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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추종자 많은 유시민, 과거 왜곡…그냥 넘어갈수 없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유시민이) 야당 탓하며 과거 왜곡하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유시민(61)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공개 비판한 이부영(78)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4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건 아니다,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긴 글을 올린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이사장은 “내가 이미 정치를 떠났고 한참 나이 차 나는 후배를 비판하는 게 옳은 것인가, 너무 옹졸하게 생각하는가 싶기도 했다”며 “하지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추종자도 많고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그가 과거를 왜곡하고 거짓을 진실인 양 바꿔놓는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둘은 과거 열린우리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유시민 “4대 개혁 입법 한나라당 때문에 좌절”

지난 2일 '한국 정치, 무엇을 바꿔야 하나'라는 주제로 열린 JTBC 신년토론회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나라당의 국회 점거로 2004년 4대개혁 입법에 실패해 노무현 정권이 무너졌다"는 발언을 했다. [JTBC 방송 캡처]

지난 2일 '한국 정치, 무엇을 바꿔야 하나'라는 주제로 열린 JTBC 신년토론회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나라당의 국회 점거로 2004년 4대개혁 입법에 실패해 노무현 정권이 무너졌다"는 발언을 했다. [JTBC 방송 캡처]

발단은 지난 2일 JTBC 신년토론회였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토론회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신문법·과거사법·사학법)을 무리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온 나라가 끓었는데 그 결과 노 정권도 정치적 실패를 맛봤다”며 “야당 때문에 모든 국정이 발목 잡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 의제를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유 이사장은 “4대 개혁 입법을 해서 노무현 정부가 망한 게 아니라 못해서 망한 것이다”며 “당시 열린우리당 152석에 민주노동당 10석을 더해 162명 국회의원이 입법을 처리하려 했는데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육탄으로 저지해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교수가 “아니죠”라며 개입했지만 유 이사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토론회에서 언급된 2004년 4대 개혁 입법 추진 당시 이부영 이사장은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고 있었다. 이 이사장은 “유 이사장이 완전히 틀리게 말했다”며 “한나라당이 국회를 점거한 것도 아니고 여야 간 협상이 없던 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부영 페이스북 캡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부영 페이스북 캡처]

이 이사장은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비밀회동도 가졌다. 국가보안법 폐지 대신에 독소조항을 대부분 삭제하기로 합의하고 신문법·과거사법·사교육법 등을 여당안 대로 개정하기로 했다”며 “역사상 최초로 여야가 국가보안법 개정에 합의했던 것이고 여당 입장에서도 굉장히 이익 남는 장사였다”고 말했다.
 
오히려 의견 합치가 안 되는 건 여당 내부였다. 이 이사장은 “당시 강경파였던 유시민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폐지가 아니면 협상 자체를 말아야 한다고 깨버린 것”이라며 “그들 논리는 열린우리당이 오래 집권할 것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법을 남겨두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당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4대 개혁 입법은 실패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부터 함께한 인연

이 이사장과 유 이사장의 인연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시작됐다.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이 이사장은 2003년 7월 김부겸·김영춘·안영근··이우재 의원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독수리 5형제’라고 불린 개혁파 인사들이다. 이 이사장은 열린우리당 상임 중앙위원을 거쳐 당 의장까지 올랐지만, 이후 4대 개혁 입법을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임했다.
 
이 이사장은 “당시 국가보안법 독소 조항이 빠졌다면 이후 많은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는 실패하고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이후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던 친북 좌파 정당으로 규정됐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유 이사장이) 한나라당 쪽으로 책임을 넘겨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공개 비판 후 유 이사장 쪽에서 연락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직 유시민 자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당사자는 입도 뻥긋 안 하고 있는데 지지자들은 유시민이 그런 말을 했으니 맞다고 믿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부영 이사장인 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4년 국가보안법 개폐파동과 관련한 유시민발언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또 일어났다"며 "8년 뒤인 2012년 자세한 사실들을 추가해 언론에 기고한 글을 이해를 돕고자 전재한다"며 올린 당시 사진. [이부영 페이스북 캡처]

이부영 이사장인 5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4년 국가보안법 개폐파동과 관련한 유시민발언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또 일어났다"며 "8년 뒤인 2012년 자세한 사실들을 추가해 언론에 기고한 글을 이해를 돕고자 전재한다"며 올린 당시 사진. [이부영 페이스북 캡처]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우)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 등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우)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 등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그가 지난 3일 올린 페이스북 글에는 5일 오후 3시 기준 155개의 댓글이 달렸다. 일부 네티즌은 “한나라당이 당시 국회를 점거한 게 사실이다”며 반박 댓글을 달았다. 이 이사장은 “그분들이 당시에 현장에 있지도 않고 어떻게 댓글을 쓰는가. 점거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5일 오전 “2004년 국가보안법 개폐 파동과 관련한 유시민 발언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또 일어났다”며 자신이 2012년 한 인터넷 언론에 기고한 글을 다시 올렸다. 이 이사장 글에서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합의한 국보법 개정안 추인을 논하기 위해 소집한 당 의원총회에서 강경파 의원들의 격한 반발 속에 뒤집힌 과정을 소개한 대목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장면 9 : 열린우리당의 의원총회가 열렸다. 이미 여야합의안이 알려진 상태에서 그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농성해온 강경파 의원들은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흥분상태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의원총회 사회자인 천정배 원내대표는 당론에 따라 여야 4자회담이 열린 것이면 강경파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아야 하는데 여야합의안을 다시 ‘자유토론’에 부쳤다. 난장판이 벌어지고 임종인 의원 같은 강경파 의원들은 협상을 주도한 당의장인 필자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면서 “배신자”라고 외쳤다.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다고 간주되었던 강경파들의 기세에 중진의원들을 비롯한 다수의 협상 지지파들은 함구하고 있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그 소란 속에 원내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퇴장했다. 회의 사회자가 없어지자 회의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어렵게 만들어졌던 여야 4자 합의안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정국은 여당 의원총회의 난장판으로 끝났다. (중략) 결론은 분명해졌다. 국가보안법은 일점일획도 고쳐지지 않고 ‘악법’ 그대로 유지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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