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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서 동료 잃자 삶이 멈췄다···극단 선택 소방관 ‘3년 지옥’

지난해 8월 5일 정희국 소방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하루 뒤 그의 사물함을 열자 3년 전 임무수행 중 사망한 후배 강기봉 소방사의 근무복이 걸려 있었다. 이를 본 주위의 동료들은 오열했다. [울산소방본부]

지난해 8월 5일 정희국 소방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하루 뒤 그의 사물함을 열자 3년 전 임무수행 중 사망한 후배 강기봉 소방사의 근무복이 걸려 있었다. 이를 본 주위의 동료들은 오열했다. [울산소방본부]

지난해 8월 5일 울산 농소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던 정희국(41) 소방장이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루 뒤 그의 사물함을 연 동료들은 모두 오열했다. 사물함 안에 자신의 근무복과 함께 3년 전 죽은 후배 강기봉(당시 29세) 소방사의 근무복이 영정처럼 함께 걸려 있어서다. 
 

울산북부소방서 지난달 말 정희국 소방장 순직 신청
동료들 "후배 먼저 보내고 극심한 스트레스 시달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사실관계 확인 후 인사혁신처 심의

울산북부소방서 등은 지난해 12월 27일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위험직무 순직 유족 급여 청구서’를 제출했다고 5일 밝혔다. 정 소방장이 임무 수행 중 후배를 잃고 난 뒤 그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며 순직신청을 한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정 소방장이 사망하기 3년 전쯤인 2016년 10월 5일 울산시 온산119안전센터 소속 정희국 당시 소방교와 강기봉 소방사는 태풍 ‘차바’로 인한 집중호우로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러 출동했다. 이들이 탄 구급차가 막 울주군 청량면 양동마을 앞을 지날 때였다. 마을 주민이 황급히 뛰어와 “회야강변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다급히 구조를 요청했다.  
 
정 소방교 등은 구급차에서 내려 고립된 차로 뛰었다. 쏟아진 빗물은 어느새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차에 가보니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불어난 물은 순식간에 허리까지 차올랐다. 강변에서 쉽게 탈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 소방교는 전봇대의 쇠로 된 손잡이를 잡았다. 강 소방사는 바로 옆 쇠로 된 가로등에 몸을 의지해 버텼다. 하지만 강 소방사는 쇠로 된 가로등이 미끄러워 몸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정희국 소방장이 후배인 강기봉 소방사를 잃은 8~9개월쯤 뒤 함께 죽지 못한 슬픔을 토로한 메모형식의 쪽지. 정 소방장은 이 쪽지를 자신의 차량에 넣고 다녔다. [울산소방본부]

정희국 소방장이 후배인 강기봉 소방사를 잃은 8~9개월쯤 뒤 함께 죽지 못한 슬픔을 토로한 메모형식의 쪽지. 정 소방장은 이 쪽지를 자신의 차량에 넣고 다녔다. [울산소방본부]

 
그때였다.  강 소방사는 “선배님 저 더는 힘들어서 못 잡고 있겠어요”라고 외쳤다. 정 소방교는 이 말을 듣고 함께 자신은 좀 더 견딜 수 있었지만, 함께 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기봉아 우리 같이 물에 뛰어들까” “네...” “하나둘 셋 하면 뛴다. 하나둘 셋~.”  정 소방교는 물에 뛰어들어 몇 바퀴를 구른 뒤 수면 위로 떠올랐다. 1m쯤 앞에 강 소방사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 물에 뛰어들기 전 “꼭 함께 살자”는 약속이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정 소방교가 기억하는 강 소방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 소방교는 휩쓸려 들어갔다 떠오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약 2.4㎞ 하류에서 튕겨 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강 소방사는 1㎞ 정도 더 떨어진 곳에서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정 소방교는 소방장이 됐다. 가까운 동료 외에는 정 소방장이 후배를 잃은 슬픔을 잘 견뎌내는 거로 알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그가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는지가 드러났다. 숨진 정 소방장의 차 안에서  A4용지 1장 분량의 쪽지가 발견되면서다. 강 소방사가 죽은 지 8~9개월쯤 뒤 쓴 글이었다. 거기에는 “(전략)나는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버텨왔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후략)”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의 휴대폰에도 A4용지 24장 분량의 글이 남아 있었다. 그가 부친상을 당한 뒤 49재가 끝나는 지난해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쓴 글이었다. 그 글에는 3년 전 강 소방사와 함께 출동해 당한 사고 내용과 이후 힘들었던 순간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울산소방본부 온산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활동했던 정희국(좌측) 소방장과 강기봉 소방사의 생전 함께 있던 모습. [울산소방본부]

울산소방본부 온산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활동했던 정희국(좌측) 소방장과 강기봉 소방사의 생전 함께 있던 모습. [울산소방본부]

 
조동현(56) 농소119안전센터장은 “희국이는 처와 어린 두 딸때문에 그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더 살아왔었다”며 “하지만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북부소방서 관계자는 “정 소방장에 대한 의료기록 등 사실관계를 공무원연금 관리공단에서 파악한 뒤 인사혁신처 공무원 재해보상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순직 여부가 결정된다”며 “빠르면 1~2월 늦어도 3월 중에는 정 소방장의 순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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