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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꼬르동블루 유학, 나는 왜 프랑스 아닌 영국 갔을까?

기자
우효영 사진 우효영

[더,오래] 우효영의 슬기로운 제빵생활(9)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간절한 소망과 필요가 그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중에서)
 
“우 대리가 빵을 배운다고?”
 
오랜 기간 고민했던 퇴사를 결정하고 말씀드렸을 때 상사의 당황해하던 반응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백화점 MD로 5년 차, 대리 승진을 하고 회사 경력의 열정과 애정이 넘쳤던 시점이었습니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였고, 승진과 인정을 받으니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존감은 높아졌지만 내가 원했던 삶의 방향과 목표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반대로 들기 시작했습니다. 열정의 온도가 차츰 내려가고, 방향감각이 상실되니 자아의 고민은 깊어졌고, 그 고민의 끝에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파티시에로 인생의 2막을 시작

맛있게 구워진 빵과 디저트 뒤에는 셰프들의 노력과 정성이 담겨있다. [사진 Pixabay]

맛있게 구워진 빵과 디저트 뒤에는 셰프들의 노력과 정성이 담겨있다. [사진 Pixabay]

 
파티시에(Patissier)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경쟁적일 수밖에 없는 대기업 제도와 상하 수직적 조직 구조에서 엉뚱하면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 잘 못 하며 퍼주기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쉬웠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자각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뜯어고치고 싶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성격을 반대로 잘 활용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요리와 베이킹은 같은 맥락에서 이타적인 직업입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불을 쓰며 손을 데거나 칼에 베이면서도 열심히 만든 음식이나 디저트가 먹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순간에 큰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디저트가 사람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좋았습니다. 우울할 때 진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 하나를 먹으며 없던 힘이 솟아나는 느낌, 생일이나 졸업 등 축하하는 자리에 늘 함께 하는 케이크, 바쁜 시간 틈에 맛있는 빵 한 입 베어 물고 하루를 버텨내게 만드는 힘, 내가 만든 무언가가 타인에게 기쁨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그 속성이 정말 좋았습니다.
 

런던으로 떠나다 

르꼬르동블루 런던에서의 첫 수업.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르꼬르동블루 런던에서의 첫 수업.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퇴직금을 탈탈 털어 르꼬르동블루(Lecordonbleu) 런던에 등록금으로 냈습니다. 보통 디저트 하면 프랑스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르꼬르동블루 학교 역시 120년 전통의 프랑스 요리학교입니다. 프랑스가 아닌 영국을 선택한 이유는 언어가 가장 컸습니다. 불어를 새롭게 시작하자니 시간이 부족했고, 대학 시절 교환학생의 경험 덕분에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해 셰프와 직접 소통하며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사랑스러운 줄리아 차일드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 [사진 영화 '줄리&줄리아' 스틸]

사랑스러운 줄리아 차일드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 [사진 영화 '줄리&줄리아' 스틸]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본 후에 그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르꼬르동블루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셰프 중의 한 명이며 열정적으로 요리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았던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 1912~2004)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미국인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프렌치 요리를 배워 미국의 가정식 스타일로 재해석해 풀어내는 그녀만의 요리 스타일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늦은 나이(그녀는 37세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에도 도전하는 그녀의 결단력, 8년간 우여곡절을 겪고 프렌치 요리책 집필을 해내는 모습 등 여러 가지 고충과 핸디캡을 딛고 셰프가 되어가는 따뜻한 과정을 보며 그녀를 롤 모델로 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물론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도 한몫했을 듯합니다)
 

영국의 음식, 그리고 디저트·카페 문화

런던의 멋진 카페와 빵, 디저트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런던의 멋진 카페와 빵, 디저트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흔히들 ‘영국에서 피쉬앤 칩스(Fish and chips) 말고 먹을 게 뭐가 있어?’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사실 영국의 음식이나 디저트 문화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며 미식 문화를 발전시켰다면, 영국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문화를 복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미식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영국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식민지 통치로 세력을 떨치며 지구 육지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활동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중국, 동아시아 지역에서 우려내어 마시는 차를 가져오고 인도에서는 각종 향신료와 소스 등을 들여와 영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변형했습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타국에서 들여온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음식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어업 지역으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영국의 지리적 특성과 만나 중국, 인도,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요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성장했습니다. 
 
(좌)Conduit 거리의 스케치(Sketch). (우)켄싱턴 궁전의 오랑주리(Orangery) 애프터눈 티.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좌)Conduit 거리의 스케치(Sketch). (우)켄싱턴 궁전의 오랑주리(Orangery) 애프터눈 티.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중국에서 들여온 티는 1800년대부터 영국 귀족들로 인해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문화로 탄생했습니다. 오후의 티를 즐기기 위해 함께 먹는 빵과 디저트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캐주얼한 종류에서부터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 fine-dining)에서 볼 법한 아티스틱하고 정성 가득한 종류까지 다양하게 발달했습니다.
 
특이한 향신료와 다양한 문화권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역사적, 지리적 특성 덕분에 영국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디저트 씬(scene)도 주목할 만합니다. 대표적인 셰프로는 이스라엘 출신의 요탐 오토렝기(Yotam Ottolenghi)가 있습니다.

 
런던 오토렝기 셰프의 델리 레스토랑. [사진 오토렝기 홈페이지]

런던 오토렝기 셰프의 델리 레스토랑. [사진 오토렝기 홈페이지]

 
이스라엘 출신의 셰프인 오토렝기는 런던에 6개의 델리 및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새로운 영국 스타일의 디저트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중동의 향신료인 Rose water, za'atar, 석류 당밀과 같은 이색적인 재료를 사용해 영국의 실용적인 스콘, 브라우니, 파운드 케이크 등의 디저트에 풀어내며 하이브리드(Hybrid, 이질적인 요소를 혼합하여 가치를 높인 것) 디저트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영국에서 만난 천연발효빵

이전까지는 책으로만 만나보았던 유럽 사람들의 천연발효빵과 함께하는 삶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킨포크(Kinfolk)나 모노클(Monocle) 매거진에서 보던 천연발효빵과 함께 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마냥 동경하며 멀게만 느껴졌던 그 라이프스타일 속으로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영국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워도우 브레드(Sourdough bread) 클래스를 찾았습니다.
 
런던의 천연발효빵과 디저트샵, e5 bakehouse.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런던의 천연발효빵과 디저트샵, e5 bakehouse.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인스타그램]

 
천연발효빵과 다른 빵의 차이점은 재료와 재료를 다루는 기술에 있었습니다. 런던 근방의 농장에서 생산하는 오가닉 밀과 북유럽 지역으로부터 들여와 오랜 시간 키워온 발효종, 신선한 밀. 클래스를 통해 레시피를 전수받는다고 해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이 놀랍기도 하면서 흥미로웠습니다. 레시피는 공개할 수 없지만, 만드는 방식은 한 번 같이 들여다볼까요?

 
천연발효빵 만드는 방식
e5 bakehouse에서는 손으로 반죽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블로그]

e5 bakehouse에서는 손으로 반죽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블로그]

 
1. 호밀 발효종과 밀가루, 재료들을 섞고 10분간 휴지를 시킵니다.
2. 소금을 섞어준 후 실온에 30분가량 놓아둡니다.
3. 10분 간격으로 3~4회 폴딩법(Folding)을 진행합니다.
4. 폴딩법이 완료되면 거즈를 덮어 실온에서 2시간가량 1차 발효를 시킵니다.
 
1차 발효를 시키는 동안 수업을 진행해준 선생님께 발효종과 미생물, 그리고 천연발효빵이 어떻게 우리 몸에 이로운가에 관해재미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블로그]

1차 발효를 시키는 동안 수업을 진행해준 선생님께 발효종과 미생물, 그리고 천연발효빵이 어떻게 우리 몸에 이로운가에 관해재미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블로그]

 
5. 2차 발효는 바네통에 넣고 1시간정도 실온에서 진행합니다.
6. 멋진 크랙이 위에 생기면 준비해둔 실리콘 페이퍼에 놓고 240도로 예열된 고온의 오븐에 약 40~45분간 구워서 완성합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라는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st)의 이야기처럼, 베이킹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그 나라의 미식, 디저트 문화를 체험하고 이색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한 목적이 되었습니다.
 
하버드대학 ‘긍정심리학’의 교수 탈 벤 샤하르(Tal Ben Shahar)는 그의 저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서 행복은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경험의 총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파티시에로서 새롭게 시작한 인생의 2막은 일시적인 성공이나 안정됨, 혹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많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하나하나 몸에 익어가고 축적되는 내면의 세계가 삶을 행복에 가까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티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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