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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새끼 젖 안주는 어미소, 모성 없다 타박했는데…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22)

 
겨울인데도 요즘은 날이 따뜻하다. 며칠 전 외출 중에 앞집 언니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축협 가서 소 새끼에게 먹일 초유를 좀 사 오라는 것이다. 앞집 어미 소 두 마리가 이번 주 며칠 간격을 두고 새끼를 낳을 예정이었다. 오랫동안 소를 키워온 분들이라 소가 새끼를 낳을 때면 두 분은 산파가 되신다. 손을 넣어 머리도 돌리고 발도 끈으로 묶어 당기며 새끼를 받는다. 산파 노릇을 끝낸 모습은 전쟁터서 막 돌아온 패잔병같이 엉망이지만 새끼가 건강하니 피로가 딱 가시는 듯 흐뭇한 표정이셨다. 송아지도 건강하게 태어나서 낳자마자 일어서서 뒤뚱거리며 걷다가 곧 뛰어다니는 걸 보고 내려오셨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올라가니 며칠 후 해산 예정인 어미 소 우리에 갓 태어난 듯한 새끼가 또 한 마리 있었다. 힘들게 혼자 낳았구나 생각하니 기특했단다. 그런데 새끼가 축축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일어서면 바로 털을 손질해주는 제 어미가 소 닭 보듯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젖도 안 먹인다. 새끼가 오는 것도 거부하니 별종이라고 어미 소를 보고 나무라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초유는 일반 젖과는 다른 성분으로 며칠동안만 나온다. 신체의 면역력을 키우는 최초의 양식이고 약이기 때문에 새끼에게 초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Pixabay]

사람이든 동물이든 초유는 일반 젖과는 다른 성분으로 며칠동안만 나온다. 신체의 면역력을 키우는 최초의 양식이고 약이기 때문에 새끼에게 초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Pixabay]

 
하필 두 녀석 모두 짧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날 태어났으니 정신이 더 없는 목소리다. 급한 전화 같아서 하던 일을 멈추고 초유를 사서 달려갔다. 외양간엔 동네 사람에게 다 부탁한 듯 초유가 다섯통이나 쌓여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초유는 일반 젖과는 다른 성분으로 며칠 동안만 나오는 젖이다. 신체의 면역력을 키우는 최초의 양식이고 약이다. 새끼에게 초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며칠 분의 초유는 확보해 놨지만 설마하니 조금 후엔 젖을 물리려니 했는데 안 물린단다. 모성 없는 어미 소를 보며 늦은 밤까지 초유 다섯 통을 다 먹이고 찜찜한 마음으로 집으로 내려오셨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제 새끼 배 아프게 낳고도 보기 싫은 어미도 있을 것이다. 지난날 너무 찌들고 가난한 시절, 자식은 줄줄이 생기고 배 아파 낳은 핏덩이지만 죽기를 바라며 윗목 냉골에 내밀어 놨다던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어떤 연유로든 사정이 있을 것이다. 분유를 먹든 모유를 먹든 건강하게 잘 크기나 하렴.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오늘, 언니가 건너와 차 한잔하고 가라 하신다. 두 분은 며칠 동안 식사도 못 하시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어디 아프시냐고 물으니 또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초유를 사 온 그 날 젖은 몸을 버둥거리며 털고 일어나 인공 초유를 빨더니 금방 깡충거리며 뛰던 녀석, 어미젖 없이도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걱정으로 밤을 설치고 새벽에 올라가니 그 녀석이 한쪽에 싸늘하게 죽어 있더란다. 날도 따뜻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요즘 송아지 한 마리가 얼마인데 돈이 아까워서도 밥맛이 없으셨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란 인간은 어찌 이리 이기적이고 계산적인지 이런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죽은 녀석을 땅에 묻고, 수의사를 불러 제 새끼 젖을 안 먹이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 의사가 조용히 청진기를 대며 말하길, 옆 동에 있는 어미 소는 아직 뱃속에 제 새끼를 품고 있다는 거여. 글쎄, 어제 해산한 그놈이 쌍둥이를 낳았던 거야. 우리가 집으로 돌아간 후 새벽에 제힘으로 나온 놈인 거지. 그 어린것이 미처 치우지 못한 소똥에 미끄러져서 옆 우리로 들어간 거여.”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새해부터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접하며, 살다보면 슬픔도 있지만 엄마 젖을 힘차게 빠는 한 놈을 보며 기쁨도 받는다. [사진 Pixabay]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새해부터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접하며, 살다보면 슬픔도 있지만 엄마 젖을 힘차게 빠는 한 놈을 보며 기쁨도 받는다. [사진 Pixabay]

 
그것도 모르고 해산도 안 한 놈에게 젖을 물리라고 윽박지르고 모성도 없는 어미라고 욕하고, 그러고 보면 한심한 건 우리였다.
 
“젖은 털을 수건으로 닦아 따뜻한 백열등 우리에라도 넣어 줄걸. 저 추운 난장에서 어미젖도 못 빨게 다른 칸에 넣어놓고, 멀쩡하게 태어나 깡충거리며 뛰던 귀여운 녀석을 생다지로 굶겨 죽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네.” 내 마음도 짠하게 젖어 들었다.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새해부터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접하며, 살다보면 슬픔도 있지만 엄마 젖을 힘차게 빠는 한 놈을 보며 기쁨도 받는다. 다시 앞치마 끈을 조이며 서둘러 외양간으로 향하시는 두 분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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