=연합뉴스]

5일(미국 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한 순간이다. 이는 한국영화 최초 기록. 수상무대에 선 그는 북미 관객들을 향해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라"고 외쳤다. [AP=연합뉴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에서만 매해 2000여만 명이 시청하는 등 전 세계 이목이 쏠리는 행사다. 영화 흥행뿐 아니라 후보에 오른 감독‧배우‧제작진의 향후 경력을 좌우하는 최대 홍보 무대다. 5일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 한국 취재진을 만난 봉 감독이 “이걸 목표로 달려온 건 아니지만,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오스카에서도 좋은 결과가 온다면 한국영화 산업 측면에선 나름의 의미가 있겠다”고 말한 이유다.
 

8000여명 오스카 후보 투표단 누구?

한해 북미 영화시장의 성과를 결산하는 최대 영화상 아카데미상은 트로피 이름에서 따온 '오스카상'으로도 불린다. [AP=연합뉴스]

한해 북미 영화시장의 성과를 결산하는 최대 영화상 아카데미상은 트로피 이름에서 따온 '오스카상'으로도 불린다. [AP=연합뉴스]

'오스카 캠페인'에는 예산과 글로벌 영화계 인맥, 공격적인 프로모션 등이 총동원된다. 통상 출품이나 초청으로 이뤄지는 영화제와 달리 아카데미상 후보와 수상작은 전 세계 8000여명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로 선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임권택‧봉준호‧박찬욱‧홍형숙 감독과 배우 최민식‧송강호‧이병헌‧배두나‧김민희 등 다양한 국적‧인종의 회원들이 최근 합류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투표단의 80%가량은 미국 현지 영화 관계자들이다. 오스카 캠페인 예산은 적게는 수백만 달러에서 많게는 2000만 달러(약 2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투자‧배급사 최초로 오스카 캠페인에 뛰어든 CJ ENM 관계자는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경우 아카데미 캠페인 전담팀이 조직 내에 상설로 있다”면서 “‘기생충’의 경우 한국 최초로 조직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하기에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부딪쳐가며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로마'는 오스카 홍보비만 1200억원…"

봉 감독은 지난달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익스트림 무비’와의 인터뷰에서 “작년에 ‘로마’는 넷플릭스가 홍보비로 1200억 원을 썼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돈이면 한국영화 10편은 찍을 텐데. 수많은 인원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경쟁을 펼치는 걸 보며 나나 송강호 선배나 신기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개봉한 영화들이고 또 박스오피스에서 내려간 영화들도 있는데, 큰돈을 들여가며 홍보한다는 게…. 함께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외부인인 우리 입장에선 대소동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지난해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사진)은 자국 멕시코를 무대로 찍은 넷플릭스 영화 '로마'로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3관왕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사진)은 자국 멕시코를 무대로 찍은 넷플릭스 영화 '로마'로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3관왕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국 멕시코에서 찍은 ‘로마’는 전통적인 극장 개봉이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을 위해 제작됐다는 점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넷플릭스 영화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아카데미 감독상‧촬영상‧외국어영화상 3관왕을 차지했다. 봉 감독이 전한 '1200억 원'은 통상 오스카 캠페인 예산과 비교해도 엄청난 거액이다. 본지 문의에 넷플릭스 측은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봉준호 "미사리 도는 유랑극단처럼 움직였죠"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제46회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참석하고 있다. 텔루라이드 영화제는 매해 북미 시상식 시즌 초반을 여는 행사로 주목 받는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지난해 8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제46회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참석하고 있다. 텔루라이드 영화제는 매해 북미 시상식 시즌 초반을 여는 행사로 주목 받는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총제작비 160억원의 ‘기생충’은 할리우드에선 상대적으로 저예산 영화. CJ측은 이번 오스카 캠페인 예산은 대외비라며 말을 아꼈지만, 봉 감독은 익스트림 무비에 이렇게 귀띔했다. “아무래도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거대 회사가 아니다 보니 물량 대신에 (맷돌 돌리는 시늉을 하며) 감독을 갈아 넣는 식으로 엄청난 양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하루에 몇 군데씩 마치 봉고차를 타고 미사리를 도는 유랑극단처럼 움직였다.”
 
이런 여정은 지난해 5월 칸영화제 이후부터 시작됐다. 전 세계 500곳 이상 외신 인터뷰에 더해 본격적인 캠페인을 가동한 건 8월 ‘기생충’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한국 대표 후보로 확정된 시점부터다. 오스카 경연작들이 반드시 참석하는 8월 미국 콜로라도주의 텔루라이드영화제가 그 출발점. 이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와 미국 아카데미 회원 등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를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진행했고, 시사회 전후 리셉션, 파티 등을 통해 우호적인 여론 조성 작업도 펼쳤다.  
 

오스카 수상에 美배우조합 중요한 이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앞서 3일(미국 현지시간) 열린 ‘기생충’ 파티에는 “봉준호 팬”을 자처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셰이프 오브 워터’ ‘판의 미로’)이 호스트로 나섰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로라 던 등 할리우드 스타가 참석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시네마테크에서 개최된 봉준호 회고전, 미국 NBC 방송의 지미 팰런 토크쇼 출연 등도 캠페인 활동에 포함된다.  
외신도 앞다퉈 '기생충'에 대한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LA타임스는 "'기생충'은 골든글로브의 역사를 썼다"는 제목을 달았다. [LA타임스 캡처]

외신도 앞다퉈 '기생충'에 대한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LA타임스는 "'기생충'은 골든글로브의 역사를 썼다"는 제목을 달았다. [LA타임스 캡처]

 
오스카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표권을 많이 가진 미국 배우조합‧감독조합 등 할리우드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상, 각 지역 비평가상보다 아카데미 회원이 속해있는 각종 조합상 결과가 오스카 캠페인에 있어 더 중시된다. 송강호‧이정은 등 ‘기생충’ 출연진이 미국 배우조합상 앙상블상 후보에 호명되자 북미 배급사 네온이 가장 환호한 것도 영화예술아카데미 소속 회원 중 인원수가 가장 많은 게 배우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시상식 예측 사이트 ‘골든더비’에 따르면 오스카 투표권자 중엔 배우가 1324명으로 가장 많고, 프로듀서(583명), 시각효과(545명), 감독(526명) 등의 순서였다.비영어권 영화가 앙상블상 후보에 오른 것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 이후 역대 두 번째다. ‘기생충’은 봉 감독이 조합원으로 소속된 미국 감독조합상, 작가조합상, 프로듀서조합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남우조연상 캠페인 송강호 "쌍코피 터졌죠" 

지난해 5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두 사람은 이후 전 세계 영화제 및 시상식, 홍보 행사에 동참했다. [Xinhua=연합뉴스]

지난해 5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두 사람은 이후 전 세계 영화제 및 시상식, 홍보 행사에 동참했다. [Xinhua=연합뉴스]

‘FOR YOUR CONSIDERATION(당신이 고려해주길)’.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용 포스터 문구다. 할리우드에선 시상식 시즌 단골 문구다. 이런 포스터엔 기존 수상경력과 더불어 후보 선정을 희망하는 아카데미상 부문도 함께 적혔다. ‘기생충’의 경우 작품상‧감독상‧각본상‧미술상‧촬영상‧주제가상 등과 함께 송강호의 남우조연상도 주력 부문으로 적혀있다.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봉 감독과 네 번째 작업하며 북미에도 인지도가 높다는 점을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시상식 시즌을 겨냥해 나온 '기생충' 포스터. 작품상, 감독상 등을 비롯해 송강호를 남우조연상 후보로 미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북미 시상식 시즌을 겨냥해 나온 '기생충' 포스터. 작품상, 감독상 등을 비롯해 송강호를 남우조연상 후보로 미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국내 영화상에 더해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엑설런스어워드, LA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등을 거머쥔 송강호는 봉 감독과 함께 오스카 캠페인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워낙 건강 체질임에도 이런 강행군 탓에 콜로라도 고산지대에서 열리는 텔루라이드 영화제 땐 쌍코피가 터졌단다.  
 

비열한 홍보전엔 "와인스타인 냄새 난다"

오스카 캠페인이 이처럼 치열해진 건 20여 년 전부터다. 미국 주간지 ‘더 뉴요커’에 따르면 그 시초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1990년대 영화사 미라맥스를 이끌던 그는 이전까진 누구도 하지 않았던 영화 시사회, 각종 홍보행사, 연락공세를 펼쳤다. 
 
미국 VOX에 따르면 1999년 아카데미 작품상에 가장 유력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미라맥스의 시대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수상한 배후엔 경쟁작에 대한 나쁜 입소문 전략을 동원한 ‘협박조 캠페인(bully campaign)’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와인스타인은 부인했지만, 그가 미투로 강제 은퇴한 지금도 비열한 홍보전략을 펼치는 영화엔 “와인스타인 냄새가 난다(that smells like Weinstein)”는 말이 나온다.
 

황금종려상-오스카 작품상 2관왕 기록 세울까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린 6일(한국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골든글로브 공식 촬영 사진을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린 6일(한국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골든글로브 공식 촬영 사진을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기생충’은 호주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전 세계 15개 영화제, 30개 이상 시상식에서 주요상을 휩쓸고 있다. 한국영화는 100년 역사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은 커녕 본선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한국계로 범주를 넓히면 호주 교포 박세종 감독의 한국전쟁 배경 단편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가 2005년 후보에 오른 게 최초였다. 이 할리우드 최대 쇼에 초청될 경우 세계적 홍보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미국 현지에선 ‘기생충’에 관한 밝은 전망이 잇따른다. 할리우드 매체 데드라인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도 유력하다며 이번에 수상할 경우 역사상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단 두 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최초 사례는 1955년 델버트 맨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마티’였다. 아카데미 사상 작품상을 비영어 영화가 받은 적도 없었다. 연일 한국영화 최초 기록을 경신 중인 ‘기생충’이 다음 달 아카데미 역사도 새로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화 '기생충'의 영국판 포스터. 다음달 영화 개봉을 앞두고 영국 현지 배급사 컬존(Curzon)이 출시했다. [사진 컬존]

영화 '기생충'의 영국판 포스터. 다음달 영화 개봉을 앞두고 영국 현지 배급사 컬존(Curzon)이 출시했다. [사진 컬존]

동양화풍으로 그린 '기생충' 해외 포스터. 상단에 박힌 칸 황금종려상 로고와 함께 오스카 수상 로고도 포스터에 새겨질 수 있을까.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동양화풍으로 그린 '기생충' 해외 포스터. 상단에 박힌 칸 황금종려상 로고와 함께 오스카 수상 로고도 포스터에 새겨질 수 있을까.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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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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