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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전도사, 판결문 보니 '억울한 옥살이'

1988년 12월12일 오후 2시50분쯤 경기도 화성군의 한 야산. 교회 부지를 찾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좁은 산길을 지나던 전도사 A씨(당시 31세)는 앞을 걸어가던 50대 여성 B씨를 발견했다. 
초행길이라 B씨에게 길을 물었던 A씨는 1시간 뒤 강간치상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체포된 A씨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며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때까지 130일간 구금됐다.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윤모(52)씨처럼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다. A씨는 결국 2·3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A씨는 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것일까. 
 

1심은 유죄, 2·3심은 무죄  

중앙일보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에서 입수한 A씨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B씨에게 길을 물어본 뒤 입을 막고 목을 졸라 숲속으로 데려가 범행을 시도했다. 그러나 B씨가 발로 A씨의 가슴을 걷어차는 등 반항해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B씨는 이로 인해 전치 2주 상당의 상처를 입었다. A씨의 장갑에서도 B씨의 혈흔이 나왔다.
A씨가 경찰에 체포될 당시 화성군에선 3개월 전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에 경찰은 A씨를 화성 사건의 용의 선상에 올려 수사했다.
화성 8차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화성 8차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당시 A씨의 구속 사실을 다룬 1989년 1월 과거 언론 기사엔 "A씨 가족이 '경찰이 A씨를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아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고문했다'고 주장하며 재수사를 요구했다"고 썼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초범이고 강간 범행도 미수에 그쳤으며, 피해도 경미하다"며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다만 선고 전 구금 일수 중 130일을 형에 산입(算入)하기로 했다.
 

조사 당시부터 혐의 부인한 A씨, 피해자 진술도 불일치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범행을 시도하려 한 사실이 없는데도 피해자의 진술만 믿고 죄를 인정했다"는 A씨 측의 주장에 주목했다.
A씨는 경찰 조사 당시부터 "B씨에게 길을 물었는데 B씨가 뒤로 넘어져 길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피가 나길래 장갑 낀 손으로 닦아줬다"고 했다. 
그는 "일어나지 않는 B씨를 안아 편한 곳에 앉혔는데 B씨가 '사람 죽인 놈'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멱살을 잡아 손을 뿌리쳤다. 이때 B씨가 뒤로 넘어졌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진술서나 자술서에서 범행 내용을 부인하고 있어서 이를 유죄의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A씨를 범인으로 몰았던 B씨의 주장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B씨는 "A씨가 자신의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지만 B씨의 목에선 긁힌 자국만 있었다. B씨는 당시 술에 취해 A씨가 입은 옷 색깔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낮에는 교회 일을 돌보면서 야간에는 성실하게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범청년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라며 "연쇄살인 사건으로 주민들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운 상태에서 술에 취한 피해자가 피고인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고 판시했다. 
또 "피해자의 목에서 발견된 긁힌 자국과 목을 강하게 눌렀다는 진술은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이 실제 범행을 했다면 체포될 당시까지 피 묻은 장갑을 가지고 있었던 점도 이례적"이라며 "피해자 등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A씨, 무죄 선고 후 "나 같은 피해자 나오지 않길…"

잇따라 재판을 받는 동안 A씨의 생활은 무너졌다. 과거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에도 교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A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과 경찰의 횡포로 또다시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지난해 11월20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NGO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지난해 11월20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NGO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하지만 A씨 체포 이후에도 윤씨가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등 피해는 이어졌다. 
30년 넘게 미궁에 빠졌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과거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면서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범죄 혐의를 적용해 이춘재를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나머지 21건의 성범죄도 조사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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